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산. 바. 라. 기.
전쟁 같은 맛 본문
지은이인 그레이스 조(Grace M. Cho)는 미국 스태튼아일랜드대학 사회학 교수로 한국인 어머니를 둔 미국인이다. 한 살 때인 1972년에 미국인 아버지를 따라 태평양을 건넜다. 외국인 혐오와 인종 차별이 심했던 워싱턴주의 작은 마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10대 때 어머니가 조현병이 발병하면서 어두운 사춘기를 겪는다. 그녀는 역경을 딛고 일어서 대학 교수가 되고 어머니의 한 많은 일생을 이 책으로 펴냈다.
그녀는 성장하고 나서 어머니가 미군을 상대하는 매춘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어머니의 조현병을 생물학적 차원이 아닌 사회적 질병으로 인식하면서 사회학자로서 세상의 구조악을 드러내는 일에 몰두한다. 동시에 어머니의 상처를 보듬으며 함께 아파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 <전쟁 같은 맛(Tastes Like War : A Memoir)>도 그런 작업의 결과물이다.
책을 읽으면 어머니가 왜 조현병이 발병할 수밖에 없었는지 납득이 된다. 어머니의 이름은 군자다. 군자는 일제 강점기에 유년기를 보내고 6.25전쟁을 겪으며 부모 형제를 잃는 비극을 겪는다. 굶주림 속에서 군자는 여느 여성처럼 기지촌으로 흘러 들어간다. 거기서 미국 외항선원을 만나 혼혈아를 낳고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 낯선 땅에서 군자는 악전고투를 하며 자식을 키우고 공동체에 적응하려 애쓴다. 군자는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을 고스란히 짊어진 인물이다. 군자의 상심과 고통, 외로움이 사무쳐 조현병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전쟁 같은 맛>은 무자비한 세상의 폭력을 고발하는 것과 동시에 모녀가 서로를 이해하려는 긴 과정을 따스한 필치로 그려낸다. 여기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음식이다. 두문불출하는 어머니를 위해 지은이는 한국 음식을 만들어 함께 나누며 어머니의 마음을 열고 소통한다. 음식은 단순한 먹을거리가 아니라 한 인간의 정체성을 만드는 중요한 요소임을 알게 된다. 밥과 김치가 이렇게 중요하다는 걸 새삼 확인한다. 향수와 음식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사연들에 수 차례 눈물이 났다.
전쟁 후 미국으로 온 많은 한국 여성들이 음식이 맞이 않아 영양실조와 체중 미달에 시달렸고, 우울과 불안 증세를 보였다고 한다. 한국 음식을 구할 수 없다는 건 이들을 더 외롭게 만들어 향수병을 도지게 했다. 군자 역시 그렇게 몸과 마음이 시들어간 것이다. 뒷날 지은이가 한국 음식 조리법을 배우고 어머니와 나누어 먹으며 서로를 위안할 수 있게 된 것은 감동적이다. 군자의 몸은 유폐되어 있었으나 딸을 통해 마음은 어느 정도 한을 풀 수 있지 않았을까. 책 제목으로 쓰인 '전쟁 같은 맛'이 나오는 대목은 이렇다.
"엄마, 음식 잘 잡수고 계세요?" 내가 물었다.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단백질은요?"
엄마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 코를 킁킁거렸다. "나한테 분유를 주더라."
"아, 그래요?" 나는 놀란 척하며 말했다.
하던 생각이 끊긴 듯, 엄마는 다시 조용해지더니 환각적 몽상에 깊이 빠져드는 듯했다.
"그 맛은 진절머리가 나." 엄마는 말했다. "전쟁 같은 맛이야."
<전쟁 같은 맛>은 잔인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치인 한 가련한 인간의 이야기다. 어디 군자만이겠는가. 전쟁 전후로 양공주가 되었거나 그와 관계된 한국 여성이 100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그중 1/10 정도가 미국으로 건너갔다. 국가는 이들을 외면했고 심지어는 백안시하며 경멸했다. 서러움과 한이 오죽했으랴. 그나마 군자는 딸이 있었기에 자신의 삶을 복원하고 그 의미를 되찾을 수 있었다. 세상의 가련한 영혼들에게 바치는 책, <전쟁 같은 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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