시읽는기쁨

눈물은 왜 짠가 / 함민복

샌. 2005. 10. 28. 12:23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대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난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 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 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 주셨습니다 나는 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 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안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 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까지 난 땀을 씻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 눈물은 왜 짠가 / 함민복

 

 

인간의 마음에서 나오는 감정중에서 가장 고귀한 것은 '연민'과 '측은지심'이 아닐까 싶다. 연민(憐憫)은 동정(同情)과는 다르다. 비를 맞는 사람에게 우산을 건네주는 것이 동정이라면, 연민은 함께 비를 맞아주는 마음이 아닐까 한다. 이것은 자신을 같은 처지에 놓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마음이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은 하늘을 닮은 마음이다. 그것은 존재의 구별을 초월한 고차원적인 종교심이다. 맹자는 사단(四端) 중에서도 이 마음을 인(仁)의 바탕을 이루는 것으로 으뜸으로 보았다.

 

이 시가 우리를 흔들어 놓는 것은 인간 마음에 들어있는 이런 선한 본성을 건드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인간이 가장 인간다울 수 있는 마음이다. 예수님은 왜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선언하셨을까? 그것은 아마도 가난한 사람들이 주로 가지고 있는이런 연민과 측은지심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시를 읽으면 가슴이 아프기도 하지만 왠지 마음이 훈훈해진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따스한 정과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만 있다면 이 세상은 여전히 살 만하다. 그때는 가끔씩 짠 눈물을 흘려도 괜찮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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