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성지(31) - 배론

샌. 2021. 10. 3. 11:23

성지 46. 배론

 

제천시 봉양읍에 있는 배론 성지는 1800년대부터 박해를 피해 모인 천주교 신자들의 교우촌이다. 교우들은 화전을 일구고 옹기를 구워 생활하며 궁핍한 가운데서도 하느님을 섬기며 살았다. 이 마을 계곡이 배[舟] 밑창을 닮았다 하여 '배론[舟論]'이라고 부른다.

 

배론은 천주교 성지 중에서도 아름답고 잘 정돈된 성지다. 배론에는 황사영 백서 토굴, 성 요셉 신학당, 최양업 토마스 신부 묘가 있다. 배론 성지는 고향 가는 길에 있어 오래전부터 자주 찾았는데 근래는 뜸했다. 거의 10년 만에 찾아보는 것 같다.

 

입구에 들어서면 최양업 토마스 기념 성당이 보인다. 잔디 정원 앞에 '인생 미로'가 있다. 동심원 모양을 따라 중심을 향해 걸으며 지나온 삶을 정리해 보는 길이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 기념 성당
성당 앞에 있는 최양업 신부 상

 

'은총의 성모 마리아 기도 학교'는 새로 생긴 건물이다.

 

 

성당을 중심으로 묵주의 기도 길이 있다.

 

 

최양업 토마스 신부 조각공원에는 신부님의 일생이 조각으로 표현되어 있다.

 

 

'피정의 집'인데 코로나 때문인지 문 닫은지 오래된 것 같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황사영(黃嗣永, 1775~1801)은 이곳 배론의 토굴에 숨어 중국 북경교구장 구베아 주교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내용은 신유박해의 진행 과정, 순교자 열전,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한 방안 등이다.

 

황사영 백서는 중국으로 전달되기 전에 압수되었고, 황사영도 체포되어 1801년 11월 5일 대역부도의 죄로 서소문 밖에서 처형되었다. 

 

 

성 요셉 신학당이 초가 지붕의 작은 집으로 재현되어 있다. 성 요셉 신학당은 1855년에 프랑스 선교사 메스트로 신부가 세웠다. 라틴어과와 신학과가 있었는데 푸르티에와 프티니콜라 신부가 교육을 담당했다. 두 신부는 1866년에 이곳에서 체포되어 새남터에서 순교하였다.

 

성 요셉 신학당은 한국 교회 최초의 신학교임과 동시에 조선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이었다는 데에 의의가 있다.

 

 

산자락에 성직자 묘지가 있다.

 

 

인연이 있던 안승길 로베르토 신부님의 묘가 있어 깜짝 놀랐다. 밤골 생활을 할 때 문막성당에서 가끔 뵈었다. 뒤에 부론성당에 계실 때는 찾아가 보기도 했다. 굉장히 진보적 성향의 신부님이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다. 고백성사를 보지 않아 성체를 못 모신다고 했더니, "괜찮다" 하시며 조건 없이 참예토록 하셨다. 비문에는 '2013년 선종'이라고 적혀 있다.

 

 

최양업(崔良業, 1821~1861) 신부는 김대건 신부에 이어 우리나라 두 번째 사제다. 1836년 김대건 등과 함께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마카오로 유학을 가서 신학 교육을 받고, 1849년 상해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신부님은 귀국 후 11년 동안 산간 오지에 있는 교우들을 방문하며 목자의 삶을 살았다. 1861년에 경상도 전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던 중 과로로 문경에서 선종하였고, 당시 신학교가 있던 이곳에 묻혔다.

 

 

팸플릿에는 배론 성지가 '거룩하고 아름다운 하느님의 정원'이라고 적혀 있다. 과하지 않은 적절한 표현이다. 신자뿐만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번뇌를 가라앉히고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는 장소로 손색이 없다.

 

'사진속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백마산 왕복  (0) 2021.10.11
운동장의 밤  (0) 2021.10.08
늦은 추석 귀성  (0) 2021.10.02
비 오는 날 부침개  (0) 2021.09.29
옛골에서 청계산 한 바퀴  (0) 2021.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