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394

자두꽃

어릴 때 고향에서는 자두를 츄리라고 불렀다. 고향 집 뒤에 츄리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유난히 시어서 나는 우리집 츄리만 보면 고개를 저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도 자두를 보면 외면하는 일이 잦다. 과일나무 꽃은 별로 주목하지 않는데, 자두꽃이 이렇게 화사하고 예쁜 줄 올봄에 처음 알았다. '오얏나무 아래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속담에 나오는 오얏나무가 자두나무다. 한자명은 오얏 이(李)다. 자두는 중국이 원산인데 우리나라에는 유럽을 거쳐 개량된 자두가 1920년경에 들어왔다고 한다.

꽃들의향기 2019.03.30

바다부채길을 걷다

강릉에 다시 간 목적은 꽃 핀 율곡매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때를 못 맞췄다. 율곡매 매화는 이미 졌다. 강릉은 서울보다 위도가 높은 데도 꽃이 피는 시기는 빠르다. 목련은 지고, 벚꽃은 개화를 시작했다. 아쉬움을 접고 정동진으로 가서 아내와 바다부채길을 걸었다. 이 길의 공식 명칭은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이다. 정동진과 심곡항을 연결하는 탐방로인데, 그동안 해안 경비를 위해 출입이 통제되던 곳이다. 이곳 지형이 바다를 향해 부채를 펼쳐 놓은 모양을 하고 있어 '바다부채길'이라는 이름이 선정되었다. 바다부채길 길이는 2.9km다. 썬크루즈 리조트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남쪽 방향으로 걷기를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해안단구 지형을 볼 수 있다. 정동진 해안단구는 신생대 3기 말인 23..

사진속일상 2019.03.26

성지(13) - 관덕정, 김기량 순교현양비, 정난주 묘, 용수포구

3월 3일과 5일, 이틀에 걸쳐 제주도에 있는 성지 네 곳(관덕정, 김기량 순교현양비, 정난주 묘, 용수)을 찾았다. 19. 관덕정 1901년에 제주도에서 일어난 신축교안(辛丑敎案)으로 민란군에게 천주교인이 이곳에서 처형당했다. 1886년 한불조약으로 공식적인 천주교 박해가 끝났음에도 지방에서는 부패한 관리나 완고한 유생들과 천주교인들의 충돌이 일어났다. 신축교안도 그중 하나다. 가까이에 제주시 중앙 주교좌성당이 있다. 20. 김기량 순교현양비 김기량 베드로는 제주도 함덕 출신으로 소규모 무역상이었다. 중국 광동성 해역에서 표류하다가 영국 배에 구조되어 천주교를 접하게 되었다. 1857년에 제주도 출신으로는 최초로 세례를 받고 귀국했다. 제주도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전파하다가 체포되어 교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사진속일상 2019.03.10

어쩌다 제주도 2박3일

여행 계획을 짠 첫째에게 갑자기 일이 생겨 우리 부부만 제주도에 다녀오게 되었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어쩌다 가게 된 제주도다. 일정도 2박3일로 단축되었다. 아침 7시에 집에서 출발해서 계양역 공영주차장에 차를 파킹했다. 김포공항 주차장 요금이 대폭 인상되어 부담이 되기 때문이다. 약간의 불편을 감수한다면 5만 원 정도 절약할 수 있다. 제주도 하늘은 잔뜩 흐려 있다. 금방 비가 쏟아질 듯하다. 미세먼지 없는 공기가 제일 마음에 든다. 이번에는 무지개 렌트카를 이용했는데 무인 운영 시스템이 특이했다. 사무실에서 설명만 듣고 각자 지정된 차를 찾아가서 몰고 나가면 된다. 직원 인건비를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으나, 일자리가 줄어드는 게 문제인 것 같다. 제주도 렌트비는 사흘에 7만 원이니 너무 싸다. 이래..

