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비 오는 날 부침개

샌. 2021. 9. 29. 15:41

새벽 빗소리에 잠시 눈을 떴다가 다시 잠들었다. 가을비가 끊어질 듯 이어지며 내린다. 하늘은 짙은 먹구름으로 덮여 있고 밖은 어두침침하다. 열린 양쪽 창문으로 낙숫물 소리가 구슬픈 음악처럼 울린다.

 

지금 같은 초가을의 때, 가을비는 기분을 멜랑콜리하게 만든다. 누가 어깨를 툭 치면 찔끔 눈물이라도 쏟을 것 같다. 아침에는 가까운 공원을 산책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낮이 되니 만사가 귀찮다. 이럴 때는 부침개와 막걸리 한 잔이 내 따스한 위로가 되어 준다.

 

 

아내와 마주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 손주 얘기, 이웃 얘기, 텃밭과 터 얘기 등이 또 다른 반찬이다. 과거 회상으로 접어들려는 아내를 나는 한사코 말린다.

 

산다는 건 누구에게나 고단한 일일 거라고 우리는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도 다른 사람이 보면 팔자 좋게 산다고 여기겠지만 실은 그렇지 않지 않은가. 다른 사람인들 다르랴. SNS에는 환하고 밝은 모습을 자랑하지만 삶이 어찌 반짝이기만 하겠는가. 누구나 각자 나름의 짐을 지고 허덕이며 간다. 인간은 무언가 근심거리를 찾아내야 살아가는 힘을 얻는 존재인지 모른다.

 

어제는 손주를 데리고 시장에 다녀왔다. 시장이 평시에는 한산하지만 5일장이 열리는 날은 그런대로 활기가 있다. 밤 껍데기를 까는 기계도 장날에만 나오기 때문에 일부러 날을 받아 간 길이었다. 4천 원을 주고 밤을 까고, 마늘을 샀다. 손주 뒤에서 한 외국인이 밤 까는 기계가 작동하는 걸 신기하게 구경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성당에 들린 손주는 할머니를 흉내 내며 성모상 앞에서 두 손을 모은다.

 

 

손주는 초등학교 1학년이다. 요사이 제 엄마가 일찍 일 보러 나가기 때문에 손주는 우리집에 와서 아침을 먹고 학교에 간다. 딩동, 초인종을 누르는 소리에 잠이 깨는데 곧 손주의 힘차고 명랑한 소리가 집안을 울린다. 할머니와 손주는 몇 년 만에 재회한 것처럼 야단법석이다. 매일 아침 벌어지는 희한한 풍경이다. 손주의 저 지칠 줄 모르는 명랑함은 어디서 나오는지 나는 신기하고 의아해하며 자리에서 무거운 몸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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