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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 잔의 자유 본문

읽고본느낌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 잔의 자유

샌. 2026. 4. 4. 10:41

이 책을 쓴 김도미 작가는 30대 중반에 급성골수성백혈병에 걸렸다. 항암치료를 거쳐 조혈모세포이식 수술을 하고 회복해나가고 있는 중이다. 스스로를 병자(病者)며 암 경험자라 부른다. 치료 과정에서 틈틈이 쓴 글을 모아 밖으로 내보냈다. 나름의 주관을 가진 한 사람이 고통을 어떻게 헤쳐나가는지 애틋한 심정으로 읽었다.

 

<사랑과 통제와 맥주 한 잔의 자유>는 보통의 투병기와는 결을 달리 한다. 작가는 솔직하고 객관적인 시각을 냉철하게 유지하며 자신을 지켜나간다. 암 환자가 세상과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진솔하게 쓰여 있다. 인간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 대체로 무감각하다. 직접 경험하는 것과 방관자가 되는 것은 천지차이다. 작가는 당사자이면서 관찰자로서 자신을 바라본다. 이 책에는 인간의 연약함에 대한 슬픔이 배어있지만 인간 정신의 높음을 상기시켜주기도 한다.

 

작가는 고통 뒤의 깨달음이라는 헛됨에 대해 자주 말하지만, 그러함으로 병과 고통이 인간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질문을 던지는 가치에 대해 생각케 한다. 그런 내면에서 솟아나는 질문이 이 책을 쓰게 했을 것이다. 고통 속 기록이 주는 가치 중 하나는 살아야한다는 의지와 희망을 북돋아주는 것인지 모른다. 애착이 아닌 삶에 대한 연민과 애정일 것이다.

 

'맹목적인 사랑과 통제에서 벗어나 존엄하게 아플 자유를 상상한다'는 말처럼 작가는 건강이라는 종교와 완치라는 신화 바깥에 있는 다른 세계를 지향한다. 병원의 치료법을 따르지만 맥주 한 잔의 자유를 희생시키지 않는다. 이식에 따른 부작용 없이 잘 이겨내기를 기원한다.

 

책에 나오는 몇 구절이다.

 

몸에 대한 신뢰가 깨진 순간을 기점으로, 여태 지켜온 가치관과 관계망에 대한 믿음도 연이어 터져나간다. '가정을 잘 가꾸는 여성'이라는 영광이라든가 내면의 가치가 큰불에 휩싸인 숲처럼 활활 타버린 폐허.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푸른 싹이 자라나 잿더미를 밀어올리기 시작한다. 죽을병에 걸린 사람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은, 몸을 뒤틀며 일어나는 저 고사리 같은 것 때문인지도 모른다.

 

만약 삶이 소중하고 아름답다고 말한다면, 지금 그 말을 하는 사람이 계속 살고 싶다는 의미일 뿐.

 

건강한 사람들은 아픈 사람에게 무언가를 가르쳐줄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건강한 데다 말까지 많은 그들은 병자가 가져야 하는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알려주고, 무얼 해보라거나 먹어보라는 이야기도 잘한다. 무얼 하지 말라거나 먹지 말라는 말도 한다. 깨달음을 얻었다는 다른 병자 이야기를 늘어놓거나, 염려인지 핀잔인지도 섞어가면서, 질병의 원인에 대한 여러 풍문을 중언부언 늘어놓다가 사라진다. 아무도 자신의 말에 책임지지 않는다. 그들은 마치 유통기한이 지난 스팸 통조림을 경비노동자에게 선물이랍시고 내놓은 아파트 주민처럼 군다.

 

그래서 힘든 시간을 지나고 나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걸까. 여전히 고통으로 사람이 성숙해진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망가졌다고 해서 그 사람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지만, 고통은 삶을 바라보는 렌즈의 곡률을 바꾼다. 병동 동료들이 웃고 찡그리던 얼굴을 되새김질하면서, 고통받는 사람들이 쓴 기록을 찾아 읽었다. 그리고 한숨 돌리는 지금, 가을바람처럼 불어오는 회한.

 

암 경험자인 친구는 말했다. "항암치료를 할 땐, '내가 크로마뇽인이다, 내가 아메바다'라고 생각해야 돼. 스스로를 호모사피엔스라고 생각하면 힘들단 말이야." 고통받는 사람은 인간성에 대한 질문을 한다. 질병이 아니더라도, 타인에게 맞거나 모멸감이 드는 말을 들으면 똑같은 의문이 든다. 인간 뭘까. 인간이고 싶은 사람이 인간성에 대한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는 건 한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의미다.

 

죽음이 가까이 있다는 자각을 하면서 집에 들어온 거미 새끼 하나도 함부로 죽이기 미안해지고 영적인 세계에 관심이 번지는 것, 이 세상의 거대한 먹임과 되먹임을 상기하는 것, 채식을 시도하고 생협을 이용하면서 마음을 정결하게 하는 것, 내가 이렇게 노력해서 건강해지고 있다고 믿는 것, 일상에 대한 진지한 태도를 갖는 것. 이러한 믿음과 염원이 어쩌면 그토록 기도했던 이다음의 현실을 만들 수 있다는 것도 나는 긍정하고 싶다.

 

타인의 선의가 또 다른 사람들의 선의로 번져가는 풍경들, 그래서 수많은 우연과 인과의 총합이 또 누군가를 요행처럼 찾아가 기적이라는 이름을 부여받는 순간들. 근본적으로 삶도 세계도 무의미하다는 공허한 불안감은 이렇게 어떤 의미에 기댄 다른 의미들의 연쇄로 채워진다. 조금 더 공들여 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그나마 나의 진실에 가장 가까운 말이다.

 

여기는 잠시 구름이 갰습니다. 저는 고단하지만 그 역시 평험한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무릅쓰며 오늘을 살고 있나요.

 

한 발 앞으로 나갔다가, 두어 발 크게 파도에 떠밀린다. 그리고 다시 한 발 앞으로. 아픈 몸으로 보낸 시간이 으깨져서 손톱에 희고 불룩한 무의를 그렸다. 손톱은 용케 떨어지지는 않았다. 손톱이 들리거나 떨어져 나가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들도 있었지만, 내 손톱은 경미한 신경통과 함께 손끝에 달라붙어 있었다. 이웃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지만 도움을 매일 받지는 않고 살아갈 수 있을 딱 그만큼의 요철을 지니고서.

 

모든 치료 과정이 막을 내렸다. 혈액 수치들은 거의 정상치에 도달한 상태였다. 하지만 정작 내 몸은 그 수치를 만드느라 엉망진창으로 비틀어지고 곪아 있었다. 이름 없는 통증으로 밤낮 앓는 속도 모르고 어떤 사람들은 "다 끝났네!" 하며 축하를 건넸다. 해도 너무하네 싶은 무렵에 나와 비슷한 시기에 항암치료를 했던 암 경험자들에게 물어보았다.

"좀 야속하지 않아요?"

바로 대답이 돌아왔다.

"완전 야속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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