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바. 라. 기.
첫 임플란트 본문
한 달 전부터 어금니가 욱신거리기 시작했다. 그럭저럭 참고 지냈는데 양치를 하다가 만져보니 많이 흔들리는 것이었다. 전처럼 저 혼자 툭 빠지면 큰일이다 싶어 부랴부랴 치과에 가서 발치를 했다. 그리고 임플란트 공사가 시작되었다.
그동안 이 어금니로 용케 버텨왔다. 2년 전에 앞니 브리지를 할 때 의사 선생님이 이 어금니도 수명이 다했으니 임플란트를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길어봤자 한두 달이라고 했다. 엑스레이 사진과 달리 아무 증상이 없으니 좀 더 기다려보겠다고 나는 답했다. 그런 어금니로 2년을 버텨 온 것이다. 마치 시한부 판정을 받은 환자가 주치의의 예상보다 열 배 넘게 산 셈이다. 그렇지만 치아 상태가 더 좋아질 리는 없는 법, 드디어 종말이 찾아왔다.
같은 죽음이라도 자연사가 훨씬 아름답지 않은가. 최대한 자연 치아로 지내보려 했다고 말하니 의사 선생님도 고개를 끄덕였다. 치과에 가기는 정말 싫다. 내가 이사를 오고 나서 이 치과와 인연을 맺었으니 단골이 된지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여러 치과를 전전했지만 여기만큼 편하고 신뢰를 주는 치과가 없었다. 의사와 간호사 한 분인 작은 병원이라 병원 분위기가 아담하며 깔끔하다. 의사 선생님도 항상 미소를 지으며 친절하다. 바로 옆에는 의사가 예닐곱이나 되는 대형 치과가 있지만, 나는 이 작은 병원이 좋다. 통로를 지나가다 보면 거기 대기실은 늘 환자로 북적인다.
또 하나 좋은 인상은 대기실 탁자 위에 한겨레신문이 놓여 있다는 점이다. 조중동이 아니라 한겨레신문이라는 것은 왠지 나와 코드가 맞을 것 같아 흐뭇하다. 한겨레를 보는 의사에서 '강남 좌파'의 이미지를 상상한다. 이런 신문이나 소품들에서 주인의 성향을 추리해 보는 것도 재미있다.
흔들리는 어금니여서 발치가 쉬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갉아내고 꾀매고 하는 복잡한 과정이 이어졌다. 두 시간이 지나도 입에서 핏물이 배어 나왔다. 여름이 되어야 임플란트를 심을 수 있다니 장기전이 될 것 같다. 뭣 하나 만만한 게 없다. 70대 중반이 되어 첫 임플란트이니 치아 관리를 잘해 왔다고 칭찬을 들었다. 오래 살게 되면 계속 수리할 일이 생기겠지만 이만하면 잘 지내온 것이리라. 긴 세월을 함께 하며 고된 일을 마치고 영면한 너에게도 감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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