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하찮은 것이 소중하다

샌. 2023. 10. 21. 17:40

아침에 비가 살짝 뿌리고 지나갔다. 기온이 뚝 떨어졌다. 다행히 곧 하늘이 개고 가을 양광이 온 누리를 환하게 비추었다. 자석에라도 끌리듯 밖으로 나가 뒷산길을 걸었다. 자연이 주는 축복을 몸과 마음으로 감사히 받아들이면서.

 

 

8년 전에 일본 야쿠시마 트레킹을 할 때였다. 일본 사람들은 좁은 산길에서 마주 오는 사람을 만나면 길에서 비켜나 멈춰 서서 먼저 가도록 양보를 했다. 수십 명을 만났지만 단 한 사람도 예외가 없었다. 너무 예의가 발라 황공할 정도였다. 하찮을 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적잖은 문화 충격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어깨를 부딪치는 걸 마다하고 서로의 갈 길을 간다.

 

그때 일이 떠올라 오늘은 나도 산길에서 일본 사람 흉내를 내 보았다. 너댓 사람밖에 만나지 못했지만 반응이 재미있었다. 말로 표현은 안 해도 무척 고마워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대개 종종걸음을 치며 빨리 지나갔다. 미안한 마음이 있기도 했을 것이다. 또한 존중받는다는 느낌에 가슴이 따스해지지 않았을까. 더불어 내 기분도 좋아졌다. 사람살이를 포근하게 만드는 것은 거창한 이념이나 사상이 아니다. 사소하고 하찮게 보이는 행동이 우리에게는 더욱 소중하지 않을까. 

 

 

건강이 인간을 뻔뻔하게 만들기 쉬우며, 차라리 병약함에 성스러움이 깃들어 있는지 모른다. 온통 흉터 투성이인 가을 나뭇잎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맨발 걷기를 하러 먼저 올라간 아내의 신발이 산길 초입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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