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394

비 온 뒤 텃밭

그동안 가뭄이 길었다. 텃밭 작물의 잎 끝이 노랗게 변하면서 말라갔다. 페트병에 물을 담아 몇 차례 날랐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였다. 소꿉장난 텃밭이지만 비를 기다리는 마음이 간절했다. 이번에 내린 비는 말 그대로 단비였다. 한자로는 '감우(甘雨)', 영어로는 'welcome rain'이다. 밭은 생기가 확 살아난 듯했다. 아내와 밭에 나가 즐겁게 몸을 놀렸다. 내 몫은 고랑에 난 풀을 뽑아주는 일이다. 가물어서 수확물이 시원찮지만 그래도 몇 가지를 거두어 왔다. 감자와 콩은 한 끼 먹을 정도만 가져와 저녁 반찬으로 맛있게 먹었다. 아삭, 하고 씹히는 금방 따온 싱싱한 오이도 달았다. 저녁 식탁은 텃밭에서 얻은 푸성귀로만 차려졌다.

사진속일상 2022.06.17

무주 모임

무주에서 장모님의 구순 기념을 겸해 처갓집 형제들이 모였다. 불가피한 일이 생기는 바람에 두 가족이 빠져 단출해진 모임이 되었다. 숙소는 무주리조트 내 진달래동이었다. 둘째 날 오전에는 곤돌라를 타고 설천봉(1,520m)에 올랐다. 걸음이 되는 사람은 내친김에 향적봉으로 향했다. 덕유산의 주봉인 향적봉(1,614m)은 설천봉에서 20분이면 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고산지대 날씨는 먹구름이 몰려왔다가 햇볕이 났다가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원래는 나 혼자 덕유산 등산을 하려고 했으나 궂은 날씨 예보 때문에 포기했다. 막상 비는 오후가 되어서야 내렸으니 일찍 나섰으면 지장이 없을 뻔했다. 향적봉에는 여러 꽃들이 있었지만 그중 함박꽃이 제일 눈에 띄었다. 오래된 주목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오후에는 무..

사진속일상 2022.06.11

속초, 춘천 여행

몸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약속된 일정이라 어쩔 수 없이 다녀온 여행이었다. 1박 2일 중 첫째 날은 춘천, 둘째 날은 속초를 계획했으나 중부 영서 지방은 날이 궂어서 바로 속초로 직행했다. 처제네가 동행했다. 처음 들린 곳은 영랑호였다. 울산바위 쪽에서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한 차례 소나기가 지나갔다. 부교로 된 영랑호수윗길을 건너 호수를 반 바퀴 돌았다. 멀리 설악산과 깨끗한 호수, 그리고 속초 시내가 잘 어우러진 풍경이었다. 영랑호의 동쪽 데크길은 새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한쪽에서는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었다. 반 바퀴를 돌고 왔더니 하늘은 말끔하게 개었다. 호수를 가로지르는 부교는 잘 만들어놓은 것 같다. 환경 단체가 부교 설치를 반대한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는데, 혹 철새의 도래에 악영향을 주는지는..

사진속일상 2022.05.20

풍성해지는 텃밭

열흘 전부터 텃밭에서 나는 상추와 부추를 먹고 있다. 먹고 싶을 때면 슬리퍼를 신은 채로 나가 뜯어올 수 있으니 너무나 고마운 텃밭이다. 시장에서 사 먹는 맛과는 비교할 수 없다. 좀 더 지나면 이웃에 나누어주면서 먹어도 남는 풍성한 채소를 생산해 줄 것이다. 상추, 부추, 오이, 호박, 감자, 고구마, 옥수수, 시금치, 토마토, 생강, 겨자, 참외, 애플수박, 대파, 고추 네 종류(일반, 청량, 가지, 당뇨), 강낭콩 세 종류. 올해 심은 작물이다. 이번에 나가서는 고추와 토마토에 지지대를 세워주고 고랑의 잡초를 뽑았다. 작년보다 내 노동량이 늘고 있다. 작년에는 아내에게 일임했지만 올해는 가능한 한 힘을 보태려 한다. 잡초를 뽑을 때는 땅이 말라선지 흙먼지가 일었다. 어릴 때 흙을 만지며 놀던 생각이..

