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어머니와 닷새를 지내다

샌. 2023. 11. 4. 14:31

고향에 내려가서 어머니와 닷새를 함께 지냈다. 어머니가 거처하시는 방은 저녁에 군불을 넣으면 밤 동안은 찜질방이 된다. 몸을 굽는 데는 최고다. 어머니가 이만큼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도 이 구들장 있는 방 때문이 아닐까 싶다. 나도 닷새 동안 뜨듯한 아랫목 덕을 톡톡이 보았다.

 

시골에서 부엌일은 내 몫이다. 어머니가 쌀을 안쳐주면 식사나 후식 준비, 설거지는 내가 알아서 한다. 먹을거리는 대부분 준비해서 내려간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여느 때보다 식사를 잘하셔서 마음이 놓였다. 마련한 음식을 식구들이 잘 먹어줄 때의 주부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어머니는 잠시도 쉬는 법이 없다. 부지런함에서 어느 누구도 따라가지 못한다. 그래서 건강하게 장수를 하시는지 모른다. 반면에 나는 게으름뱅이다.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귀찮아한다. 어머니와 같이 있으면 둘의 행동은 극명하게 구별된다. 나는 방 밖으로 나서는 일이 별로 없다. 반면에 어머니는 밖에 나가 무슨 일이든 찾아서 한다. 둘은 상대에 대해 포기 상태다. 누구나 생긴 대로 사는 법이지 않은가. 

 

 

삶의 관성이란 무섭다. 평생을 농사일로 보내신 어머니는 알파부터 오메가까지가 농사와 연결되어 있다. 당연히 삶의 보람도 농사일 수밖에 없다. 키운 작물을 자식들에게 나누어 주는 재미에 사시는 것 같다. 아흔이 넘은 노모가 키운 수확물을 이번에도 한 트렁크 가득 싣고 왔다. 받는 게 없더라도 일을 덜 하시길 바라지만 그런 낌새라도 보이면 손사래를 치신다. 고맙게 먹어주는 것도 효도의 하나라고 뻔뻔하게 생각하며 자위할 뿐이다.

 

 

집 안팎으로 핀 가을꽃을 보며 애상에 젖었다.

 

 

집 앞 골목길은 하수관로 공사로 어수선했다. 공사하는 양태를 지켜보니 옛날과는 비교할 수 없게 많이 달라졌다. 낮에는 어쩔 수 없이 길을 막고 공사를 하지만 저녁에 마감할 때면 흙을 채워 주민들이 이용할 수 있게 길을 원상복구시켜 놓는다. 또한 살수차가 와서 물까지 뿌려 먼지가 생기지 않게 해 준다. 뒤처리가 정말 깔끔했다. 다음날 아침에는 다시 메꾼 흙을 파내고 공사를 재개한다. 뭐 이렇게까지 성의를 다하나 싶을 정도였다.

 

 

가을 추수가 끝난 동네 앞 들판이 저녁 노을에 누워 있다. 앞에 보이는 논둑길은 읍으로 오가는 길이었고, 우리 집 농토와 연결된 길이었다. 동무들끼리 '갱밴'으로 놀러나갈 때도 깡충깡충 뛰어다녔던 길이었다. 60년 전 영상이 또렷하게 되살아났다.

 

 

돌아올 때는 액셀을 세개 밟아 나도 모르게 과속을 하게 된다. 음악 볼륨도 최대로 올린다. 그렇게 한 30분 정도 달리면 들끓던 감정이 가라앉는다. 어머니는 며칠 동안이지만 내 덕분에 배불리 잘 먹었다고 하셨다. "혼자 있으면 밥맛이 없어 챙겨 먹기가 싫다." 나는 고개를 흔들며 다시 액셀을 밟은 발에 힘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