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394

스무 포기 김장한 날

전에는 고향에서 형제들이 모여 같이 김장을 했지만, 각자의 집에서 따로 하게 된 건 4년이 된다. 어머니 기력이 떨어지신 게 제일 큰 이유다. 함께 모이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번거롭고 신경 쓰이는 게 많다. 각자 제 집 입맛에 맞게 알아서 하니 간편해서 좋다. 세월이 흐르면 변하는 게 옳다. 이번에는 이웃이 농사 짓는 밭에서 배추 스무 포기를 구해 담구었다. 이전에 비해 양이 많아진 것은 처제네 몫도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조카가 수험생이라 김장으로나마 도와주려는 것 같다. 처제는 오후에 와서 잠깐 일손을 거들었다. 배추 스무 포기 김장 준비하는 데도 사흘이 걸렸다. 김장을 끝내고 나니 아내는 다운 직전이다. 시골 어머니는 80대의 나이에도 자식들 김장 준비를 홀로 다 하셨다. 심고 거두며 절인 배추가 ..

사진속일상 2019.11.07

괴산 가을 나들이

아내와 괴산에 가을 나들이를 다녀왔다. 산막이옛길을 걸으러 가는 길에 이왕이면 단풍 구경할 겸 주변 몇 군데를 돌아보았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연풍IC를 나와서 처음 들린 곳은 수옥폭포였다. 조선 숙종 시기에 연풍 현감으로 있던 조유수가 여기에 정자를 짓고 수옥정(漱玉亭)이라 이름한 데서 수옥폭포라 불렸다고 한다. '구슬을 씻듯' 영롱하게 떨어지는 폭포라는 뜻일까. 암반과 어우러진 폭포 주변의 경치가 뛰어났다. 폭포로 오가는 길의 단풍이 무척 아름다웠다. 다음에는 쌍계계곡으로 향했다. 계곡을 따라가는 드라이브 길이 깊은 강원도에 온 것 같이 깊었다. 계곡의 비경을 다 보지는 못하고 소금강휴게소까지만 다녀왔다. 휴게소에서 커피를 마시며 가을의 빛을 감상했다. 산막이옛길 걷는 것만 아니라면 더 깊숙이 들어가며 ..

사진속일상 2019.11.05

세렴폭포 가는 길

치악산 단풍을 보러 갔는데 때가 좀 늦었다. 단풍이 많이 졌고 남아 있는 것도 색깔이 바랬다. 대략 일주일 전 쯤이 절정기가 아니었나 싶다. 구룡사에서 세렴폭포까지 다녀왔다. 실버 코스라고 할 정도로 길이 평탄하고 쉽다. 불타는 듯 화려한 단풍은 없어도 가을산의 향취에 푹 빠졌다. 구룡사를 지나면 바로 나타나는 단풍의 명소. 한낮의 양광을 받아도 색이 살아나지 않는다. 세렴폭포로 올라가는 길. 드문드문 진홍빛 단풍이 보인다. 세렴폭포는 폭포라고 하기에는 초라하다. 지금 시기에 콸콸 쏟아져 내리는 폭포를 기대하는 건 무리일 것이다. 내려가는 길. 나무는 자신을 덜어내면서 찬 계절을 견딜 준비를 한다. 바람이 불면 우수수, 낙엽이 되어 떨어지는 나뭇잎의 수런거림으로 숲은 분주하다. 제 할 일을 마치고 난 자..

사진속일상 2019.10.28

주전골 단풍

올해 설악산 단풍 감상은 십이선녀탕으로 잡았다. 너무 느긋하게 집에서 출발해서 가는 도중에 점심까지 먹고 십이선녀탕 입구에 도착하니 12시 30분이었다. 아뿔싸, 12시까지만 입장이 된다며 들어가는 걸 막는다. 헛걸음이 되었다. 한두 시간만 단풍 구경을 하고 나오겠다고 해도 막무가내다. 긴 시간 등산하는 사람이야 조난 위험 때문에 늦은 시간 입장을 통제할 수 있다지만 잠깐의 단풍 구경도 막다니 이해하기 힘들다. 투덜대며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꿩 대신 닭이라고, 대신 한계령을 넘어 주전골로 향했다. 3년 전에 찾았던 곳이다. 만경대를 개방하면서 구경하러 갔는데 만경대 입구에 긴 줄이 서 있어 주전골만 보고 되돌아왔었다. 개방 첫해는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사람이 워낙 몰리니 지금은 만경대에 가기 위해서..