사진속일상 2022.05.17

넉 달만에 어머니를 찾아뵙다

코로나 일 확진자 수가 여러 달째 수십만 명대를 기록하며 발을 묶었다. 노모를 찾아보려고 해도 혹시 감염을 시킬까 불안해서 가지를 못했다. 다행히 파고의 정점이 지나고 이번 달부터는 야외 마스크 쓰기도 해제되었다. 어버이날을 맞아 고향에 내려갔다. 넉 달만이었다. 이제 고향은 어릴 때의 그 포근하고 넉넉했던 품이 아니다. 시간이 얼마나 만상을 쇠락시키는지 확인시켜주는 쓸쓸한 공간이다. 열역학 제2법칙을 고향만큼 명료하게 보여주는 곳이 있을까. 새로워지는 것도 분명 있으련만 과거를 붙잡고 있는 내 눈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병들고 낡고 스러지는 안쓰러운 모습으로 가득한 곳이 고향이다. 동네 어귀에서 보면 소백산 옥녀봉이 여일하게 가깝다. 올해는 좋은 소식이 있을려나. 동생 집에 제비가 집을 짓기 시작했다. ..

사진속일상 2022.05.09

꽃지 튤립

매년 4월이면 태안 꽃지 해변에서 튤립 잔치가 열린다. 튤립 전시회로는 우리나라에서 최대 규모가 아닐까 싶다. 해가 갈수록 꽃으로 꾸미는 디자인이 발전해가는 느낌이다. 올해는 튤립으로 단장한 대형 양탄자가 눈길을 끌었다. 1시간 30분 정도 둘러보면서 꽃향기에 흠뻑 빠졌다. 산을 헤매며 숨어 피는 야생화를 찾는 재미도 있지만, 이렇듯 거대 풍경에 압도당하는 맛도 좋다. 입장료는 12,000원이다. 전주에서 집으로 올라오는 길이었다. 원래는 꽃지에서 일몰을 보려 했으나 미세먼지가 심해 대기가 뿌옇고 하늘이 밋밋해서 포기했다. 간월도를 지나면서 지는 해와 잠시 인사를 했다.

꽃들의향기 2022.04.30

수성당 유채꽃

부안의 수성당에 유채꽃밭이 있다. 바다를 옆에 끼고 있어서 노란색 유채꽃이 주변 풍광과 잘 어울리는 곳이다. 장모님을 모시고 바다 구경을 나온 길에 잠시 들렀다. 비가 오고 난 뒤에 잔뜩 흐린 날씨였다. 그래선지 유명세에 비해 찾은 사람이 별로 없어 한산했다. 수성당(水聖堂/水城堂)은 바다를 지키는 수성할머니라는 해신을 받들어 모시는 곳이다. 주민들은 매년 정월 초사흘에 수성당에 모여서 뱃길의 안녕을 위하여 치성을 드린다고 한다.

꽃들의향기 2022.04.29

텃밭 울타리를 보수하다

아내는 텃밭 얘기를 할 때면 눈에 이채(異彩)가 돈다. 그만큼 텃밭에 관심이 있다는 뜻이다. 텃밭보다 더한 애정의 대상은 손주다. 손주한테서 전화가 오면 아내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는 더 올라간다. 텃밭 울타리를 보수했다. 전에는 대충 둘러쳐 놓아서 보기에 좋지 않았는데, 이번에 밭 전체를 사람 키 높이로 둘러쌌다. 굳이 경계를 지을 필요가 있는지 물었지만, 사람들이 밭 안으로 들어와 밟고 다녀서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볼 때 영역 표시는 동물의 기본 본능이 아닌가 싶다. 씨를 뿌린 땅에는 상추만 작은 초록잎을 내밀었을 뿐 아직 뚜렷한 소식이 없다. 파가 자라는 이랑에는 주인공보다 풀이 더 무성하다. 짐짓 모른 체 해찰하다가 곧 풀 뽑는 아내 일을 도와주었다. 지저분한 걸 못 보는 성미라 이러다가..

