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나는 이 세계의 수도에 도달했다." 1786년 로마에 도착한 괴테는 기행문 첫머리를 이렇게 썼다. 그리고 이날이 자신이 다시 태어난 날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감격스러웠던 것이다. 그리고 1년간 로마에 거주하며 보고, 배우고, 사람들과 교유를 했다.
수개월 동안 걷거나 마차를 타고 힘들게 로마에 도착한 괴테와 달리 나는 비행기를 타고 12시간 만에 로마에 내렸다. 그리고 일주일간 이탈리아 주요 지역을 분주히 돌아다녔다. 괴테가 봤다면 기가 찰 노릇인지 모른다. 그렇지만 나 역시 들뜨지 않을 수 없다. 드디어 로마에 왔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로마 시내를 돌아다니는데 걸린 시간은 다섯 시간에 불과했다. 슬프다. 바티칸 한 곳도 다섯 시간으로는 부족할 텐데 콜로세움,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전차경기장, 통일기념관, 판테온, 트레비 분수, 스페인 광장, 포로 로마나, 캄피돌리오 광장, 바티칸을 보는 데 다섯 시간이었다. 그러면서 중간에 한식으로 점심까지 먹었다. 내가 이탈리아를 말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콜로세움을 직접 두 눈으로 보기를 오래 기다렸다. 지금 바로 눈 앞에 있다. 실물로 봐도 대단하다. AD 72년에 건설을 시작해 80년에 티투스 황제가 완성했다. 둘레가 500m, 높이는 48m나 된다. 6만 명을 수용할 수 있다. 지금 봐도 당시의 건축술이 경이롭다. 예나 지금이나 안정된 통치를 위해서는 대중을 위한 빵과 서커스가 중요하다. 그러나 로마인의 여흥을 위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동물과 사람이 이 경기장에서 죽어갔다는 사실은 잊지 말아야겠다.
콜로세움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 너무 부럽다. 우리는 콜로세움을 한 바퀴 돌아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너무 허둥대느라 같이 다니던 아내를 놓치다.
그래도 기념사진 한 장은 남겨야겠다. 허물어진 부분은 계속 복원해 나가는 것 같다. 원래 부분과 색깔 차이가 완연히 드러난다.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다. 콜로세움 옆에 있다. 312년에 콘스탄티누스가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 나폴레옹은 이 개선문을 보고 샘이 났는지 더 크게 파리에도 짓도록 명령했다. 파리 개선문이 2배 정도 더 크다.
콘스탄티누스는 기독교를 공인한 황제다. 이때는 이미 로마가 쇠퇴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영화 '벤허'에 나오는 전차경주장 터다. 트랙의 윤곽만 남아 있다. 길이가 600m가 넘는 대형 경기장으로 20만 명이 들어올 수 있었다고 한다. 당시 로마 인구의 1/4이 여기에 모일 수 있었다.
이탈리아를 통일한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이다. 지은지 백 년밖에 안 되는 신식 건물이다. 웅장하긴 하지만 로마 시대 건축물에 비하면 촌스럽고 졸부 티가 난다.
판테온은 BC 27년에 아그리파가 모든 신들을 위해 지은 신전이다. 라파엘로는 이 건물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완벽하다고 평했고, 죽어서도 이곳에 묻혔다. 가운데 구멍이 뚫린 큰 돔이 특징이다.
전면에는 8개의 돌기둥이 있는데 가까이서 보면 굉장히 굵다. 어른 세 사람이 감싸야 한다. 거대한 돌덩이를 다듬고 운반하고 세우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 위에 다시 돔을 얹는다. 그러면서 전체가 조화를 이루며 아름답다.
판테온 앞에 있는 분수다.
안에서 바라본 판테온 전면부의 돌기둥이다.
판테온 신전은 지금은 성당으로 변해 있다.
판테온의 돔 천장이다. 가운데 구멍이 뚫려 있는데 아무리 비가 와도 바닥에는 닿지 않는다 한다.
허물어진 판테온 외벽이다. 작은 벽돌과 콘크리트을 이용해 벽을 쌓았다.
판테온 옆에 미네르바 성당이 있다. 현재 외벽은 수리중이다. 여기서 갈릴레이가 종교 재판을 받았다 한다. 아내는 촛불을 하나 올리다.
트레비 분수를 찾다. 역시 인산인해다. 앞자리는 차지하기가 힘들다. 뒤로 돌아서 동전을 던지며 사진 찍는 사람도 보인다.
스페인 대사관이 있어서 스페인 광장이라 이름 붙은 곳이다. 문인과 예술가들이 다녀간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영화 '로마의 휴일'로 더 유명해진 광장이다.
포로 로마노(Foro Romano)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곳에 서다. '포로'는 공공 광장이라는 의미로 정치, 종교, 상업 등에 필요한 기관이 모여 있던 지역이었다. 이곳은 BC 6세기에 최초로 세워진 포로로 로마의 중심지다.
시저가 암살 당한 원로원 건물도 보인다. 포로 로마노의 폐허 사이를 걸어보는 것은 기약 없는 뒷날의 일일 것이다.
언덕 위에 있는 캄파돌리오 광장과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기마상이다. 철인 황제를 여기서 만난다. 기마상은 2세기 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진품은 박물관에 있다고 한다. 이 광장은 미켈란젤로가 설계했다.