사진속일상 2019.10.22

성지(19) - 은이성지, 미리내성지

30. 은이성지 경기도 용인에 있는 은이(隱里) 성지는 김대건 신부가 사제가 되어 귀국해서 첫 사목지로 택한 곳이다. 김 신부는 여기에 공소를 설립하고 용인 일대에서 사목을 시작했는데, 이곳에서 조선 땅에서는 처음으로 신자들과 미사를 봉헌했다. 가까이에는 김 신부가 소년 시절을 보낸 골배마실이 있다. 은이성지에는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 서품을 받았던 상해의 김가항(金家巷) 성당이 새롭게 복원되어 있다. 김 신부는 김가항 성당에서 1845년 8월 17일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상해의 도시 개발로 성당이 철거되면서 주요 부재를 옮겨와 2015년에 원형 그대로 건립했다. 김가항 성당은 소박하면서 단아한 흰색 건물이다. 문이 잠겨 있어 안에는 들어가 보지 못하다. 뜰에는 두 줄기가 맞붙은 느티나무가 있다...

사진속일상 2019.10.16

박두진 문학길

안성에 간 길에 '박두진 문학길'을 걸어보다. 박두진 시인의 고향이 안성이고, 말년의 집필실이 이곳 금광호수변에 있었다. 문학관을 비롯해서 시인을 기념하는 공간이 호수 주변에 만들어졌다. 박두진 문학길도 그중 하나다. 시인이 4.19 혁명 직후 연세대에서 해직되었고, 박정희 정부 때는 한일 국교정상화 협상에 반대한 서명 문인 1호였다고 한다. 당대 현실 권력과 타협하지 않고 문단 정치와도 무관하게 자신만의 길을 오롯이 걸은 분이다. 혁명 뒤에 쓴 '우리들의 깃발을 내린 것이 아니다'라는 시를 보면 선생의 의기를 느낄 수 있다. 시의 한 구절은 이렇다. '우리들의 목표는 조국의 승리 우리들의 목표는 지상에서의 승리 우리들의 목표는 정의, 인도, 자유, 평등, 인간애의 승리인 인민들의 승리인 우리들의 혁명을..

사진속일상 2019.10.15

성지(18) - 되재성당

29. 되재성당 퀴즈를 하나 내 보자. 우리나라에서 첫 번째로 세워진 성당은 어디일까? 서울 중림동에 있는 약현성당이다. 그럼 두 번째로 세워진 성당은? 천주교 신자라도 정답을 맞추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답은 전북 완주에 있는 되재성당이다. 약현성당이 1892년, 되재성당은 1895년에 건축되었다. 명동성당은 1898년이다. 전북 완주군 화산면과 고산면 일대는 깊은 산골이다. 천주교 박해의 여파로 신자들이 숨어 살았던 곳이다. 병인박해 때는 이 지역에 56개의 교우촌이 있었다고 한다. 1886년 한불조약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은 후에 되재성당이 건립되고 신앙의 중심지가 되었다. 아쉽게도 되재성당은 한국전쟁 때 소실되어 사라졌고, 최근에 옛 모습대로 복원했다. 제일 눈길을 끄는 건 종탑이다. 나무로 ..