사진속일상 2022.04.15

아내와 봄길 드라이브

아내와 봄길 드라이브에 나섰다. 우선 벚꽃을 보기 위해 집에서 멀지 않은 남종면의 한강변 벚꽃길로 향했다. 그러나 초입인 분원리로 진입하는 길이 막혔다. 우리 같은 생각을 한 사람이 한둘이 아닌가 보다. 대타로 경안천습지생태공원으로 방향을 돌렸다. 낮 기온이 30도 가까이 올라가는 초여름 날씨였다. 서울은 벚꽃이 지지만 여기는 이제 한창이다. 서울 사람들이 올해의 마지막 벚꽃을 보기 위해 이곳으로 찾아온다. 점심은 천서리에서 막국수로 맛나게 먹었다. 수육을 첨가했다. 외식은 꼭 두 달만이다. 이젠 코로나의 기세가 꺾였으니 조금은 자유롭게 행동해도 될 것 같다. 식당은 평일인데도 사람으로 가득하고 대기표를 뽑아야 했다. 식당 안에서도 술 마시고 떠들며 거침이 없다. 나는 자꾸 몸이 움츠러들었다. 식사 후에..

사진속일상 2022.04.12

새 이랑을 만들고 비닐을 씌우다

옥수수를 심을 새 이랑을 만들었다. 돌밭이라 작년에는 놀리던 땅이었는데 올해는 울타리를 겸할 양으로 옥수수를 심으려고 아내는 욕심을 낸다. 머슴인 나야 마나님 하라는 대로 따를 뿐이다. 고민을 하지 않으니 심간이 편하긴 하다. 몸만 움직여주면 된다. 어설프긴 하나 비닐까지 다 씌웠다. 아내를 살펴보니 여자에게는 경작 본능이라는 게 있는 것 같다. 여자의 쇼핑 욕구도 경작 본능의 일부분이지 싶다. 경작 본능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현대인은 쇼핑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식물을 가꾸는 일이 자식을 키우는 것과 여러 모로 닮아 있다. 며칠 전에는 길을 가다가 밭 옆에서 두 할머니가 대화하는 소리를 들었다. 밭일을 하는 게 너무 재미지다는 것이다. 나는 밭에 억지로 끌려 나가는 편이지만 할머니의 말에..

사진속일상 2022.04.01

봄 오는 동강

코로나에 답답한 시국이 더해져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고 정선 동강으로 드라이브를 나갔다. 아내와 함께 했다. 동강을 선택한 것은 이맘때 피어나는 동강할미꽃을 보기 위해서였다. 영월을 경유하여 찾아간 정선 동강은 맨 먼저 나리소전망대의 풍경이 반겨주었다. 강변에는 그저께 내린 잔설이 아직 남아 있었다. 강가에 내려가니 괴불주머니와 냉이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버들강아지의 뽀얀 솜털도 반짝였다. 강변길에는 바람에 날려온 비닐조각이 나무에 걸려 있어 볼성사나웠다. 농사짓는데 쓰이는 비닐을 제대로 수거하지 않아 어디를 가나 이렇듯 비닐 공해다. 농민의 의식이 우선이지만 안 될 때는 국가에서 사후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할 것 같다. 멀리서 보는 것과 달리 가물어서인지 강물도 이끼가 많고 탁했다. 동강할미꽃을 보자면 저..

