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40년 기념 속초 여행

샌. 2021. 9. 11. 12:28

40년이라는 세월의 무게가 묵직하다. 그때는 이만큼 오래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너무 아득해서 가늠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나고 보면 인생은 일장춘몽(一場春夢)이다. 꿈을 꾸면서 문득 꿈임을 알아채게 되는, 인생의 매듭을 통과할 때마다 드는 씁쓸함이다. 

 

결혼 40주년을 맞아 아내와 속초에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숙소 앞 바닷가에 난 외옹치 바다향기로를 걷다.
속초해수욕장까지 갔다가 다시 숙소로 돌아오다.
바닷가의 갈매기 두 마리.
대포항을 가로지르는 보도 다리.

 

저녁은 대포항 어시장에서 회(방어, 광어, 오징어)를 포장해 와서 숙소에서 오붓이 즐겼다. 푹 끓인 매운탕이 특별히 맛있었다.

 

예식을 마치고 김포공항에 갔는데 황망 중에 주민등록증을 챙겨 오지 않아서 신혼여행이 펑크 나는 줄 알고 무척 당황했었다. 안절부절못하다가 공항에 파견 나온 중앙정보부 사무실에 가서 확인서를 발급받고 겨우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그때 직원이 신혼부부라 특별히 봐준다고 선심을 쓰듯 말했다. 어쨌든 고마워서 여행에서 돌아오며 다시 사무실에 들러 인사를 했던 기억이 난다.

 

다음날 아침, 롯데리조트 숙소에서 본 속초 시내.

 

잠을 설쳤고 늦잠을 잤다. 아무리 숙소 시설이 좋아도 내 집이 아니면 불편하다. 또한 동해 바다를 앞에 두고 아침 일출을 보지 않은 것도 드문 일이다. "내 집만큼 편한 데는 없어!" 이런 말이 나오면 늙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밖에 나오면 이것저것 보려고 부지런을 떨었지만, 이제는 돌아다니기보다 한 장소에서 푹 쉬고 싶다. 11시를 꽉 채워 체크아웃하고 숙소를 나섰다. 토왕골을 걸어 비룡폭포까지 다녀오기 위해 설악산을 찾았다. 

 

비룡폭포 가는 길은 공사로 어수선하다.
토왕골에 있는 첫 번째 폭포인 육담폭포.
육담폭포 위의 구름다리를 지나 비룡폭포로 간다.
비룡폭포, 단정하고 예쁘다.

 

설악동에서 비룡폭포까지는 약 2km다. 왕복 두 시간 정도 잡으면 남녀노소 누구나 힘들지 않게 다녀올 수 있는 길이다. 아내의 무릎이 성치 않아 우리도 여기까지만 목표로 하고 왔다. 그런데 토왕성폭포 전망대가 400m만 가면 된다는 안내판에 혹해 마음을 바꿨다. 아내는 비룡폭포에 남아 있고, 나만 다녀오기로 했다. 언제 다시 와 보랴, 하는 공통된 생각으로 아내도 권했다. 마침 비룡폭포 계곡에는 설악의 맑은 물소리를 들으며 편히 쉴 수 있는 바위가 있었다.

 

토왕성폭포 전망대까지는 900개의 계단이 연속으로 이어진다.
가을 하늘 구름이 나무를 닮아 있다.

 

힘들게 오를 만했다. 토왕성(土旺城) 폭포는 320m 길이의 3단 폭포다. 이름으로 보면 저 꼭대기에 성(城)이 있었던가 보다. 화채봉에서 시작해 칠성봉을 돌아 토왕성폭포를 만든 물은 비룡폭포, 육담폭포를 지나 쌍천(雙川)으로 합류한다. 

 

 

하산하여 설악동에서 산채비빔밥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귀갓길은 일부러 미시령 옛 국도를 택했다. 예전에 속초를 가자면 이 길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미시령터널에다 서울양양고속도로가 생기는 바람에 찬밥 신세가 된 도로다.

 

옛 미시령휴게소 자리는 썰렁했다. 휴게소 건물은 사라지고 국립공원 관리사무소 한편에 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겨울이면 폭설로 미시령휴게소에 갇히던 시절이 있었다. 과거를 떠올리며 커피라도 한 잔 하려 했는데, 초라한 자판기 안에 캔 음료만 보일 뿐이었다.

 

옛 미시령휴게소에서 내려다보이는 속초.

 

홍천, 양평을 지나 국도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시간은 더 걸리지만 운전하는 맛은 고속도로보다 국도가 더 정감 있다. 늙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은 드라이브하는 재미다. 나에게 운전은 여행의 한 소중한 과정이다. 스쳐 지나가는 풍경에는 여행의 본의(本意)가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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