사진속일상 2019.10.01

성지(17) - 구산성지

28. 구산성지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성지다. 서울에서 가까워 많은 사람들이 방문한다. 우리도 성지 조성 초기에는 여기서 미사를 자주 드렸고 후원회원이기도 했다. 그 뒤로 오랜만에 다시 찾다. 구산성지는 기해박해 때 순교한 김성우 안토니오 성인의 고향이자 묘소가 있는 곳이다. 안토니오 성인 외 여덟 분의 순교자가 묻혀 있다. 마을 뒷산이 거북 모양이어서 구산(龜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왕관을 쓰고 오른손에 왕흘을 들고 계시는 구산성지 성모상. 김세중 화백의 작품이다. 김성우 안토니오(1795~1841) 성인은 옛 경기도 광주 구산에서 부유한 가정의 장남으로 태어나고 자랐다. 천주교를 알게 되자 두 동생과 함께 입교하였고, 열렬한 신앙인이 되어 자신이 사는 마을을 교우촌으로 만들었다. 기해박해가 일어났을..

사진속일상 2019.09.26

신장생태공원을 걷다

태풍 타파가 지나간 뒤 하늘은 더없이 높고 푸르다. 공기도 극상으로 깨끗하다. 아무리 방콕파라 해도 그냥 집 안에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날이다. 가까운 하남의 신장생태공원으로 아내와 함께 나가다. 11년 만에 다시 찾아보는 곳이다. 신장생태공원은 한강으로 흘러드는 산곡천과 덕풍천 사이에 있다. 자연과 인공이 잘 조화를 이룬 공원이다. 서울의 한강변처럼 건물이나 위락 시설 없이 산책로만 있다. 산책로 밖으로는 자연 상태 그대로 유지된다. 전에 없던 메타세콰이어 길이 새로 생겼다. '위례 강변길'이라는 표찰이 달려 있다. 길이가 1.3km 가량 되는데 앞으로 10년만 더 자라면 명품길이 될 것 같다. 산곡천이 한강과 만나는 곳에 팔당대교가 있다. 건너편이 예봉산이다. 한강에는 자연스레 섬이 생기고 풀이 무성..

사진속일상 2019.09.23

맑고 푸른 날

웬일일까, 올해는 늦봄부터 초가을인 지금에 이르기까지 미세먼지 염려 없이 살고 있다. 연일 맑고 푸른 날이다. 시국은 어지러워도 자연은 더없이 청명하고 밝다. 이 좋은 날씨에 이끌려 아내와 밖에 나섰다. 반짝이는 가을 햇살이 좋아 일부러 선크림을 바르지 않고 반바지도 입었다. 피부도 얼마나 생생한 햇빛을 원하겠는가. 드러낼 수 있는 한 한껏 쬐어주고 싶었다. 그늘이 아니라 햇볕 따라 걸었다. 후줄근한 마음도 이 쨍한 햇볕에 말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뽀송뽀송해진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비 뒤여서인지 목현천 냇물이 더욱 깨끗하다. 송사리떼가 바쁘게 돌아다닌다. 목현천은 경안천과 합류하며 넓은 하천이 된다. 더 내려가면 경안천은 한강과 합쳐진다. 세상 살면서 근심 걱정 없길 어찌 바랄 수 있겠는가. ..

사진속일상 2019.09.17

파티마의 은총

포르투갈에 있는 파티마는 프랑스의 루르드, 멕시코의 과달루페와 함께 가톨릭의 3대 성지로 꼽힌다. 세 군데 모두 성모 발현지다. 1917년 5월 13일, 작은 마을 파티마에 살던 세 아이에게 성모님이 나타나셨다. 그 뒤로 10월까지 매월 13일에 여섯 차례나 발현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지금은 파티마 대성당을 비롯해 많은 기념 건물이 들어서 있는 천주교의 대표 성지다. 지난 6월에 스페인과 포르투갈 여행을 하면서 아내가 제일 가보고 싶어 한 곳이 파티마였다. 가톨릭 신자로서는 당연한 바람일 것이다. 다행히 우리는 성지 인근에 있는 숙소에서 묵었고, 파티마에 머문 시간도 다른 팀에 비해 길었다. 그래서 아내는 세 번이나 성지를 찾을 수 있었다. 가던 날 오후에는 가이드의 안내로 성지 전반에 대한 설..

