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밖에 나오면 잠을 설친다. 익숙한 잠자리가 아닌 탓이다. 특히 베개가 문제다. 다음부터는 내 베개를 갖고 다녀야 할지 고민을 해 봐야겠다. 젊었을 때는 아무 데서나 단숨에 잠들었는데 늙어서는 잠이 까다로워졌다. 외부 잠자리의 불편은 여행을 다니는 것이 귀찮아지는 이유 중 하나다.
일찍 잠을 깨서 빈둥거리다가 바깥 산책에 나섰다. 마침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숙소에서는 설악산 울산바위가 정면으로 보였다. 여행 둘째 날은 울산바위를 가까이서 조망할 수 있는 성인대에 오르는 날이다.
이쪽은 외설악이나 내설악만큼 단풍이 화려하지 않고 차분하다.
성인대(聖人臺, 645m)는 화암사(禾巖寺)에서 오른다. 절 안내문에는 '금강산 화암사'라고 되어 있는데 여기 산줄기는 금강산에 속하는가 보다. 그렇다면 이곳은 설악산이 끝나고 금강산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아내한테는 성인대가 우리 마을 뒷산 정도라고 했는데 훨씬 높았고 경사도 가팔랐다. 일부러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고 전에 수월하게 올랐던 기억 때문이었다. 가볍게 생각해서 스틱도 준비하지 않았다. 힘들었을 텐데 내색 않고 걸어준 아내가 고마웠다. 다리가 많이 좋아진 탓이다. 전 같으면 이런 길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다.
전에 왔을 때는 바람이 너무 강해 정상의 암반으로 나가지를 못했다. 이번에는 바람이 잔잔하면서 따스하기까지 했다. 울산바위를 조망하며 암반 위에서 여유 있게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많았다.
늦은 점심은 속초 중앙시장에서 순대국밥을 맛있게 먹었다. 시장 구경을 하며 닭강정을 비롯한 몇 가지 간식거리를 샀다. 사람이 많이 모이거나 맛집이라고 줄 서는 건 꺼려하지만, 짧은 시장 구경은 그런대로 재미있었다.
환할 때 숙소로 돌아와서 쉬었다. 투숙객 중에서는 아마 우리가 제일 늦게 나가고 제일 빨리 돌아올 것이다. 그럴 나이가 된 것에 서로 마주보며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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