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79년 여름,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했다. 용암과 함께 분출한 엄청난 양의 화산재와 화산력이 폼페이를 덮쳤다. 폼페이 주민은 피할 겨를도 없이 20m가 넘는 두께의 화산재에 갇혔다. 도시 전체가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폼페이는 잊혀졌다.
그로부터 1,600년이 지나서 폼페이 유적이 발굴되기 시작했다. 발굴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2천 년 전 로마 시대의 도시가 온전한 모습으로 지상에 드러나고 있다. 비극적인 참사가 도시를 원형 그대로 보존시킨 것이다.
이탈리아 여행 일곱째 날, 새벽 6시에 로마를 출발해서 아침은 간편식으로 버스에서 먹는다. 로마에서 폼페이까지는 고속도로를 달려 세 시간 정도 걸린다. 폼페이에서 현지인 가이드가 한 명 더 합류한다.
오늘은 폼페이를 보고 카프리까지 갔다 와야 하므로 시간이 촉박하단다. 일행을 뒤쫓기 바쁘다. 유적을 자세히 살필 틈이 없다. 나는 사실 카프리에 안 가도 폼페이에 오래 머무는 것이 좋다. 카프리는 선택관광으로 되어 있지만 따르지 않을 수 없다.
패키지여행에서 선택관광은 유명무실하다. 제대로 되자면 선택관광 코스 둘을 준비하고 고객이 그중에서 하나를 고를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은 하나를 놓고는 하느냐 마느냐를 결정하란다. 관광 후 집합지가 다른 경우에는 개인행동을 하기가 난감하다.
카프리 선택관광과 함께 베수비오 화산 관광도 함께 있었으면 좋았겠다. 그렇다면 나는 베수비오 화산을 선택했을 것이다. 베수비오 화산은 정상 부근까지 버스로 올라가서 분화구를 둘러본다. 마침 가이드도 한 명 추가되었는데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여행사에서는 검토해 볼 일이다.
이곳은 폼페이의 광장이었던 듯하다.
슬픈 폼페이의 모습이다.
죽은 사람의 모습이 석고로 보존되어 있다. 편안하게 잠든 모습이지만 고통에 몸부림을 쳤을 것이다. 당시에 뜨거운 화산재에 덮인 시신은 녹아 없어지고 암석 사이에 사람 모양의 공동이 생겼다. 여기에 석고를 부어서 모양을 뜬 것이다.
잠깐 사진을 찍는 동안에 일행의 꽁무니는 보이지 않는다. 다른 유물은 관찰할 겨를이 없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다'는 속담이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우물터 주위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다.
가운데 돌길은 수레와 가축이 다니던 길이다. 수레바퀴 자국이 선명하다. 양쪽에 약간 높은 길이 사람의 보행로다.
폼페이에서는 남근상이 자주 발견된다. 남근숭배사상과 연관된 듯하다. 가이드가 설명하길, 이 남근상이 현재까지는 폼페이에서 나온 제일 큰 물건이라고 한다.
이런 남근상과 벽화 그림을 볼 때 폼페이를 매우 타락한 도시로 여기기도 한다. 유흥과 휴양도시였던 건 사실이지만, 소돔과 고모라로 비유하는 건 심하지 않나 싶다. 베수비오 화산 폭발을 신의 징벌로 해석하고픈 유혹 때문이 아닐까.
답사로의 끝에 온전하게 발굴된 귀족의 저택이 있다.
얼마나 화려한 저택이었을지 벽화나 타일 문양으로 능히 짐작할 수 있다. 현대의 고급주택 수준을 넘어선다. 그때의 돈 많은 사람들은 노예의 시중을 받으며 지금 사람보다 더 호사스럽게 살지 않았나 싶다.
폼페이 일부를 훑어보며 지나가는데 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보기는 봤는데 무언가 허전하다. 내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사랑하고, 싸우고, 떠들고, 웃고, 한숨지었을 옛사람들이 어른거린다. 우주의 시공간에서 한 점으로 살다가 사라졌다.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폼페이에서 기차로 소렌토까지 간 후, 배편으로 카프리 섬으로 들어간다.
나폴리 민요 '돌아오라 소렌토로'가 떠오르는 소렌토다. 해안가에 조성된 휴양지다. 여기서 카프리로 가는 쾌속선을 탄다.
카프리는 가고 싶다고 가는 곳이 아니다. 날씨가 도와줘야 한다. 어제는 흐리고 바람이 세게 불어 배가 뜨지 못했다고 한다. 다행히 오늘은 쨍하고 맑다.
우리가 타고 갈 쾌속선이다. 카프리까지 30분 걸린다. 바다는 잔잔했으나 고속이라 요동이 심해 멀미하는 사람도 있다.
카프리(Capri)는 이탈리아 최고의 휴양지로 유명인의 별장이 많다. 지중해의 푸른 바다와 하얀색의 건물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카프리의 풍광에 반한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여생을 이곳에서 보냈다.
리프트를 타고 카프리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몬테 솔라로 전망대로 올라간다. 섬의 최고봉인데 높이는 589m다.
리프트에서 본 카프리 주택가의 모습이다.
정상에서 본 카프리의 바다 색깔이 신비롭다. 보는 사람마다 감탄사가 나온다. 무슨 색이라고 불러야 할까, 묻길래 그냥 카프리색이라고 하자고 답했다.
아름다운 카프리의 해안 절벽을 보며 쉬다.
내려가는 길에 내 그림자를 찍다. 들판에는 봄꽃이 화사하다.
땅이나 바다나 카프리는 흰색과 푸른색의 조화가 일품이다.
이 페리를 타고 나폴리로 간다.
카프리를 떠나며 배에서 본 풍경이다. 카프리는 길이 6km, 폭이 3km쯤 되는 작은 섬이다. 석회암으로 되어 있고, 해안은 가파른 절벽이다. 아름다운 경치 탓에 로마 시대 때는 황제들의 휴양지로 사용되었다. 네로 황제도 이곳에 자주 들렀다 한다.
나폴리로 향하는 페리에서 본 베수비오 화산이다. 지금은 휴화산이지만 언제 또 화를 낼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런데 주택가는 야금야금 산 중턱으로 올라가고 있다. 위험하지 않냐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다고 한다. "할아버지 때도 괜찮았고, 아버지 때도 괜찮았고, 나 때도 괜찮을 거야!" 이탈리아 남부 쪽 사람들은 낙천적인 면이 많은 것 같다. 초 비만형도 흔하게 눈에 띈다.
전에 LG에서 나폴리에 공장을 세우려고 근로자를 모집했더니 지원자가 열 명밖에 안 돼 포기했다는 우스개 같은 얘기를 가이드가 전해준다. 같은 이탈리아에서도 북부 사람들은 남부의 이런 게으른 기질을 경멸한다고 한다. "당신들은 왜 그렇게 일하기를 싫어합니까?" 남부 사람의 대답은 이랬다. "창문을 열면 시원한 바람이 불고 따스한 햇볕이 비치는데 당신이 여기에 살면 일하고 싶겠소?"
로마로 돌아가는 버스 안, 모니터에는 흑백 화면의 영화 '로마의 휴일'이 나온다. 내일은 여행의 마지막 날, 로마 관광이 있다. 오드리 헵번이 그레고리 펙의 집에서 잠드는 장면에서 나도 스르르 잠이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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