길위의단상 2019.09.16

2019 추석

추석에 고향 내려가는 길이 굉장히 막혔다. 평소 두 시간이면 넉넉하던 길이 여섯 시간이나 걸렸다. 이번 추석에는 첫째가 동행했다. 며칠 전에 운을 떼었더니 기꺼이 내려가겠다고 했다. 내심 고마웠다. 조카 식구가 캐나다로 이민을 가는 바람에 모이는 숫자가 단촐해졌다. 동생과 차례를 지내고 조상 산소를 찾아뵈었다. 엎드려 절 할 때에 조상님께 면구스럽기만 했다. 하늘에서 내려보신다면 형제, 친척간의 우애를 제일 바라실 게 아닌가. 이런 말이 있다. "효도하고 우애하지 않는 자는 있어도, 우애하는 자로서 효도하지 않는 자는 없다." 9월 13일이 추석이니 올 한가위는 무척 빠른 편이다. 들의 벼는 이제 익기 시작한다. 어머니가 계시니 명절에 고향을 찾는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교통 정체에 시달리며 찾아갈 이유..

사진속일상 2019.09.14

성지(16) - 풍수원성당

27. 풍수원성당 1801년 신유박해 이후 피난처를 찾아 헤매던 신자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신앙촌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화전을 일구거나 토기를 구우며 지내다가 1888년에 뮈텔 주교가 본당을 설립하고 초대 주임으로 르메르 신부가 부임하여 춘천, 화천, 양구, 홍천, 원주, 양평 등 12개 군을 관할하였으며 당시 신자수는 약 2천 명이었다. 강원도 지역의 천주교 신앙 중심지가 풍수원성당이었다. 르메르 신부에 이어 1896년에 정규하 신부가 부임하여 1943년까지 사목하였고, 정 신부는 1907년에 지금의 성당 건물을 준공 봉헌하였다. 풍수원성당은 한국인 신부가 지은 최초의 성당으로, 강원도 최초의 성당이며 한국에서 네 번째로 지어진 성당이다. 성당 정면 성당 측면 성당 후면 성체조배실과 성모상 풍수원성당 ..

사진속일상 2019.09.04

횡성호수길(5구간) 걷다

횡성호수길은 강원도 횡성 갑천면에 있는 횡성호 둘레를 따라 조성한 길이다. 6개 구간이 있으며 전체 길이는 32km다. 이중에서 인기 있는 구간은 망향의 동산에서 출발해 다시 회귀하는 5구간이다. 풍광이 제일 좋고 길이도 4.5km로 걷기에 적당하다.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호수를 옆에 끼고 걷는다. 흙길이고 오르내림이 거의 없어 누구나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 호수 건너편의 전원주택 단지가 무척 마음에 든다. 횡성군 갑천면 화전리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문득 떠오른 건 왜일까. 길에는 아기자기한 소품이 있어 눈요기도 쏠쏠하다. 횡성호수길은 정성을 들여 만들었다는 인상을 받는다. 관리도 깔끔하게 잘 하는 것 같다. 2000년에 만들어진 횡성댐은 원주, 횡성..

사진속일상 2019.09.03

손주 따라 광릉수목원에

손주들 여름휴가 끝에 합류해서, 집으로 돌아오며 광릉수목원에 들렀다. 태풍이 지나간 뒤 습도 높은 후덥지근한 날씨였다. 아이들은 시원한 산림박물관에 들어가서 나올 줄을 모른다. 이 더위에도 제일 싱싱하고 화려한 꽃이 무궁화다. 시련이 닥칠 때 더 강해지는 우리 민족의 저력을 보는 것 같다. 무궁화 정원에서는 다양한 품종을 볼 수 있다. 아이들 크는 건 말하는 데서 느낄 수 있다. 어른 투의 표현에 깜짝 놀란다. 우리 어릴 때는 아이들과 주로 어울려 지냈으니 대개 아이들 말투였다. 지금 아이들은 어른과 보내는 시간이 많다. 어휘도 어른이 쓰는 걸 흉내 낸다. 그래서 더 성숙해져 보이는가 보다. "외할아버지, 행복하게 사세요." 첫째 손주가 헤어지며 진지하게 말한다. 여덟 살짜리가 '행복'이 무엇인지 알까?..

