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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위의단상

캘리그래피를 시작하다

샌. 2026. 1. 21. 10:25

친구가 지난가을부터 캘리그래피를 배우고 있다며 단톡방에 자신이 쓴 글씨를 올렸다. 붓펜으로 쓴 귀엽고 예쁜 글씨였다. 석 달 배운 결과가 대단했고 폭풍 칭찬을 아니할 수 없었다. 갑자기 캘리그래피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면서 나도 배우고 싶어졌다. 찾아보니 우리 동네에도 3개월 과정의 강좌가 있고, 마침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었다.

 

12명 정원인데 마감이 되니 30명 가까이 신청해서 2:1이 넘는 경쟁률이었다. 나는 떨어졌지만 예비 2순위라는 연락이 왔다. 혹시나 하며 기다렸는데 개강 전날에야 결원이 생겼으니 등록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그래서 운 좋게 캘리그래피를 시작하게 되었다.

 

캘리그래피라는 특성상 수강생은 여자가 많을 줄 알았지만 교실에 들어가니 웬걸 남자는 나 혼자였다. 그것도 70대 할아버지인 것이다. 쑥스럽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가 보다. 이런저런 모임을 경험했지만 청일점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더 젊었다면 여기서 배우는 걸 고민했을 터였다. 그러나 나이가 나이이다 보니 뻔뻔해졌다. 색다른 환경이지만 해 보지 뭐,라고 쉬이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이 없는 건 딴 데 있었다. 나는 캘리그래피가 붓펜을 사용하는 줄 알았다. 친구가 붓펜을 쓴다고 했기 때문이다. 붓펜이면 일반 필기구와 비슷하니 간편하고 부담이 없으리라 여겼다. 그런데 여기서는 붓으로 한다는 것이다. 훨씬 난이도가 높아진다. 운필법부터 제대로 배워야 할 것 같은데 감당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강사에게 질문했더니 걱정하지 말라고, 쉽게 습득시킬 자신이 있다고 말한다.

 

40대 때 서예를 배운답시고 학원에 다닌 적이 있었다. 1년 정도 배웠는데 영 진척이 없어서 그만두었다. 비슷한 시기에 같이 시작한 동료와 비교했을 때 나는 글씨에 소질이 없어 보였다. 글씨에 힘이 없다, 필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도 필력이 뭘 뜻하는지는 어렴풋이 밖에 감이 안 온다. 글씨를 보기 좋거나 깔끔하게 쓰는 것과는 다르다. 그때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러 다시 붓을 잡게 될 줄이야.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식으로 출발했다. 어찌 됐든 새로운 걸 배우는 건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캘리그라피는 그림으로 그리는 글씨다. 예술적 감각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쪽 방면으로는 재능이 부족한데 얼마나 따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재미로 발전해 앞으로 나아갈지 아니면 중간에 접게 될지 시간이 답해주겠지. 캘리그래피에 필요한 도구는 신청해 놓았다. 다시 붓을 잡을 생각을 하니 살짝 설레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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