사진속일상 2019.03.07

아내와 나

아내는 현미를 좋아하고 나는 백미를 좋아한다 아내는 성당 옆에 살기를 원하고 나는 산속 외딴집에 사는 걸 꿈꾼다 아내는 혈관 계통이 약하고 나는 소화 기능이 약하다 아내 뇌의 80%는 자식이 차지하고 내 뇌의 80%는 나 자신이 차지한다 아내는 식탁에서 몸무게를 걱정하고 나는 식탁에서 소화제를 걱정한다 아내는 눈이 건조해 눈물약을 항시 넣고 나는 눈물이 많아 휴지가 옆에 있어야 한다 아내는 손주에게 인기가 있지만 나는 마지못해 손주가 안긴다 아내는 몇 시간을 뒤척어야 잠이 들고 나는 눕자마자 코를 곤다 아내는 사나흘에 한 번 응아를 하지만 나는 하루에 서너 번 들락거린다 아내는 TV 연예 프로를 좋아하고 나는 스포츠 중계를 좋아한다 아내는 사람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고 나는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아내는 국..

길위의단상 2019.02.26

올해 첫 매화

천리포수목원에서 올해 첫 매화를 보았다. 굉장히 일찍 피는 품종인 것 같다. 가지가 꽈배기처럼 꼬불꼬불 비틀어진 모양이 특이하다. 꽃봉오리가 많은 걸 보니 이제 막 개화하기 시작한 듯하다. 실은 납매를 보러 천리포수목원에 찾아갔다. 4년 전 기억을 더듬어서다. 바람도 쐴 겸 아내도 동행했다. 납매는 매화 느낌이 나지 않지만 향기는 닮았다. 나무 가까이 서 있으면 매화 향기가 진동한다. 2월 하순에는 남쪽 지방으로 매화 여행을 떠나볼까 한다. 통도사 홍매, 화엄사 흑매, 산청 삼매 등 찾아볼 매화가 여럿 있다. 중요한 건 때를 맞추는 일인데 얼마나 개화 시기와 맞을 지는 모르겠다.

꽃들의향기 2019.01.29

남한산성 산책

안양에 사는 G한테서 전화가 왔다. 걱정 되어서 연락한다고 했다. 송년 모임에 나가지 않았더니 엉뚱한 소문이 돈 모양이다. 가족 건강 문제가 심각한 줄 안다. 두문불출한다는 말을 너무 쉽게 하면 안 되겠구나. 사람들은 제 식으로 상대방을 파악한다. 제 앎과 경험의 범위 안에서만 본다. 그게 사람과 사물을 이해하는 인간의 한계다. 그렇다고, 나는 이런 사람이고 이렇게 살아갑니다, 라고 변명하기도 뭣하다. G는 마음의 감옥에 갇혀 있지 말라고 충고한다. 허허, 하고 웃어넘겼다. 첫째가 와서 남한산성을 셋이서 산책하다. 함께 걸어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남한산성 주차비가 3천 원으로 올랐다. 그동안 천 원이어서 싸다 했더니 배포있게 세 배나 인상하며 현실화시켰다. 주차장에서 북문, 서문, 남문을 거쳐 내려왔다...

사진속일상 2018.12.22

성지(12) - 요당리성지

18. 요당리 성지 수원교구에 속한 요당리 성지는 장주기 요셉 성인의 탄생지이며 성장지다. 요당리는 신유박해를 기점으로 서울과 충청도 내포 등지의 신자들이 피난하면서 형성된 교우촌으로 추정한다. 장주기(張周其, 1803~1866) 성인은 요당리에서 태어나 1826년 경에 세례를 받았고, 박해를 피해 여기저기 옮겨 다니다가 1843년부터 제천 배론에 정착했다. 신학당을 위해 자기 집을 학교 건물로 내주었으며, 자신은 한문 교사와 공소 회장으로 활동했다. 1866년 병인박해 때 사형 선고를 받고 충청도 갈매못에서 64세의 나이로 참수 치명하였다. 이곳 요당리 성지에서 태어났거나 순교한 분들 가운데는 장주기 요셉 성인 외에 복자 장 토마스 등 여러 명이 있다. 또한 교회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전답이 민극가 스..