사진속일상 2022.03.23

손주와 산책

코로나에서 벗어난 손주한테 찾아가서 집 주변을 함께 산책하다. 두 주 전에 제 어미가 밖에 나갔다가 코로나에 걸리고 손주도 따라서 감염되었다. 둘은 열흘 정도 격리 생활을 했다. 이제 회복되었지만 맛 감각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코로나에 걸려서 힘들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손주는 반대로 싱글벙글이다. 학교와 학원에 안 가고 엄마와 종일 함께 있으면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으니 신이 날 만도 하다. 내일부터 학교에 가야 한다니까 시무룩해진다. 손주는 동네에 사는 고양이들과 친구가 되어 있다. 먹이가 든 봉지를 들고가니 서너 마리가 다가온다. 얘들은 사람을 피하지 않는 걸 보니 집에서 기르던 고양이들 같다. 먹이가 탐나서인지 산길까지 따라온다. 손주는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만난다. 할아버지한테는 손주에..

사진속일상 2022.03.21

봄비 내리고 텃밭을 다듬다

반가운 봄비가 내리고 땅이 촉촉해져서 텃밭에 나가 이랑을 다듬었다. 며칠 전에 사다 놓았던 거름을 뿌리고 흙과 잘 섞어주었다. 작년보다는 이랑이 제 모습을 갖추었다. 텃밭은 백 퍼센트 아내 몫이다. 나는 요청이 있을 때만 도와준다. 힘이 필요한 일이거나, 또는 두 사람의 손이 있어야 할 때다. 올해 무슨 작물을 심을지 아내 머릿속에는 있겠지만, 나는 알지 못한다. 텃밭 농사가 시작되니 아내는 설레는 기색이 여실하지만, 나는 무덤덤하다. 솔직히 일을 도와달라고 하면 좀 귀찮다. 그래도 약간의 땀을 흘린 뒤 정리된 텃밭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일을 마치니 다시 빗방울이 한둘씩 듣기 시작했다.

사진속일상 2022.03.14

인연

현재 전 세계 인구는 80억 명이다. 2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나타난 이래로 지구상에 생존했던 사람들의 총 숫자는 약 1천억 명이라고 한다. 이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 중에서 어쩌다 당신과 만나게 되었을까. 바늘 끝 같은 한 점 시공간을 공유하면서 서로 끌리게 되었을까. 호텔 커피숍을 들어서는 당신을 멀리서 보면서 나는 직감했다. 내 사람이구나. 밤색 투피스를 입고 고개를 약간 치켜든 채 당신은 나를 향해 걸어왔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사이였던 것처럼 망설임이 없었다. 무슨 신호를 접수한 것일까, 내 몸 안에서는 호르몬이 홍수처럼 분출했고 심장은 방망이질하듯 뛰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 당신일까. 짧은 일별일 뿐인데도 치명적인 끌림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반면에 수십 년을 알고 지내..

참살이의꿈 2022.02.27

신륵사와 흰죽지

수녀님을 만나러 이천에 갔다가 여주를 지나는 길에 신륵사에 잠시 들리다. 신륵사는 '신륵(神勒)' - 신령의 힘으로 굴복시킴 - 이라는 이름과 함께 풍광 좋은 남한강변에 위치한 것도 다른 절과 달리 특이하다. 남한강의 옛날 이름은 여강(驪江)이었다. 강월헌(江月軒)에서 바라보는 여강의 경치는 일품이다. 눈맛이 제일 시원한 곳이 강월헌과 불탑이 있는 이곳이다. 해 지는 이곳에서 속울음 삼키며 하염없이 앉아 있던 때가 있었다. 높이 9.4m의 신륵사다층전탑(神勒寺多層塼塔),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려 시대의 벽돌 탑이라고 한다. 은행나무 관세음보살. 신륵사 경내에는 옛 조포(潮浦) 나루터가 있다. 조포나루는 삼국시대부터 한양의 마포나루와 광나루, 여주 이포나루와 함께 4대 나루 중 하나였다. 이곳에는 통행자의..