사진속일상 2019.08.09

팔랑귀와 불신지옥

아내는 남의 말을 쉽게 믿는다. 방송에 나오는 내용도 거의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TV는 온갖 건강과 의학 정보를 전한다. 몸에 좋은 약이나 음식이 있다고 하면 금방 솔깃해지는 모양이다. 아무 관심 없는 나까지 끌어들일 때가 많다. 내가 브레이크를 걸지 않으면 우리 집은 건강식품점을 차려도 될 것이다. 아내는 보이스 피싱에 걸려들기 쉬운 타입이다. 실제로 돈을 뺏기기 일보 직전까지 간 적이 있었다. 2천만 원을 갖다 바치지 않은 것은 순전히 휴대폰 배터리 덕분이었다. 결정적인 순간에 배터리가 방전되어 사기범과 휴대폰 연결이 끊어졌다. 안절부절못하다가 아내는 제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한다. 나는 아내가 홈쇼핑 방송을 보는 게 제일 무섭다. 나도 유혹을 받을 때가 있는데 아내는 오죽하겠는가. 까짓..

길위의단상 2019.08.05

막걸리 한 병에 취하다

막바지 장마다. 비 내리는 날에는 뭐니뭐니 해도 김치부침개에 막걸리가 최고다. 아내는 부침개를 만들고, 나는 동네 슈퍼에 나가 막걸리를 사 온다. 둘은 입맛이 달라서 아내는 지평 막걸리고 나는 장수 막걸리다. 늘 그러하니 이젠 슈퍼 주인도 알아챌 수 있을 게다. 바깥나들이가 뜸하다 보니 술 할 기회가 줄어들고 막걸리 한 병에도 뿅~ 가 버린다. 750mL 한 병이면 두 잔 반 정도 나오는데 그걸로 혼수상태가 되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다. 아내도 마찬가지지만 원래 주량 차이가 났는데, 이제는 술도 평준화가 되었다. 지난번에는 막걸리 한 병에 취해서 둘이서 말다툼으로 이어졌다. 술만 들어가면 큰소리치는 내 버릇이 재발한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로 트집을 잡고 시비를 건다. 아주 나쁜 술버릇이다. 아내..

사진속일상 2019.07.28

비에 젖는 세미원 연꽃

장마 속 비가 오락가락하는 가운데 세미원에 가다. 아침밥을 먹고 나서 바로 출발했더니 사람이 적어 좋다. 연꽃은 한창 때를 지난 것 같다. 피어 있는 꽃보다는 이미 져 버린 게 많다. 그래도 꽃봉오리가 계속 올라오니 8월까지는 아쉽지 않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연꽃은 굵은 눈물방울을 머금고 있다. 꽃이라고 서러움이 없겠는가. 오히려 꽃이기에 남에게 보여주지 못하는 외로움과 슬픔이 있으리라. 연잎이 넓은 이유는 떨어지는 꽃잎을 고이 받아주기 위해서인가 보다. 한 생을 마친 꽃잎이 연잎 품에서 안식을 취한다. 연꽃 구경을 하고 있는데 한 무리의 단체 관광객이 다가온다. 약 40명 정도는 되어 보인다. 피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가까이 있어도 너무 조용하다. 조곤조곤 말하는 일본어가 들린다. 역시 일본 ..

꽃들의향기 2019.07.26

추억의 선유도

선유도 해수욕장이 개장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은 썰렁하다. 더구나 장마철이니 해수욕장에는 사람 하나 찾기 힘들다. 할 일 없는 구조요원들만 한데 모여 스마트폰을 보며 쉬고 있다. 장모님 모시고 선유도에 다녀오다. 새만금방조제와 선유교가 놓이면서 선유도가 성큼 가까워졌다. 배 탈 필요 없이 군산이나 부안에서 30분이면 닿는다. 친구와 처음 선유도에 놀러온 때가 46년 전이었다. 기차를 타고 장항까지, 배를 타고 군산으로, 군산항에서 다시 배를 타고 선유도에 왔으니 온종일이 걸렸다. 그 넓은 바다를 가로지르며 방조제가 놓이리라고 상상이나 했겠는가. 앞으로 이 지역이 또 어떻게 변모할지 예견하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해수욕장 오른편의 저 바위산, 망주봉(望主峰)을 보니 그때가 어슴프레 떠오른다. ..