사진속일상 2018.11.15

동구릉의 늦가을

서울 동쪽 지역에서 오래 살았으므로 동구릉과 친근했다. 고등학생일 때 동구릉으로 소풍을 왔고, 훈장 노릇할 때도 학생들을 인솔해서 여기로 소풍을 자주 왔다. 집 아이들을 데리고 가끔 놀러오기도 했다. 오랜만에 들러도 동구릉은 정겹다. 동구릉(東九陵)에는 태조 이성계가 묻힌 건원릉을 비롯해 아홉 능이 있다. 정문을 들어서서 반시계방향으로 돈다면 수릉, 현릉, 목릉, 건원릉, 휘릉, 원릉, 경릉, 혜릉, 숭릉을 지나간다. 어제 비가 내리고 미세먼지 없는 맑은 하늘이 열렸다. 수릉(綏陵) - 추존 문조와 신정황후의 능. 문조(文祖, 1809~1830)는 23대 순조의 아들로 효명세자 시절 대리청정을 시작하여 인재를 널리 등용하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펴기 위해 노력했으나 22세에 요절하였다. 건원릉(健元陵) -..

사진속일상 2018.11.09

영국사 은행나무

용문사 은행나무와 더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은행나무다. 충북 영동 천태산 아래 영국사(寧國寺)에 있으며, 천연기념물 223호다. 천 년 나이에 걸맞게 거인의 풍채를 자랑한다. 키는 31m, 가슴 둘레는11m다. 오랫동안 소문만 들었던 이 나무를 마침 노란 단풍이 들었을 때 찾아 보았다. 가을이면 이 나무 아래서 매년 시제(詩祭)를 여는 게 특이하다. '천태산 은행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카페에서 주관한다. 또한 발표된 시를 중심으로 시집을 낸다. 올해 시집 제목은 다. 한 나무가 주는 감동이 이런 시 잔치로 연결된 것이리라. 모범적인 지역 문화 운동이 아닌가 싶다. 다른 나무들로도 확산되었으면 좋겠다. 세월에 장사 없어 온몸이 주글주글 곱던 이마도 주름 골이 깊어지다 골다공증으로 지팡이 여러 개 ..

천년의나무 2018.11.03

성지(11) - 진산성지

17. 진산성지 한국 천주교사에서 진산사건(珍山事件)은 유명하다. 1791년 당시 전라도 진산의 양반이던 윤지충 집안에서 전통적인 조상 제사를 거부하는 일이 발생했다. 천주교인이던 윤지충은 모친상을 당했을 때, 신주를 모시지 않고 제사도 지내지 않으면서 천주교 의식에 따라 모친상을 치렀다. 이런 행위는 패륜에 다름 아니었고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윤지충은 동조한 권상연과 함께 문초를 받았고, 사교를 신봉하고 사회 질서을 어지럽힌 죄로 전주 남문 밖에서 참수 당했다. 그들이 나고 자란 진산군도 연좌의 벌을 받아 현으로 강등 되었다. 진산사건은 신해박해의 도화선이 된 사건이다. 윤지충 바오로와 권상연 야고보는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다. 그분들의 태어나고 자란 마을에 진산성지가 있다. 지금의 행정구역으로..

사진속일상 2018.11.02

소금산의 가을

출렁다리로 뜨고 있는 소금산을 찾았다. 간현관광지에 주차를 하고 들어갔는데 깔끔하게 단장된 주변 시설이 인상적이었다. 평일 아침 10시경인데도 주차장은 거의 차들로 찼고, 구경 온 사람들 행렬은 연이었다. 출렁다리 하나로 면모가 일신되었다. 처제 부부가 동행했다. 우리는 등산을 겸했음으로 출렁다리 입구를 지나 삼산천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삼산다리를 지나면 가파른 절벽을 철계단을 타고 올라야 한다. 마지막 부분은 경사가 거의 90도에 가깝다. 내려갈 때는 아찔할 것 같다. 이래서 소금산은 시계 반대방향으로 도는 게 좋다. 소금산(小金山)은 해발 343m로 나즈막하다. 가파른 철계단만 견뎌내면 능선길은 부드럽고 쉽다. 정상에서 20분 정도 걸어내려가면 출렁다리를 만난다. 출렁다리에서 내려다 보이는 간현관..

