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바. 라. 기.
한 장의 사진(39) 본문
AI가 세상을 흔들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 실감이 안 된다. 나 같은 사람이야 챗GPT나 제미나이로 고작 검색을 하는 정도이니 별다른 변화를 체감하지는 못한다. 어느 자리에서 한 지인이 말했다. "손주 생일을 축하하는 글을 챗GPT한테 부탁하니 잘 써주더라. 얼마나 편리한지 몰라." 그러면서 우려 섞인 말도 했다. "이런 것까지 AI의 도움을 받는 게 잘하는 일일까"라고. 기초적인 AI 활용이지만 빛과 그늘이 공존하고 있음을 실감한다.
인공지능이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온 건 2016년이었다. 바둑에서 세계 일인자였던 이세돌이 알파고와 대결을 해서 패배한 것은 충격이었다. 아무리 컴퓨터라도 바둑의 무궁무진한 수를 파악할 수 없고, 하물며 인간의 창의성이나 변칙수를 상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 뒤로 AI는 상상을 뛰어넘는 발전을 했고 이제는 '바둑의 신' 경지에 올라 있다. 다른 분야는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지금은 AI 시대의 여명기이니 앞으로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는 도무지 예상하지 못하겠다. 컴퓨터가 처음 등장했을 때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한 사람은 소수였다. 단순한 계산 기능을 넘어서는 AI는 세상을 질적으로, 통째로 변화시킬 것이다. 기대 반 두려움 반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다.
검색 외에 내가 AI의 도움을 받는 것은 이미지 수정이다. 흐릿한 옛날 사진 파일을 AI에게 부탁하면 훼손된 부분을 복원해 주고 퀄리티도 높여준다.

왼쪽은 1968년에 희방폭포에서 찍은 가족사진이다. 해상도가 낮고 사진 한 켠은 찢겨 있다. 이 사진을 AI한테 해상도를 높이고, 찢어진 부분을 복원하고, 컬러로 바꿔달라고 부탁했다. 그 결과물이 오른쪽 사진으로 깔끔하게 정리되었다. 이만하면 AI의 덕을 보고 있다고 해도 될 것 같다.
우리 가족은 여름이면 희방폭포 계곡으로 피서를 갔다. 지금은 폭포까지 차가 올라가지만 그때는 집에서 기차를 타고 희방사역에서 내려 폭포까지 걸어서 올라갔다. 거의 한 시간 정도 걸어야 했다. 아무리 땡볕이어도 그늘진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 더위를 잊었다. 찬 계곡물에 시원해진 수박맛도 일품이었다. 더운 여름의 희방폭포 나들이는 우리 가족의 연례행사였다.
1960년대 당시에 가족이 함께 나들이를 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우리가 살던 마을에서도 우리집 외에는 없었다. 그리고 읍내에 있는 사진관의 사진사가 와서 우리 사진을 찍어 주었다. 카메라가 귀해서 다룰 줄 아는 사람이 없어서 그랬나 보다. 그렇게 해서 1968년의 어느 여름날이 사진으로 남았다.
친구들에 비해 나는 유복하게 자랐다. 며칠 전에 고향 친구를 만났을 때 친구는 말했다. "겨울 이맘때면 땔감으로 쓸 나무를 하러 매일 지게를 지고 다녔지. 그런데 너는 맨날 책을 보고 공부만 했잖아." 나는 농촌에서 자랐으면서도 지게를 져 보지 않았다. 아버지는 농사일 근처에는 아예 오지 못하게 했다. 월사금을 내지 못해 국민학교를 중퇴했던 당신의 설움을 아들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원 없이 공부만 할 수 있게 만들고 싶었으리라. 그때는 일하기 위해 들로 산으로 쏘다니는 친구들이 부러울 때가 있었다. 부모의 기대와 보살핌을 헤아리지 못했다.
이 옛 사진을 애틋하게 바라본다. 멀리서 사진사를 불러서까지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을 아버지의 심정이 전해져 가슴이 아리다.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사진은 지나가 버린 시간에 대한 애도'라고 했다. 저 때로부터 두 세대가 지나갔고 막내동생이 벌써 60대 중반이 되었다. 지나고 보니 산다는 건 한 편의 짧은 연극이며 한여름밤의 꿈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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