사진속일상 2022.02.24

경안천 오포 구간을 걷다

햇볕이 좋아 밖에 나왔더니 낮 기온이 겨우 0도에 걸치는 싸늘한 날씨다. 바람이 약간만 세게 불어도 한기가 느껴진다. 아내와 함께 오포대교를 중심으로 해서 상하류를 오가는 길을 걷다. 경안천 풍경. 이 구간에는 십여 마리의 고니를 언제나 볼 수 있다. 이 가족은 좋은 데 터를 잡은 것 같다. 왜가리는 만사가 귀찮다는 듯 한데 모여서 쉬고 있다. 민물가마우지 흰뺨검둥오리 물닭 강 모래톱 갈대밭에 고라니가 보인다. 이곳 경안천은 주택가에 둘러싸여 있어 산에서 멀다. 얘들이 어떻게 여기까지 내려왔는지 불가사의하다. 여기서 사는 걸까, 아니면 인적이 드문 한밤중을 틈타 산으로 왕래를 하는 걸까. 경안천에 나오면 다양한 생명붙이들을 보는 재미가 있다. 다들 하늘로부터 받은 소명대로 조화롭게 살아간다. 종마다 자신..

사진속일상 2022.02.23

비행기를 보면 가슴이 뛴다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면 가슴이 뛴다. 탈것에 대한 동경이 있지만 그중에 제일은 역시 비행기다. 내가 다시 태어난다면 해 보고 싶은 직업 일순위는 여객기 조종사다. 어렸을 때 고향 마을 앞을 지나가는 기차를 보며 운전석에 앉고 싶다는 꿈을 가졌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는 잠시 철도고등학교에 관심을 두기도 했다. 그런데 비행기 조종에 대해서는 아예 엄두를 내지 않았다. 지금처럼 비행기가 보편화되고 다양한 조종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었다면 목표로 했을지 모르겠다. 영종도에 가는 길에 하늘정원에 들러서 비행기 구경을 실컷 했다. 하늘정원에서는 인천공항에 착륙하는 비행기가 머리 위로 지나간다. 멀리 남쪽에서 한 점으로 나타나서 점차 모습을 드러내고 잠시 뒤면 거대한 덩치를 자랑하며 머리 위를 스쳐 간다. 창에는 ..

사진속일상 2022.02.18

전주 가는 길

이번에 전주 가는 길은 서산과 안면도를 지나는 우회로를 택했다. 두 달 전에 개통한 보령해저터널이 궁금해서였다. 원산도와 대천항을 연결하는 보령해저터널은 길이가 6.9km로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긴 해저터널이다. 10년의 공사 기간에 5천 억이 투입되었다. 안면도 영목항과 대천항 사이에는 원산도라는 섬이 있는데, 영목항과 원산도는 교량으로, 원산도와 대천항은 해저터널로 연결되어 있다. 서산을 지나면서 시내에 있는 서산호수공원에 들렀다. 노랑부리저어새가 겨울을 나기 위해 이 호수에 찾아왔다는 보도를 봤기 때문이다. 호수공원은 과거에는 농업 용수로 이용되던 저수지였는데 지금은 시민을 위한 휴식 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호수공원에는 철새 탐조대가 있다. 천연기념물 206-2호인 노랑부리저어새가 날아왔다는 안내..

사진속일상 2022.02.12

한 장의 사진(28)

귀향(歸鄕)은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옴'이고, 귀성(歸省)은 '부모를 뵙기 위하여 객지에서 고향으로 돌아가거나 돌아옴'이다. 귀성에는 '살필 성(省)'이 들어 있듯이 물리적인 거리 이동만 아니라 부모를 뵙는다는 뜻이 있다. 사람들이 설날이나 추석에 고향을 찾는 행동에는 귀성의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다. 오늘이 설날인데 귀성을 하지 않은 것은 처음이다. 성인이 된 뒤로 50년이 흘렀는데 설 명절은 그동안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추석은 몇 차례 못 내려간 적이 있지만, 설날 당일에 부모님께 세배를 드리는 일은 철칙처럼 지켰다. 그런데 올해부터 달라졌다. 이젠 교통 정체를 견디며 이동하기도 힘들고, 형제가 명절에 모인다 한들 서먹하니 따스한 귀성의 의미가 별로 없다. 얼마 전에 고향에 갔을 때 어머니께 ..