사진속일상 2018.10.22

수렴동계곡 단풍

11월 15일 현재 내설악 단풍은 수렴동대피소와 영시암까지 내려왔다. 백담사 부근은 이번 주말이 되어야 만산홍엽이 될 것 같다. 단풍 구경하러 아내와 수렴동계곡에 다녀왔다.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는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주로 걸어 왕복했는데 지금은 시멘트로 포장한 길에다 버스마저 자주 다녀 걷기에는 불편하다. 수월하게 오가는 대신 아까운 계곡 하나를 잃은 느낌이다. 백담사 앞 계곡의 돌탑은 자연에 펼쳐진 만다라 그림 같다. 본격적인 산길 걷기다. 설악산 산길 중에서 이곳 수렴동계곡 길이 걷기에 제일 평탄하지 않나 싶다. 수렴동대피소까지 두 시간여 동안 거의 이런 길이 계속된다. 또한 북적대지 않아서 좋다. 수렴동계곡은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고 있다. 작년에 간 천불동계곡과 비교하면 빼어난..

사진속일상 2018.10.16

어느 휴일 하루

경안천을 산책하다가 하늘에 홀려서 석양을 기다리다. 한 시간 산책길이 세 시간으로 늘어났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 그림에 가슴이 뛴다. 그냥 흘낏 일별하며 지나치는 사람들이 야속하다. 이전, 평화로운 청석공원이다. 경안천을 가로지르는 돌다리가 새로 생겼다. 건너편으로 산책길을 만드는 공사가 한창이다. 새로 걸을 수 있는 길이 생겨 좋다. 가을이 되면 경안천은 억새와 갈대밭이 된다. 여기는 인간이 손 대지 않은 자연스러움이 아직은 남아 있다. 더 이전, 둘째가 찾아와서 한강변 '강마을 다람쥐'에 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사진속일상 2018.09.28

추석 노을

저녁 노을이 고와 동구 밖에 나가다. 저녁 하늘은 지상의 어둠을 더 돋보이게 한다. 사는 게 다 그래, 라는 말로는 위안이 될 수 없는..... 고향 마을은 점점 공동화되어 간다. 사람이 적어서만이 아니다. 남은 사람이나 찾는 사람이나 황폐한 사막들끼리 만난다. 기쁨도 비탄도 스쳐가는 바람일 뿐이다. 인간의 넋두리와는 상관없이 보름 하루 전 달이 먹구름과 서로 희롱을 하며 놀고 있다. 만 년 전, 억 년 전에도 그러했듯.

사진속일상 2018.09.26

양주 나들이

바깥바람을 쐬러 아내와 양주로 나들이 나갔다. 장욱진미술관에 들렀는데 마침 '장욱진과 백남준의 붓다'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장욱진(張旭鎭, 1917~1990) 화백은 이름만 알고 있을 뿐, 삶이나 예술 세계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전시장에서 그림과 생애를 보면서 화가의 예술혼을 가진 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장 화백은 생애의 대부분을 한적한 시골 화실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며 치열하게 창작활동에만 전념하신 분이다. 기본 사상에는 불교적 세계관이 깔려 있는 것 같다. 그런 점에서 백남준과 공통 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작품은 주로 소품이고 정겹다. 전시장도 단순하며 깔끔하다. 백남준의 그림인데 '가나다라 부처'라는 제목이 붙여져 있다. 손이 여러 개인 걸로 보아 천수관음불이 아닌가 싶다. 그림이 천진..

사진속일상 2018.09.20

제부도 제비꼬리길

'제부도'를 발음으로만 유추하면 '제비섬'과 닮았다. 그래선지 섬 북서쪽에 마련된 산책로 이름이 '제비꼬리길'이다. 제부도 전체를 제비 모양으로 본다면 제비 꼬리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길의 반은 해안을 따라 만들어진 데크길이고, 나머지 반은 탑제산 능선을 따라 걷는다. 탑제산은 해발 66m이니 산이라고 하기에는 면목이 없다. 제비꼬리길은 총 1.9km다. 아내와 바닷바람을 쐬러 나가서 제비꼬리길을 걸었다. 제부항에서 해안길을 따라 탑제산에 올랐다가 다시 되돌아 나왔으니 거의 두 바퀴를 돈 셈이다. 한 바퀴만으로는 걸음이 심심해서였다. 제부항에 있는 빨간 등대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찾는다. 던져주는 세우깡을 먹으러 갈매기들이 떼로 몰려드는 곳이다. 해안을 따라 데크길이 잘 만들어져 있다. 걷기가 아주 편하..

