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비가 내린 뒤라 산길은 폭신하다. 10월은 산길 걷기 좋은 때다. 살갗을 스치는 서늘한 바람의 감촉이 새롭다. 땀이 나도 금방 마르니 훨씬 덜 지친다. 또한 성가신 날벌레가 사라져서 좋다. 익어가는 숲의 향기도 달다. 흠흠, 연신 코를 벌름거리며 걷는다.
곤지암으로 가는 이웃 차에 편승해 경안교 들머리에서 내려 산에 오른다. 전망 좋은 활공장이 곧 나타난다. 경기광주역 주변으로 새로운 주거지가 만들어지고 있다. 산 아래 공터에는 종합경기장이 세워진다.
백마산에 오르는 중간 지점에 있는 쉼터다. 정자가 새로 만들어졌다. 여름에는 이곳까지 오는 데도 헐떡였지만 오늘은 쉬지도 않고 가뿐하게 왔다. 가을이라는 계절 때문이다.
가을 산길에서 흔히 보는 누리장나무 열매다.
백마산은 능선을 따라 걷는 길이 길면서 순하다.
휴일이지만 백마산에서 사람 만나기가 귀하다. 평일이라면 나 혼자 전세 내서 걷는 기분이다. 유명한 산에는 사람들이 몰리지만, 집 가까이 있는 이런 산의 가치는 제대로 알아보지 못한다. 정상의 쉼터에도 앉아주는 사람이 없다.
백마산은 위로 올라갈수록 소나무가 자주 보인다. 정상부에 있는 이 소나무가 그중 수형이 낫다. 아쉽게도 생육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하다.
이번에는 온 길을 되돌아서 걸어 내려간다. 이렇게 왕복하는 것은 처음이다. 비가 내릴 듯 검은 구름이 하늘을 덮는다. 오전에는 해가 났는데 그래서 우산을 준비하지 못했다. 자꾸 걸음이 빨라진다.
재잘대는 아이들의 청량한 목소리에 귀를 모은다. 곧 앞서거니 뒤서거니 올라오는 아이들을 만난다. 초등학교 4, 5학년 쯤으로 보이는 남녀 어린이 한 무리다. 다른 누구보다 반갑다. 산에서 저희들끼리 놀러오는 아이들 보기가 어려운 세상이다. 한 아이가 명랑하게 묻는다.
"할아버지, 정상 찍으셨어요?"
"그래, 이렇게 찍고 왔지."
나는 스틱을 들어 땅에 찍으며 대답한다. 아이들이 꺄르르, 웃는다. 저 파릇파릇한 생명의 기운을 경배하고 싶다.
마름산을 지나서는 쌍령동 동성아파트 쪽으로 방향을 튼다. 길 끝에 '무명 도공(陶工)의 비'가 있다.
집으로 가자면 길을 건너서 버스를 타야 한다. 이 도로는 서울과 충주를 잇는 경충국도다.
두 주만에 산행을 해서인지 허벅지가 뻐근하다. 최근에 우울한 날이 이어졌는데 산길을 걸으며 먹구름이 많이 걷혔다. 산행을 마친 뒤의 이 적당한 노곤함에 기분이 좋다.
* 산행 시간: 4시간(11:30~15:30)
* 산행 거리: 10km
* 산행 경로: 경안교 - 마름산 - 백마산 - 마름산 - 쌍령동 동성아파트
'사진속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손주와 고구마 캐기 (0) | 2021.10.15 |
---|---|
영장산 북능선을 타다 (0) | 2021.10.13 |
운동장의 밤 (0) | 2021.10.08 |
성지(31) - 배론 (0) | 2021.10.03 |
늦은 추석 귀성 (0) | 2021.10.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