길위의단상 2022.02.01

철원 두루미 탐조 투어

두루미 탐조 투어가 재개되어 아내와 같이 참가했다. 철원에 있는 DMZ두루미평화타운에서 매일 10시와 14시에 버스로 출발한다. 화요일은 쉬는 날이다. 느긋하게 14시 투어를 염두에 두고 토교저수지 주변을 돌아보다가 찾아갔더니 우리가 접수 1번과 2번이었다. 한 회에 32명으로 인원 제한이 있어 혹시 일찍 마감하면 어쩌나 여겼는데 기우였다. 총 19명이 함께 했다. 타운 앞에는 우리나라에 찾아오는 7종의 두루미 모형이 있다. 각 두루미의 특징을 잘 나타냈다. 왼쪽부터 두루미, 재두루미, 흑두루미, 시베리아흰두루미, 캐나다두루미, 검은목두루미, 쇠재두루미다. 지난 여러 차례의 경험으로는 철원에서도 두루미를 보는 게 만만치 않았다. 눈에 보이는 두루미가 많지 않았고, 또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올해는 ..

사진속일상 2022.01.25

아쉬운 단풍 여행

올해 단풍은 낙제점이다. 비가 잦았던 탓인지 예년에 비해 영 시원찮다. 처제네와 강원도로 단풍 여행을 떠났지만 제대로 된 단풍은 구경하지 못했다. 아직 철이 약간 이른 탓도 있지만 단풍이 든 나무도 색깔이 선명치 못하고 한편에서는 말라버린다. 먼저 설악산 십이선녀탕에 들렀다. 여기는 작년에 왔다가 출입 시간인 12시가 지났다고 입장을 시켜 주지 않아 발길을 돌렸던 곳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통제를 안 한다. 자기들 멋대로 오락가락이다. 십이선녀탕 초입부는 초록 세상이고 한참을 올라가야 가끔 단풍을 만난다. 그마저도 차마 탄성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칙칙하다. 이 정도면 설악의 단풍이라 칭하기 어렵다. 남자 둘은 응봉폭포까지 걸었다. 두 여자가 뒤처졌기 때문에 깊게 들어갈 수는 없었다. 십이선녀탕 계곡에서 제..

사진속일상 2021.10.23

손주와 고구마 캐기

텃밭에 심은 고구마를 캤다. 진작부터 고구마 캐기를 기다리고 있던 손주도 부리나케 달려왔다. 좁은 텃밭에 심은 고구마라야 얼마 되지 않는다. 그것도 고구마가 목적이 아니라 고구마순을 먹기 위해서였다. 대략 쉰 포기 정도를 심어 놓고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다른 작물에 비하면 홀대를 한 것이다. 그래서 고구마 수확은 기대하지 않았는데 의외로 씨알이 굵었다. 손주의 고구마 캐기 체험에 더해 얻은 망외의 재미였다. 고구마는 심어놓기만 했지 거의 제 스스로 자라준 것이다. 거름도 주지 않았다. 되면 되고 말면 말고, 무시했는데 뜻밖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일할 때 옆에 손주가 있으니 활기가 난다. 두 노인만이면 무슨 웃을거리가 있겠는가. 우리는 손주의 작은 손짓, 말짓 하나에도 추임새를 넣어주고 감탄사를 연발한..