캄파돌리오 광장의 석조상 뒤에 한 남자가 스마트폰을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돌에 새겨진 'SPQR'이라는 글자는 로마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원로원과 시민 여러분'이라는 라틴어 약자라고 한다. 로마에서 연설을 할 때 서두에 쓰던 말이었다. 이 말에는 로마 공화정 시대의 평등 개념이 담겨 있다고 봐도 될까. 황제나 귀족이라도 시민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었다.
우리는 로마 시내를 관광하며 이 벤츠 택시를 타고 다녔다. 8인승인데 좁은 골목도 쉽게 다니고, 이 차량만 다닐 수 있는 길도 있다. 덕분에 기동성 있는 관광이 가능했다. 기사는 친절해서 문을 직접 열어주고 내릴 때는 손도 잡아준다.
로마 마지막 코스는 바티칸이다. 천주교 신자라면 일생에 꼭 한 번은 와 보고 싶은 곳이다. 우리는 미리 단체 예약이 되어 있어서 박물관으로 바로 입장하다. 일반인들은 대기하고 있는 줄이 길다.
큰 솔방울 조각 작품이 있는 피냐 정원에서 가이드로부터 대체적인 설명을 듣는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을 중심으로 그림의 숨은 사연과 일화를 재미나게 얘기해 준다. 그 유명한 그림을 직접 보게 되다니 가슴이 설렌다.
바티칸 박물관은 역대 교황이 모은 수집품 중심으로 되어 있다. 각 교황 방을 차례로 지나는데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화려하다. 내용을 알고 하나하나 보자면 하루 내내 있어도 모자랄 것 같다. 우리는 빠른 걸음으로 지나간다. 작품에 카메라를 들이대기도 민망하다.
드디어 시스티나 성당이다. 이곳은 교황이 직접 미사를 집전하는 예배당이자 교황 선출이 이루어지는 장소다. 시스티나 성당의 벽과 천정에 미켈란젤로는 창작력을 총동원하여 불후의 대작을 완성했다. 1508년에 시작하여 4년 뒤인 1512년에 끝났다. 그는 천정에 그림을 그리기 위해 무리한 자세를 취했기 때문에 관절염이 생기고, 허리도 굽었다. 석회 가루가 눈에 들어가 안질에도 시달렸다고 한다.
시스티나 성당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그리 넓지 않은 성당 안은 사람으로 빼곡하다. 숨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모두 고개를 들고 넋을 잃은 채 천정을 쳐다본다. 하느님이 아담과 손가락을 맞추는 '천지창조' 그림도 보인다. 제단 뒤에는 '최후의 심판'이 벽을 장식하고 있다. 그 외 천정과 벽에 수천 점이 그림이 빼곡하다. 감동이라는 말로는 부족하고, 그냥 압도당할 뿐이다.
시스티나 성당을 나오면 곧 바로 베드로 대성당으로 이어진다. 세계 최대의 성당답게 규모와 화려함이 어마어마하다. 길이가 211m, 천정 높이가 45m다. 성당 내부 홀에는 6만 명이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성당 안에는 스물두 개의 독립된 제단이 있고, 돔만 해도 열 개다. 벽과 기둥은 숫자를 헤아리기 어려운 조각상으로 장식되어 있다.
베드로의 무덤 위에 만든 베드로 성당은 4세기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명으로 처음 지어졌다. 현재의 모습은 17세기에 완성되었는데 브라만테,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등의 거장들이 참여했다. 종교적 신심을 더나 건물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이다.
정문을 들어가면 오른쪽에 미켈란젤로의 '피에타'가 방탄 유리 안에 있다. 예수의 시신을 안고 슬퍼하는 마리아를 조각한 작품이다. 근육이나 옷깃의 묘사가 섬세하다. 앳된 얼굴의 마리아는 어쩌면 무심해 보이는 표정이다. 비통의 극을 넘어섰기 때문일까, 아니면 하늘이 부여한 소명을 완수한 데 대한 안도감일까.
작은 제단 앞에서 잠시 기도를 드린다.
잠깐이라고 느꼈는데 시간이 훌쩍 지났다. 집합 시간 10분 전, 부리나케 베드로 광장으로 뛰어나가다.
겨우 베드로 광장을 밟아본 것으로 만족한다.
베드로 광장을 둘러싼 건물을 당겨서 찍어 보다. 미술에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면 바티칸만 둘러보는 데도 사나흘은 필요할 것 같다. 차라리 나처럼 문외한인 게 마음은 편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데, 모르면 신경 쓸 일도 없으니 말이다.
오후 3시에 모든 로마 관광을 마치고 공항으로 출발한다. 하필 마지막 날 로마 관광이 잡혀 있어 온전한 하루도 되지 못했다. 9일짜리 이탈리아 여행이라면 로마 일정을 이틀 정도 넣어주면 어떨까 싶다.
패키지여행의 성패는 날씨와 가이드에 많이 좌우된다. 이번 여행에서 날씨는 대체로 무난했다. 이틀 동안은 비를 맞았지만 그 또한 추억의 하나다. 그리고 9일 동안 우리를 안내한 하나투어 가이드 이성호 님에게 감사드린다. 성실하고 열정적인 분으로 내가 만난 가이드 중 최고였다. 가이드도 유럽 쪽 수준이 훨씬 높은 것 같다. 덕분에 알찬 여행이 되었다.
몇 번 투덜거리긴 했어도 이번 이탈리아 여행은 만족이다. 이탈리아라는 나라 자체가 실망시키지 않는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가만있어도 저절로 관광객이 찾아오는 나라다. 짧은 기간에 책에서만 보던 많은 유적과 풍경을 이만큼 접해볼 수 있었던 건 패키지여행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정말 구경 한번 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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