사진속일상 2019.07.20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5) - 바르셀로나

여행 여덟째 날, 발렌시아에서 바르셀로나로 이동하다. 9시에 출발하니 아침 시간에 여유가 있다. 이번 여행은 바삐 시간에 쫓기지 않아 좋다. 숙소에서 본 발렌시아의 아침 주택가 풍경. 숙소는 대체로 이런 수준이다. 값싼 패키지니 숙소나 음식은 마음에 안 들어도 감수할 수밖에 없다. 바르셀로나로 향하는 고속도로와 휴게소. 바르셀로나에 도착하니 건물 벽에 걸린 노란 리본이 자주 눈에 띈다. 카탈루냐 지역은 스페인과 문화나 언어가 다르다. 500년 전에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자 통합을 했지만 아직 융합을 하지 못하고 있다. 작년에는 독립을 위한 주민 투표를 실시하려고 했으나 중앙 정부의 강제 진압으로 실패했다. 독립 운동으로 수감된 사람의 석방을 기원하는 마음을 노란 리본으로 표현하고 있다 한다. 바르셀로나는..

사진속일상 2019.07.07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4) - 론다, 미하스, 그라나다

여행 여섯째 날, 7시에 아침 식사를 하고 8시에 론다로 출발하다. 아침 식사 전 숙소 주변을 산책하다. 이른 시간이어선지 세비야 교외 주택가는 지나다니는 사람이 보이지 않고 조용하다. 집들은 거의 비슷한 모양이다. 숙소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일행. 론다로 가는 길에는 해바라기 밭이 많이 보인다. 꽃이 지고 있어 볼 품이 없어 차를 세우지는 않다. 스페인은 5월에 와야 많은 꽃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론다(Ronda)는 절벽 위에 세워진 도시로 집은 하나 같이 하얗다. 파란 하늘과 어울려 이국적인 느낌이 확 풍긴다. 론다에는 데레사 수녀(1515~1582)가 설립한 맨발의 가르멜 수도원이 있다. 한 번 들어가면 죽을 때까지 나올 수 없는 봉쇄 수도원이다. 시원한 초록의 가로수 길을 걸어간다. 론다는 투..

사진속일상 2019.07.06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3) - 세비야

여행 다섯째 날, 세비야로 가다. 리스본에서 세비야까지 400km, 고속도로를 달려 4시간 30분이 걸리다. 세비야(Sevilla)는 여행 오기 전 스페인 역사를 읽으면서 책에 제일 자주 등장하는 도시였다. 신화적 요소가 있지만 헤라클레스가 세운 도시가 세비야이고, 여기서 스페인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 뒤로도 세비야는 스페인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이슬람 지배 시대는 물론이고 대항해 시대에는 신대륙과의 무역항으로 영화를 누렸다. 세비야 가로를 따라 대성당으로 가다. 세비야 대성당은 이슬람인이 자신들의 사원으로 처음 세웠고, 이슬람을 몰아낸 가톨릭 세력이 100여 년의 대공사 끝에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했다. 폭이 넓은 모양은 원래 이슬람 사원이었기 때문이다. 세비야 대성당은 바티칸 성당, 런..

