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엿 본문

길위의단상

샌. 2025. 12. 16. 10:04

얼마 전에 엉뚱한 기사를 봤다. 외국의 한 단체에서 '세계 최악의 음식 100'을 발표했는데 한국 음식으로는 홍어, 엿, 콩나물밥, 두부전이 들어갔다. 순위로는 홍어가 51위, 엿이 68위, 콩나물밥이 81위, 두부전이 84위였다.

 

아니 이게 다 몸에 좋은 식품 아니야? 처음 든 느낌은 황당함이었다. 외국인에게 홍어는 강한 암모니아 향이 질색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콩나물밥이나 두부전을 혐오식품이라 하는 것은 생뚱맞았다. 서양인에게는 이 음식들이 이상하게 보였는가 보다. 음식은 각 나라의 문화적 특성이 강하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엿이 왜 최악의 음식에 들어갔는지 의문이다. 식감이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질색할 정도는 아니고 단맛은 만국 공통으로 누구나 좋아하지 않는가 말이다. 도리어 엿은 나에게 건강식품으로 인식되어 있다. 외할머니가 엿으로 위장병을 고치는 걸 봤기 때문이다.

 

내가 중고등학생일 때 함께 지내던 외할머니는 늘 속이 아파서 고생했다. 식사만 하고 나면 소화가 안 돼서 배를 만져달라, 등을 두드려달라고 하기 일쑤였다. 약국에서 소화제를 사 드셨지만 그마저도 나중에는 돈이 든다며 포기했다. 당시는 어지간한 중병이 아니면 병원에 가지 않았다. 민간요법이 대세이던 시대였다.

 

어느 땐가부터 외할머니는 소화가 안 될 때 엿을 먹으면 상태가 좋아진다는 걸 발견했다. 이걸 알게 된 어머니는 고향에서 올라올 때마다 엿을 한 보따리씩 갖고 왔다. 외할머니의 엿 사랑이 시작된 것이다. 지금도 외할머니를 추억하면 엿을 물고 오물거라는 모습이 떠오른다. 엿을 장복한 기간이 얼마였는지는 모르겠으나 상당히 오랫동안이었다. 적어도 5년은 넘었을 것이다.

 

외할머니의 속병은 시나브로 잦아들더니 떠나갔다. 70대가 되어서는 무슨 음식이든 잘 드시게 되었다. 외할머니는 100세가 넘게 장수하셨다. 지금도 외할머니에 대해 얘기할 때면 위장병을 고친 것은 엿이었다고 어머니나 나나 의견을 같이 한다. 어머니는 끈기있게 엿을 공급했고 나는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봤다.

 

나도 외탁을 했는지 위장 기능이 시원찮다. 늘 음식을 조심하는데 특히 찬 음식은 상극이다. 방심하면 금방 신호가 오고 화장실을 들락거려야 한다. 모임에서 술을 신청하면 '따뜻한 후레쉬'가 내 주문이다. 며칠 전에는 냉장고에 들어간 술만 있다기에 데워달라고 한 적도 있다. 종업원은 뜨거운 물이 담긴 대접에 소주병을 담아줬다. 소주를 정종 데우듯 마시는 사람은 나밖에 없으리라.

 

그러다가 한 해에 한두 번은 심하게 앓는다. 두 주에서 한 달 정도 가는데 그때는 죽으로 지내며 술이나 커피는 아예 금지다. 견디다가 결국은 병원 신세를 지고 약을 잔뜩 받아온다. 끝 단계에서 약을 먹게 되는데 약을 먹어서 낫는 건지, 자연스레 나을 때가 되어서 낫는 건지는 모르겠다.

 

외할머니처럼 엿 처방을 생각 안 해 본 건 아니었다. 과거에 엿을 먹다가 땜질한 이빨이 빠지는 바람에 질겁한 뒤로는 엿도 조심스러워졌다. 외할머니처럼 엿을 상복할 자신이 없는 이유는 단 것을 과하게 상복하다가 당뇨로 갈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대신 속이 나쁠 때는 조청을 먹는다. 조청을 고우면 엿이 되니 조청은 엿과 같은 성분이다. 기분 탓인지 모르지만 조청을 먹으면 속이 편해진다. 엿이나 조청이 소화불량 해결에 도움을 주는 것만은 확실한 것 같다.

 

엿이 세계 최악의 음식 중 하나란 것을 납득할 수 없다. 서양인들이 우리 문화를 너무 몰라서 그리 선정한 게 아닌가 싶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엿만한 간식거리도 없다. 옛날에 쨍강쨍강 가위소리를 내며 동네에 들어오는 엿장수를 반가워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을까. 엿치기를 하면서 즐거워했던 추억도 있다. 엿은 가난했던 그 시절 아이들에게 당분을 보충해준 건강식품이었다. 동시에 약이기도 했던 것이다.

 

생뚱맞은 보도 하나로 엿에 얽힌 달콤하며 고마운 추억에 잠겨본다. 엿 외에도 홍어, 콩나물밥, 두부전은 모두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이다. 이 넷이 '세계 최고의 음식 100'에 이름을 올렸다면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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