사진속일상 2018.09.07

성지(9) - 남양성모성지

15. 남양성모성지 화성에 있는 남양성모성지는 1980년대에 개발이 시작되었는데 초창기부터 우리와 인연이 깊다. 성모상 제막식에서부터 가장 자주 다닌 성지다. 가까이 서해가 있어 나들이 길에도 들리곤 했다. 3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성지도 많이 변했다. 지금은 성당 공사가 한창이다. 병인박해(1866) 때 남양 지역에서도 많은 신자들이 순교했다. 남양은 박해를 피해 많은 교인들이 숨어 살던 곳이다. 바로 이곳에서 붙잡힌 교인들이 배교를 거부하고 처형 당한 곳이다. 기록상으로는 김 필립보 부부 등 네 사람의 이름만 전하고 있다. 남양성모성지는 순교자를 기리고 현양하면서 성모님에 대한 신심과 기도를 배울 수 있는 성지로 거듭났다. 경내에는 여러 조각상과 함께 기도의 길이 잘 만들어져 있다. 경건하게 기도..

사진속일상 2018.09.06

전주천 산책

폭염 속에서 한줄기 소나기가 지나갔다. 이 정도로는 발갛게 달아오른 대지를 식히기에는 부족한 듯 후끈한 열기는 멈추지 않는다. 땅 밑에 용광로라도 들어있는 것 같다. 아내와 한 시간 정도 전주천을 산책했다. 올 여름 더위는 대단하다. 1994년의 기록을 모두 갈아치울 기세다. 그해에는 에어컨이 없어 매일 남한산성으로 피신을 갔었다. 그러나 지금은 방문을 꼭꼭 닫아걸고는 고작 한 달 전기료 걱정을 한다. 뜨거워지는 지구는 남의 나라 얘기일 뿐이다. 니콘 D750에 20mm를 물려 테스트 샷을 해 봤다. 초광각이지만 배경 흐림 효과도 만들 수 있다. 이제는 (풀프+단렌즈)로 변화를 주려고 한다. 출발은 기분 전환용에서 시작한다.

사진속일상 2018.07.30

손주 따라 사이판(2)

사이판 셋째 날, 하늘이 활짝 개였다. 오늘 밤 별을 볼 수도 있겠다는 기대에 젖는다. 개인적으로는 사이판의 별 사진을 찍어보는 게 제일 큰 바람이었다. 부피가 나가는 DSLR과 삼각대도 챙겼다. 구름 많은 날씨라는 예보를 들었지만 혹시나 해서 준비한 것이다. 아침 날씨가 지속되기를 빌었다. 오늘은 북쪽으로 올라가며 유명 관광지를 찾아보는 날이다. 혼자 아침 산책을 하는 길이 행복했다. 손주는 일어나나마자 할머니를 찾아왔다. 할머니는 모든 투정을 받아주고 시중을 들어준다. 아이는 엄마를 졸라 또 수영장에 들어갔다. 아침 시간이라 사람들은 없었다. 혼자서 물 미끄럼도 잘 탔다. 맨 처음 들린 곳은 사이판에서 제일 큰 마운트 카멜 성당이었다. 사이판은 스페인 통치를 받아서 가톨릭을 믿는 주민이 가장 많다. ..

사진속일상 2018.07.21

손주 따라 사이판(1)

손주 따라 3박4일로 사이판에 다녀왔다. 이번 여행은 아무 준비도 없이 따라나섰다. 둘째가 모든 계획을 짠 탓에 믿고 맡겼다. 해외여행 플랜에는 젊은이를 당할 수 없기에 간섭할 여지가 없었다. 여행의 중심은 당연히 손주였다. 따라서 오랜만에 바다에도 들어가고, 많이 웃었다. 아내는 질겁을 하지만 손주를 놀리는 재미는 모를 것이다. 사이판까지는 네 시간이 조금 넘게 걸린다. 떠나기 전까지도 사이판의 정확한 위치를 몰랐다. 아무 정보 없이 떠나자고 마음 먹었기 때문이다. 일본과는 관계 없는 미국령인 것도 가서야 알았다. 크기도 자그마하다. 고구마 같이 생겼는데 길이가 긴 남북으로 종단하는 데도 30분이면 넉넉하다. 첫 이틀간의 숙소는 코아나 리조트였다. 바다에 연하고 있어 방에서 바로 열대 바다가 내려다 보..