사진속일상 2019.07.05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2) - 포르투, 파티마, 리스본

여행 셋째 날, 포르투갈 포르투로 이동하다. 포르투(Portu)는 포르투갈 제2의 도시로 오래전부터 항구도시로 번성한 지역이다. 대항해시대에는 해상 무역의 거점 도시였으며, 포트와인의 산지로도 유명하다. 포르투갈이라는 나라 이름도 '포르투'에서 나왔다. 수백 년 전 건축물이 남아 있는 히베리아 구역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포르투 역사 지구의 중심에 있는 리베르다드 광장이다. 보이는 사람 대부분이 관광객이다. 중앙에 동 페드로 1세의 기마상이 있다. 여기서 산티아고 길을 걷는 한국인 60대 부부를 만나다. 그 열정이 대단하다. 새까맣게 탄 얼굴로 환하게 웃는다. 타일 벽화로 유명한 포르투 기차역. 기차역 주변 풍경이 아름답다. 포르투은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탑 3에 들어간다고 한다. 가이..

사진속일상 2019.07.04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1) - 마드리드, 톨레도, 살라망카

스페인으로 가는 길은 멀다. 인천공항에서 카타르 도하까지 10시간, 도하에서 스페인 마드리드까지 8시간이 걸렸으니 비행 시간만 18시간이었다. 경유하면서 대기한 시간까지 합하면 가는 데만 꼬박 22시간이 걸린 긴 여정이었다. 미국과 이란의 분쟁 지역인 호르무즈 해협을 새벽에 건넜다. 며칠 전에는 미군 드론이 격추되어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가기도 했다. 트럼프가 공격 명령을 내렸다가 취소했다는 보도가 출발 직전에 있었다. 이번에 카타르 항공을 이용했는데 국가에서 지원을 많이 해 주는 것 같다. 도하는 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하는 환승 공항으로 많이 활용된다. 고객은 항공료가 싼 카타르 항공을 선호한다. 카타르는 워낙 석유 부국이라 다른 민간 항공사가 경쟁할 수 없다. 도하에서 여행 팀원끼리 인사하다. 전체 23..

사진속일상 2019.07.03

성공회강화성당과 보문사

천주교 성지순례 겸 바람을 쐬기 위해 아내와 강화도에 간 길에 성공회 강화성당과 석모도에 있는 보문사에 들렀다. 1900년에 건립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성공회 성당이다. '천주성전(天主聖殿)'이라는 현판이 달린 2층의 팔작지붕 구조의 한옥 형식의 건물이다. 주련이 있는 것도 우리 전통을 그대로 살렸다. 無始無終先作形聲眞主宰 宣仁宣義聿照拯濟大權衡 三位一體天主萬有之眞原 神化周流有庶物同胞之樂 福音宣播啓衆民永生之方 처음도 끝도 없고 형태와 소리를 먼지 지으신 분이 진실한 주재자시다 인을 선포하고 의를 선포하여 드디어 구원을 밝히시니 큰 저울이시다 삼위일체 하느님은 만물의 참된 근본이시다 하느님의 가르침 아래 만물이 성장하니 동포의 즐거움이로다 복음이 전파되어 세상 사람들이 깨달으니 영생의 길이로다 목조로 ..

사진속일상 2019.05.15

성지(15) - 강화도

강화도에는 천주교 성지가 세 곳 있다. 갑곶순교성지, 진무영성지, 일만 위 순교자 현양동산을 차례대로 찾다. 잔뜩 흐리고 가는 비가 간간이 뿌리다. 24. 갑곶순교성지 강화도는 한양 방어의 요충지로 고려 시대부터 외세와 충돌해 온 역사의 현장이다. 이곳이 카톨릭과 관계를 갖기 시작한 것은 1866년 병인양요에 이은 병인박해 때다. 조선이 프랑스인 성직자 9명을 처형한 책임을 물어 프랑스 함대가 이곳 갑곶 돈대로 상류하여 강화성과 문수산성을 점령했다. 프랑스군이 물러간 뒤에 전쟁의 책임을 물어 많은 천주교인이 이곳에서 순교했다. 갑곶순교성지는 그분들의 넋을 기리는 장소다. 아내는 11시 미사를 봉헌하고,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 특이하게 인도인 단체여행객이 보인다. 기도하는 사람은 없고 기념사진만 찍고 가는..

