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 골방에 처박혀 시를 쓰다가
문 밖 확성기 소리를 엿듣는다
계란.....(짧은 침묵)
계란 한 판.....(긴 침묵)
계란 한 판이, 삼처너언계란.....(침묵).....계란 한 판
이게 전부인데
여백의 미가 장난이 아니다
계란, 한 번 치고
침묵하는 동안 듣는 이에게
쫑긋, 귀를 세우게 한다
다시 계란 한 판, 또 침묵
아주 무뚝뚝하게 계란 한 판이 삼천 원
이라 말하자마자 동시에
계란, 하고 친다
듣고 있으니 내공이 만만치 않다
귀를 잡아당긴다
저 소리, 마르고 닳도록 외친다
인이 박여 생긴 생계의 운율
계란 한 판의 리듬
쓰던 시를 내려놓고
덜컥, 삼천 원을 들고 나선다
- 계란 한판 / 고영민
장일순 선생님의 일화에 이런 게 있다. 선생님의 글씨도 탈속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인정을 받고 있는데, 자신의 글씨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아름다운 글씨가 있다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추운 겨울날 저잣거리에서 군고구마를 파는 사람이 써붙인 서툴지만 정성이 가득한 군고구마라는 글씨를 보게 되잖아. 그게 진짜야. 그 절박함에 비하면 내 글씨는 장난이지."
터에도 이동슈퍼의 작은 트럭이 가끔씩 찾아온다. 농촌에는 노인이 많다보니 아직 이동슈퍼는 반가운 존재이다. 그 스피커 소리가 멀어졌다 가까워졌다하며시골마을의 정적을 깨뜨린다. 그래도 소음으로 들리지 않는다. 어떨 때는 그 억양이 재미있어 흉내를 내보기도 한다.
군고구마 글씨도 이동슈퍼의 스피커 소리도 그 속에는 삶의 절박함과 애절함이 있기에아름답다. 한 그릇의 밥을 위한 인간의 행위는 아름답지 않을 수 없다. 아름답다는 것이 사치스러운 표현일지 모르지만, 귀족 예술이 결코 흉내낼 수 없는 삶의 질박함과 진실성이 거기에는 있다. 이번 주말에는 나도 이동슈퍼에서 막걸리 한 통이라도 사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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