사진속일상 2021.10.15

성지(31) - 배론

성지 46. 배론 제천시 봉양읍에 있는 배론 성지는 1800년대부터 박해를 피해 모인 천주교 신자들의 교우촌이다. 교우들은 화전을 일구고 옹기를 구워 생활하며 궁핍한 가운데서도 하느님을 섬기며 살았다. 이 마을 계곡이 배[舟] 밑창을 닮았다 하여 '배론[舟論]'이라고 부른다. 배론은 천주교 성지 중에서도 아름답고 잘 정돈된 성지다. 배론에는 황사영 백서 토굴, 성 요셉 신학당, 최양업 토마스 신부 묘가 있다. 배론 성지는 고향 가는 길에 있어 오래전부터 자주 찾았는데 근래는 뜸했다. 거의 10년 만에 찾아보는 것 같다. 입구에 들어서면 최양업 토마스 기념 성당이 보인다. 잔디 정원 앞에 '인생 미로'가 있다. 동심원 모양을 따라 중심을 향해 걸으며 지나온 삶을 정리해 보는 길이다. '은총의 성모 마리아 ..

사진속일상 2021.10.03

늦은 추석 귀성

추석이 지나고 열흘 뒤에야 고향에 찾아가게 되었다. 가족과 친척이 함께 모여 추석을 쇠는 것도 의미 있겠지만, 시대가 변하고 있으니 꼭 추석날이 아니라 각자 편리한 날짜에 방문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올해 나 같은 경우는 조상님 뵙기에 면목이 없기는 하다. 명절이 즐거운 것은 어릴 때 얘기다. 어른이 되어 이런저런 사정이 중첩되면 눈치 볼 일도 많아지고 체면치레도 해야 하고 여간 복잡하지 않다. 그중에서도 고향에 계신 노모 걱정이 제일 크다. 이래저래 고향 내려가는 마음이 무겁다. 내려가는 길에 먼저 용소막성당에 들렀다. 성당 주변 느티나무는 여전히 늠름하고 아름다웠다. 경황없이 나오다 보니 카메라를 챙기지 못해 휴대폰으로 찍었다. 용소막성당에서 10여 분만 더 내려가면 배론성지다. 고향 가..

사진속일상 2021.10.02

비 오는 날 부침개

새벽 빗소리에 잠시 눈을 떴다가 다시 잠들었다. 가을비가 끊어질 듯 이어지며 내린다. 하늘은 짙은 먹구름으로 덮여 있고 밖은 어두침침하다. 열린 양쪽 창문으로 낙숫물 소리가 구슬픈 음악처럼 울린다. 지금 같은 초가을의 때, 가을비는 기분을 멜랑콜리하게 만든다. 누가 어깨를 툭 치면 찔끔 눈물이라도 쏟을 것 같다. 아침에는 가까운 공원을 산책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낮이 되니 만사가 귀찮다. 이럴 때는 부침개와 막걸리 한 잔이 내 따스한 위로가 되어 준다. 아내와 마주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 손주 얘기, 이웃 얘기, 텃밭과 터 얘기 등이 또 다른 반찬이다. 과거 회상으로 접어들려는 아내를 나는 한사코 말린다. 산다는 건 누구에게나 고단한 일일 거라고 우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도..

사진속일상 2021.09.29

40년 기념 속초 여행

40년이라는 세월의 무게가 묵직하다. 그때는 이만큼 오래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너무 아득해서 가늠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나고 보면 인생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이다. 꿈을 꾸면서 문득 꿈임을 알아채게 되는, 인생의 매듭을 통과할 때마다 드는 씁쓸함이다. 결혼 40주년을 맞아 아내와 속초에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저녁은 대포항 어시장에서 회(방어, 광어, 오징어)를 포장해 와서 숙소에서 오붓이 즐겼다. 푹 끓인 매운탕이 특별히 맛있었다. 예식을 마치고 김포공항에 갔는데 황망 중에 주민등록증을 챙겨 오지 않아서 신혼여행이 펑크 나는 줄 알고 무척 당황했었다. 안절부절못하다가 공항에 파견 나온 중앙정보부 사무실에 가서 확인서를 발급받고 겨우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그때 직원이 신혼부부라 특..