사진속일상 2018.07.20

광교저수지 한 바퀴

수원에 다녀오는 길에 광교저수지를 한 바퀴 돌았다. 광교산 기슭에 있는 광교저수지는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1943년에 건설되었다. 지금은 아래가 전부 주택가로 변했으니 아마 수원시의 상수원으로 사용되지 않나 싶다. 제방 아래는 광교공원이 잘 꾸며져 있다. 광교저수지를 한 바퀴 도는 산책로가 좋다. 제방에서 바라볼 때 오른쪽은 나무 데크로 된 길이다. 벚나무가 있어 한여름에도 그늘이 진다. 한 바퀴 도는 데 3.4km다. 개망초도 꽃밭이 된다. 금계국, 코스모스와 어우러진 모습이 자연스럽다. 저수지 왼편은 산길로 녹음 사이를 걷는다. 흙으로 되어 있고 적당한 오르내림이 있어 나무 데크 길과는 다른 맛이다. 가볍과 편안하게 산책할 수 있는 광교저수지 둘레길이다. 한 바퀴 도는 데 50분 정도 걸렸다.

사진속일상 2018.06.20

성지(8) - 배나드리, 여사울, 남방제, 공세리성당

11. 배나드리 예산군 삽교읍에 있는 마을 이름으로 '배를 타고 건너다녔다'는 뜻이다. 도리(島里)라고도 하는데 옛날에는 여기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마을은 야트막한 구릉 지대에 있는데 물이 차면 섬으로 될 수 있는 지형이다. 배나드리는 인언민 마르티노의 순교 사적지다. 인언민은 1737년 삽교에서 태어나 황사영 알렉시오에게서 천주교 신앙을 접하고, 주문모 야고보 신부로부터 세례를 받았다. 그는 신앙생활을 위해 집과 재산을 버리고 공주로 이주하였다가 1797년에 시작된 정사박해 때 체포되어 1800년에 순교했다. 1817년 병인박해 때도 이 마을 신자들은 많은 고난을 받았다. 성지는 마을 가운데 아담하게 자리잡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성지 순례자를 위한 주차장도 마련되어 있다. 12. 여사울..

사진속일상 2018.06.19

성지(7) - 홍주순교성지

10. 홍주순교성지 홍성 시내에 들어가 전화를 하고 찾아가니 홍주성지성당 관계자 분이 나와 친절하게 설명을 해 주신다. 홍주성지성당은 홍성군청 앞에 있는 건물 한 켠에 세 들어 있다. 새 성당을 건축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다. 홍주는 충청도 지방의 신앙 중심지였다. 한국에서 두 번째로 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지역이기도 하다. 홍주성 안으로 끌려온 천주교 신자들이 죽임을 당했고, 일부는 산 채로 구덩이에 묻히기도 했다. 1866년 병인박해 때는 80명의 명단이 전해지지만실제로 얼마나 많은 순교자들이 있었는지는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홍주순교성지는 홍주 동헌과 진영, 홍주 생매장터와 안장터, 홍주옥터, 홍주 조양문과 저잣거리, 홍주 형장터 등을 아우르는 넓은 지역이다. '홍주순교성지' 비는 참수터와 생매..

사진속일상 2018.06.18

뒷산을 돌다

화창한 일요일에 아내와 함께 뒷산을 걸었다. 대개 꼭대기까지 갔다가 같은 길로 내려오지만 오늘은 한 바퀴 도는 길을 택했다. 시간은 한 시간 정도 더 걸려서 네 시간 가까이 걸었다. 날씨 탓이 컸다. 그저께 남과 북의 판문점 선언이 있었는데 이틀 밤이 지나도 뉴스를 보면 여전히 가슴이 설렌다. 우리 민족의 앞길도 지금의 날씨만큼이나 밝게 열리기를 희망한다. 뒷산 등산로는 지금 공사중이다. 정자가 새로 세워지고 길은 다니기 좋게 정비되고 있다. 울퉁불퉁한 길이 반듯해지니 걷기에는 편해졌다. 앞으로는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것 같다. 평일에 올라가면 산에 있는 두세 시간 동안 한두 사람 만나는 게 고작이었다. 자연에 지나치게 손을 대는 것은 반대지만 어느 정도의 편의 시설은 필요할 것 같다. 작년에 불이 ..

