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바. 라. 기.
시와 산책 본문
책을 읽다 보면 유난히 저자가 궁금한 경우가 있다. 저자는 어떤 사람일까,라고 나름대로 상상하게 된다. 이 책의 저자도 그러했다. 한정원이라는 이름만 보고는 의례 남자라 생각했다(내 친구 중에 정원이가 있다). 참 다정하고 감성적인 분이구나,라고 생각했는데 1/3쯤 지나서야 여자분일 걸 알았다. 그랬구나, 하면서 앞에 읽었던 글을 다시 훑어보게 되었다.
산책과 고양이를 좋아하고 은둔형이며 수도자의 꿈을 가지고 있는 점 등 저자는 나와 닮은 점이 많다. 에밀리 디킨슨을 좋아한다는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에밀리 디킨슨, 1830년생의 이 여성과 내가 이웃하여 살았다면, 가까운 친구가 되었을 거라고 넘겨짚어본다. 시대의 격차와 개인적인 성격 차이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영혼은 몇몇 지점에서 겹쳐진다. 나는 아무런 노력 없이도 그녀를 이해할 수 있다."
여기서도 나와 교집합으로 겹쳐진다. 책을 통해 마음에 맞는 벗을 발견한 것 같다. 하지만 친구가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나는 의외로 까다로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는 저자도 마찬가지가 아닐까,라고 멋대로 상상한다. 이런 것이 책을 읽는 재미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글은 그 글을 쓴 사람을 닮는다 했다. <시와 산책>에서는 저자의 마음 생김새가 어떤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느낄 수 있다. 다정하게 다가오는 내용에 많이 공감한다. 책에는 여러 외국시가 나오는데 '시처럼 산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겠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나마 저자를 응원해주고 싶다.
글 중에서 '행복'에 관해 쓴 부분을 옮긴다. 평소에 내가 생각하는 행복도 이런 것이라고 나는 고개를 끄덕인다.
혼자 생각에 잠겨 걷는 편이다 보니, 거리에서 포교하는 이들에게 붙잡히는 일이 잦다. "도를 믿으세요?" 하며 다가오는 무리 말이다. 나도 이제는 이력이 나서, 멀리서 둘이나 셋이 짝지어 다가오는 것만 보아도 미리 알아채고 피할 수 있다. 그런데 그날은 횡단보도 앞에서 건너편만 보던 차에 한 명이 불쑥 말을 걸어와, 피할 틈 없이 잡히고 말았다.
타고난 복이 있는데 조상이 막고 있네요.
네.
복을 찾을 방법이 있어요.
괜찮아요.
행복해질 수 있다니까요.
행복하기 싫어요.
행복하기 싫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저요.
아니, 행복하기가 싫다고요?
포교자의 목소리에 노여움이 배어났다. 마침 신호가 바뀌지 않았다면, 그는 나와의 실랑이 끝에 인내심을 잃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를 남겨두고 혼자 건널목을 건넜다. 행복에 그토록 몰두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훨씬 만족하며 살 텐데요, 라는 말은 속에만 두고.
나는 사람들의 행복 타령이 지겨워, '행복'이라는 낱말을 사전에서 삭제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뜻을 바꾸든지, [행복: 음식이 소화되지 않아서 배에 가스가 차는 것을 뜻함] 하지만 얄팍하게 사용하는 것이 문제이지, 낱말 자체는 결백하다는 것을 안다.
길에서 만난 포교자에게 약간 밉살스럽게 대꾸했지만, '행복하기 싫다'는 내 말은 정확히는 '행복을 목표로 살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많은 이들이 행복을 '승진' '결혼' '내 집 마련' 등과 동의어로 여기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행복은 그렇게 빤하고 획일적이지 않다. 눈에 보이지 않고 설명하기도 어려우며 저마다 손금처럼 달라야 한다. 행복을 말하는 것은 서로에게 손바닥을 보여주는 일처럼 은밀해야 한다.
내 손을 오래 바라본다. 나는 언제 행복했던가. 불안도 외로움도 없이, 성취도 자부심도 없이, 기쁨으로만 기뻤던 때가 있었던가.
.... 특별히 기억나는 할머니가 있다. 그녀는 침상에서 몸을 일으킬 수 없었고, 이미 눈이 멀어 있었다. 그런데도 매일 노래를 불렀다. 다른 병실에서도 우렁찬 목소리가 넘어올 정도였다. 어느 날은 내게도 노래를 불러보라 권했는데, 쑥스럽고 생각나는 곡도 없어 거절했다. 가슴속에 노래를 간직하고 있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의 차이였을 것이다.
할머니가 온전치 못한 이목구비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노래할 때, 손가락이 없이 뭉툭한 그녀의 손을 내가 쓰다듬으며 그 노래를 들을 때, 우리 사이에 무엇이 있었다. 그것을 행복이라고 부르고 싶었다. 행복은 그녀나 나에게 있지 않고 그녀와 나 사이에, 얽힌 우리의 손 위에 가만히 내려와 있었다.
.... 나는 그들을 본받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들 같은 사람들을 위해 살고 싶다고도 생각했다. 40년간 섬에서 한센인들을 돌보다가 노쇠해지자, 편지 한 통 써두고 말없이(화려한 찬사를 받을까 봐) 고국으로 떠난 두 외국인 수녀처럼.
그렇게 생각할 때, 나와 생각 사이에 또 행복 같은 것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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