사진속일상 2021.09.11

양평 나들이

정체전선이 한반도에 머물며 연일 비가 내린다. 이틀 전에는 태풍 오마이스가 남부 지방을 지나갔다. 여름의 끝자락에 궂은 날씨가 이어진다. 비에도 불구하고 아내와 함께 양평으로 드라이브를 다녀왔다. 이웃의 지인이 양평 강상면에 마련한 터에 들리고, 천서리에서 점심으로 막국수를 먹었다. 양평으로 가는 길은 예전에 밤골 생활을 할 때 어지간히 오갔던 길이다. 어느덧 20년 전인데, 이 코너를 돌면 무슨 음식점이 있었고 어떤 맛이었는지, 길을 달리니 옛 기억이 오롯이 떠올랐다. 무엇에 홀려 그렇게 올인했는지, 지나 보니 씁쓰레한 꿈이었다. 두물머리를 찾았을 때는 다행히 비가 멎었다. 산책로를 따라 1시간 정도 걸었다. 평일이고 날씨가 궂어 사람이 없으리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두물머리 느티나무 주변은 바람 쐬러 ..

사진속일상 2021.08.26

살아나는 꿈

아내는 텃밭 가꾸는 재미에 푹 빠져 있다. 그동안 몇 차례 텃밭을 한 적이 있었지만, 올해처럼 몰두하는 것은 처음 본다. 수확해서 먹는 것은 둘째고, 작물을 심고 기르는 즐거움이 우선인 것 같다. 텃밭과 채소 얘기를 할 때는 얼굴에 생기가 돈다. 텃밭과 사랑에 빠진 게 틀림없다. 이번에 얻은 텃밭은 집 옆에 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 아침잠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텃밭에 나간 것이다. 돌아올 때는 큰 비닐봉지에 뭔가가 한가득 들어 있다. 아내의 얼굴 표정도 밝고 환하다. 여느 때 같았으면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얼굴이 부은 채 방에서 나왔을 터였다. 아내의 건강에도 텃밭이 일조를 하고 있다. 내년에도 계속 텃밭을 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텃밭을 포함한 주변 땅에 아파트 공사가 예정되..

참살이의꿈 2021.08.18

남한산성의 여름 하늘

입추가 지나니 공기의 느낌이 다르다. 길었던 더위도 이제 막바지다. 어제는 파란 하늘과 시원한 바람에 끌려 남한산성에 갔다. 탁 트인 곳에서 하늘의 구름을 맘껏 보며 걷고 싶었다. 하늘의 구름은 천변만화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잠깐 한눈을 팔고 다시 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그려져 있다. 하늘 전망이 좋은 그늘에 앉아 구름 구경만 해도 하루 해가 짧을 것 같다. 남한산성은 여러 달 공사를 하더니 시멘트로 된 길 양 켠에 코코넛 매트를 깔아서 걷기에 훨씬 편해졌다. 북문은 완전히 헐고 새로 짓는 중이었다. 남문, 수어장대, 북문을 지나 샛길을 타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려 했으나 통행금지가 되어 있었다. 남한산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어 그만큼 관리 및 유지하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는 것 같다. 휴가철이라 ..

사진속일상 2021.08.10

여름 불꽃, 배롱나무꽃

불꽃나무로 불러도 되겠다. 꽃이 활짝 핀 배롱나무는 나무 전체가 붉은 화염으로 불타 오르는 것 같다. 여름 한낮에 배롱나무 가까이 가니 불에 데일 듯 뜨겁다. 이열치열 꽃구경으로는 배롱만 한 나무가 없겠다. 손주 데리고 의왕에 갔다 오는 길, 갈미한글공원에서 정열의 붉은 배롱나무를 만났다. 아이에게 배롱나무를 설명해주다가 문득 이름의 연원이 궁금해졌다. 배롱나무는 백일 동안 꽃이 핀다고 '(목)백일홍'이라고도 부르는데, '백일홍'이 '배기롱'으로, 다시 '배롱'으로 발음의 편의상 변한 것이라는 설명이 그럴듯하다.

꽃들의향기 2021.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