사진속일상 2019.05.14

밤골과의 인연

나에게는 세 가지 마음의 짐이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밤골이다. 끝맺음을 잘하고 나오지 못해서 밤골을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하다. 꿈에 밤골이 나타나면 대개가 악몽인데, 늘 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면서 비명을 지르게 된다. 그곳을 떠난 지 12년이 되었다. 만날 사람은 언젠가는 만나게 된다는 옛말이 있다. 그냥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있지만, 쉽사리 버리기 어려운 인연도 있다. '유연천리래상회(有緣千里來相會), 무연대면불상봉(無緣對面不相逢)' - 인연이 있으면 천 리를 떨어져도 서로 만나고, 인연이 없으면 얼굴을 맞대고 있어도 만나지 못한다. 오늘, 언젠가는 매듭을 풀어야 할 사람을 우연히 만났다. 아니, 우연이 아니라 필연인지 모른다. 우연이 무수히 겹쳐지면 필연이 된다. 그래서 언젠가는 만나야 할 사람이다...

사진속일상 2019.04.27

성지(14) - 감곡매괴성당

23. 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 충북 음성에 있는 감곡본당은 파리외방전교회 소속의 임가밀로 신부가 1896년에 설립했다. 주보는 '매괴(묵주 기도)의 성모'이다. 현 성당 건물은 1903년에 신축을 시작했는데, 성당 정면에 '1930'이라는 표석이 있는 걸로 봐서 그 해에 완성된 것 같다. 전에 왔을 때는 공사중인 곳이 많았는데 지금은 깔끔하게 정돈되었다. 청주교구는 2006년에 감곡성당을 '매괴 성모 순례지'로 공식 선포했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 때 성모를 통한 은총의 표징이 드러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성당 뒤 매산 정상에는 산상 십자가가 있다. 임가밀로 신부는 1914년에 한국 최초로 성체신심행사인 성체거동을 거행했다. 십자가 옆에는 성체거동을 기념하는 신부님 동상도 있다. 묵상하며 걷기에 좋은..

사진속일상 2019.04.23

탄천의 봄

치과 진료차 야탑에 나간 길에 탄천에 나가보았다. 분당을 관통하는 탄천은 자연을 즐기면서 운동과 휴식을 할 수 있는 도시 속 아름다운 공간이다. 벚나무가 많이 식재되어 있어 봄이면 꽃잔치가 벌어진다. 지금 벚꽃과 개나리를 비롯한 봄꽃이 한창이다. 야탑에서 천변을 따라 수내동 중앙공원까지 꽃 구경하며 천천히 걸었다. 두 시간 정도 걸렸다. 집에 와서는 유치원에서 돌아온 손주를 맞아 경안천습지생태공원으로 나갔다. 제 어미가 독감에 걸려 사흘째 우리 집에서 지내고 있다. 생태공원은 오래된 나무 데크 보수하느라 내부는 출입이 통제되고 둑길만 열려 있다. 아이는 외할머니 따라 쑥 캐는데 빠졌다. 식물과 동물에 대한 호기심이 남다르다.

사진속일상 2019.04.13

도립리 산수유

이천시 백사면 도립리에서는 봄에 산수유축제가 열린다. 올해 축제는 3월 30일과 31일이었다. 올해는 예년에 비해 일주일 정도 앞당겨졌다. 그런데도 만개 상태를 넘었다. 찾아간 날은 축제가 지난 평일이었지만 주차장은 차로 가득했다. 산수유는 마을 전체에 산재해 있지만 뒤편 산자락에 특히 많다. 눈요기를 잘 했지만 산수유의 화사한 노란색이 카메라에 제대로 담기지 않는다. 꽃의 절정기가 지나서 색깔이 많이 탁해진 것 같다. 이런 봄날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미세먼지 없이 쾌청한 날이었다. 몸이 성치 않아서 외출을 할까 말까 망설였는데 날씨 때문에 나오게 되었다. 곤지암에서 소머리국밥으로 속을 채우고 도립리를 찾았다. 도립리는 세 번째 방문하는 셈인데 산수유 필 때는 처음이었다. 컨디션만 좋았으면 영원사를 경유..

꽃들의향기 2019.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