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늦은 추석 귀성

샌. 2021. 10. 2. 12:27

추석이 지나고 열흘 뒤에야 고향에 찾아가게 되었다. 가족과 친척이 함께 모여 추석을 쇠는 것도 의미 있겠지만, 시대가 변하고 있으니 꼭 추석날이 아니라 각자 편리한 날짜에 방문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올해 나 같은 경우는 조상님 뵙기에 면목이 없기는 하다.

 

명절이 즐거운 것은 어릴 때 얘기다. 어른이 되어 이런저런 사정이 중첩되면 눈치 볼 일도 많아지고 체면치레도 해야 하고 여간 복잡하지 않다. 그중에서도 고향에 계신 노모 걱정이 제일 크다. 이래저래 고향 내려가는 마음이 무겁다.

 

내려가는 길에 먼저 용소막성당에 들렀다. 성당 주변 느티나무는 여전히 늠름하고 아름다웠다. 경황없이 나오다 보니 카메라를 챙기지 못해 휴대폰으로 찍었다.

 

 

용소막성당에서 10여 분만 더 내려가면 배론성지다. 고향 가는 길에 있으니 예전부터 자주 찾았던 곳인데, 근래는 거의 10년 만인 것 같다.

 

최양업 신부 기념 성당

 

단양팔경휴게소에 있는 이 조형물을 보면 나도 색연필을 한 세트 사서 고운 그림을 그려보고 싶어진다.

 

 

저녁을 먹고 아내와 마을 앞길 산책을 나섰다. 

 

 

걷다가 부주의로 휴대폰을 시멘트 바닥에 떨어뜨려 액정이 깨졌다. 다행히 휴대폰은 고장 없이 작동되었다. 처음에는 화가 났으나 돌이켜 생각하니 잠깐 걷는 길인데도 휴대폰을 들고 나온 게 잘못이었다. 너무 휴대폰에 의존하는 않았는지 반성했다. 요사이는 하루에도 수없이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열어본다. 이 요물을 멀리 할 필요가 있음을 알지만 그럴 전기가 없었는데 차라리 잘 되었다. 깨진 액정은 수리하는 대신 새 결심을 보증하는 징표로 그대로 두려고 한다.

 

1. 문자, 카톡은 하루에 한 번만 확인하기(그래도 충분하다).

1. 밴드, 카페, 카스 소식은 닷새에 한 번 정도 열어보기.

1. 휴대폰으로 뉴스 검색하기 않기.

1. 휴대폰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두고 가능한 멀리 하기.

 

 

어머니는 여전하시다. 오로지 걱정은 너무 일을 하시는 점이다. 잠시도 가만있지 않으신다. 말려도 소용없고 점점 더 강경해지신다.
"그런 소리 말고 내 하고 싶은 대로 가만 내버려 둬라."

 

나는 어머니 손을 바로 보지 못한다. 손가락은 뒤틀려져 있고, 손톱은 빠지고 나고를 반복한다. 평생을 살아온 노동의 습관이라 하기에도 지나치다. 최근에 '일 치매'라는 용어를 들었다. 노인이 죽자살자 일에 집착하는 것이 온전한 사리 판단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자식으로서 너무 마음이 아프다.

 

노랗게 익어가는 마을 들판은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이달 말이면 들깨를 수확하러 내려와야 한다.

 

 

밤나무 밑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어머니를 모시고 예천에 있는 외할머니 성묘도 다녀왔다. 외할머니는 화장을 해서 선산 주위에 산골을 했다. 오간 길은 어머니가 열여섯에 가마 타고 시집 온 길이었다. 시집간 딸을 보러 절뚝거리며 느릎재를 넘은 외할머니 이야기도 들었다. 

 

 

인생살이가 참으로 허전하다. 살아생전의 분투노력은 다 어디로 가는 것인가. 죽으면 그저 무(無)로 돌아갈 뿐이 아닌가. 열심히 살 필요도, 너무 조심스레 살 필요도 없을 일이다.

 

돌아오는 길은 불뚝불뚝 치솟는 울화로 차의 액셀을 심하게 밟았다. 부모가 안 계시면 먼저 가신 부모를 그리워하고, 노부모가 계시면 또 그 일로 괴로움이 생긴다. 같은 피를 나눈 형제도 한 마음일 수는 없는 일이다. 어차피 인간은 편협하고 이기적인 존재에 불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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