사진속일상 2018.04.29

신북천 벚꽃길

울산에 친척 문상 다녀오는 길, 문경을 지날 때 신북천에 들렀다. 문경온천을 중심으로 신북천을 따라 약 4km 길이의 벚꽃 가로수길이 펼쳐진다. 안내문에 드라이브 코스라고 표시한 부분도 산책 데크가 잘 되어 있어 걸으면 좋다. 마침 벚꽃 절정기였는데 이 화려한 꽃길에서 우리 외에는 겨우 한두 사람 만날 수 있을 뿐이었다. 만약 수도권이었다면 인산인해를 이루었을 것이다. 참으로 호젓하게 벚꽃 구경을 한 날이었다.

꽃들의향기 2018.04.11

이탈리아(7) - 로마

"마침내 나는 이 세계의 수도에 도달했다." 1786년 로마에 도착한 괴테는 기행문 첫머리를 이렇게 썼다. 그리고 이날이 자신이 다시 태어난 날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감격스러웠던 것이다. 그리고 1년간 로마에 거주하며 보고, 배우고, 사람들과 교유를 했다. 수개월 동안 걷거나 마차를 타고 힘들게 로마에 도착한 괴테와 달리 나는 비행기를 타고 12시간 만에 로마에 내렸다. 그리고 일주일간 이탈리아 주요 지역을 분주히 돌아다녔다. 괴테가 봤다면 기가 찰 노릇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나 역시 들뜨지 않을 수 없다. 드디어 로마에 왔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로마 시내를 돌아다니는데 걸린 시간은 다섯 시간에 불과했다. 슬프다. 바티칸 한 곳도 다섯 시간으로는 부족할 텐데 콜로세움,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전차경기장, ..

사진속일상 2018.03.21

이탈리아(6) - 폼페이, 카프리

AD 79년 여름,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했다. 용암과 함께 분출한 엄청난 양의 화산재와 화산력이 폼페이를 덮쳤다. 폼페이 주민은 피할 겨를도 없이 20m가 넘는 두께의 화산재에 갇혔다. 도시 전체가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폼페이는 잊혀졌다. 그로부터 1,600년이 지나서 폼페이 유적이 발굴되기 시작했다. 발굴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2천 년 전 로마 시대의 도시가 온전한 모습으로 지상에 드러나고 있다. 비극적인 참사가 도시를 원형 그대로 보존시킨 것이다. 이탈리아 여행 일곱째 날, 새벽 6시에 로마를 출발해서 아침은 간편식으로 버스에서 먹는다. 로마에서 폼페이까지는 고속도로를 달려 세 시간 정도 걸린다. 폼페이에서 현지인 가이드가 한 명 더 합류한다. 오늘은 폼페이를 보고 카프리까지 갔다 와야 하므로 ..

사진속일상 2018.03.20

이탈리아(5) - 피렌체

패키지여행은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보는 장점이 있으나 겉핥기에 그치는 점이 아쉽다. 주마간산이라는 표현이 딱 맞다. 명소에 가면 간단한 설명과 함께 자유시간이 주어지는데 대개 기념사진 몇 장 찍으면 끝난다. 유럽에는 예쁜 성당이 많다. 제대로 보자면 안에도 들어가 봐야 하는데 시간상 어림도 없다. 그저 성당 껍데기만 구경할 뿐이다. 여러 군데를 다니자니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개인여행을 생각해 보지만 만만치 않다. 숙소를 정하는 것부터 모든 일정을 직접 짜야 한다. 제일 골칫거리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음식 하나 먹는데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젊을 때야 패기로 부딪쳐 본다지만 나이 들어서는 너무 큰 장벽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패키지를 선택한다. 아무 신경 쓰지 않고 따라만 가 주..

사진속일상 2018.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