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키지여행은 짧은 시간에 많은 곳을 보는 장점이 있으나 겉핥기에 그치는 점이 아쉽다. 주마간산이라는 표현이 딱 맞다. 명소에 가면 간단한 설명과 함께 자유시간이 주어지는데 대개 기념사진 몇 장 찍으면 끝난다. 유럽에는 예쁜 성당이 많다. 제대로 보자면 안에도 들어가 봐야 하는데 시간상 어림도 없다. 그저 성당 껍데기만 구경할 뿐이다. 여러 군데를 다니자니 어쩔 수 없다.
그래서 개인여행을 생각해 보지만 만만치 않다. 숙소를 정하는 것부터 모든 일정을 직접 짜야 한다. 제일 골칫거리는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음식 하나 먹는데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젊을 때야 패기로 부딪쳐 본다지만 나이 들어서는 너무 큰 장벽이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패키지를 선택한다. 아무 신경 쓰지 않고 따라만 가 주면 된다. 비용도 저렴하다. 불평할 것이 아니라 패키지여행을 잘 활용하면 된다.
이탈리아 여행 여섯째 날이다. 서울서 온 전화벨 소리로 3시에 단잠이 깼다. 실수로 소리를 죽이지 못했다. 그때부터 잠들지 못하고 침대에서 뒤척였다. 새벽 내내 호텔 밖에서 우는 새소리가 청아했다.
7시 30분, 피렌체로 출발한다.
미켈란젤로 광장에서는 피렌체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피렌체(Firenze)는 르네상스를 꽃 피운 도시다. 인간 중심인 예술의 부흥이 이곳에서 시작되었다. 예술가를 전폭적으로 지원한 메디치 가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400년 메디치 가문의 수장이었던 조반니 디 비치는 피렌체의 귀족과 대립하며 평민의 입장을 옹호해 대중의 지지를 받았다. 메디치 가문은 은행업으로 부를 축적하며 15~18세기 사이에 큰 세력을 떨쳤다. 갈릴레이도 메디치 가문의 후원이 있었기에 과학 연구가 가능했다.
도시의 인상은 몇 개 성당만 우뚝할 뿐 전체적으로 차분하다. 시내를 내려다 보는 기슭에 벚꽃이 환하다.
시내로 들어가서 처음 들린 곳이 피렌체의 꽃이라 불리는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이다. 분홍색 대리석으로 지은 건물이 웅장하면서 꽃처럼 예쁘다. 아무리 광각을 써도 성당이 다 담기지 않는다.
성당 옆에는 조토의 종탑이 서 있다. 85m 높이로 1334년에 조토(Giotto)가 설계하고 만들기 시작하여 1359년에 완성했다. 물론 꼭대기에 올라갈 수 있지만 우리는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성당과 종탑을 돌아보는 데만도 서너 시간은 족히 걸리겠다.
비를 맞으며 성당을 한 바퀴 돌다.
성당의 뒷 모습이다.
이번 여행에는 두 번의 쇼핑이 있었다. 이만 하면 양반이다. 이 가게는 가죽 제품을 판다. 'Peruzzi'라는 상표가 붙어 있다. 아내는 250유로 짜리 핸드백을 샀다. 처음 사보는 비싼 가방이라는 말에 가슴이 찡했다.
피렌체 골목길에 깔린 돌도 예술이다. 로마 시대부터 있었다고 한다.
<신곡>을 쓴 단테는 1265년에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단테 기념관인데, 단테가 태어난 집이 옆에 있다.
가이드가 퀴즈를 낸다. "이 둥근 벽돌 건물은 여자들만 사용할 수 있었는데 용도는 무엇일까요?" 여러 대답이 나왔지만 누구도 맞추지 못했다. 정답은, "여죄수 감방!"
1500년대에 메디치 가문의 거처로 쓰였던 베키오 궁전이다. 규모로 볼 때 이 가문의 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궁전 앞이 시뇨리아 광장이다.
궁전 앞과 회랑에는 유명한 조각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다비드 상만 빼고 전부 진품이라는데 야외에 그대로 노출시켜도 되는지 모르겠다.
피렌체 시내를 아르노 강이 흐른다. 강에 세워진 다리 중에 이 '폰테 베키오'가 제일 유명하다. 로마 시대 때 만들어진 다리라고 한다.
다리 양켠의 건물이 오랜 역사를 말해준다. 외양에 어울리지 않게 보석 가게가 들어서 있다.
아르노 강변을 구경하다가 이탈리아의 소매치기를 경험했다. 네 명이 우리 둘을 밀착하며 접근하는데 비켜줘도 떨어졌다가는 다시 붙는다. 아내 배낭 지퍼를 열었지만 결국 눈치 챈 아내의 고함에 도망가 버렸다. 사람을 보고 도둑질을 하지, 열었다 해도 아무 것도 가져갈 게 없었을 것이다.
아담하고 단순한 구조의 이런 성당이 좋다. 예쁜 장난감 집 같은 산타크로체 성당이다. 이 성당에 피렌체 출신 대가들이 잠들어 있다고 한다. 갈릴레이와 단테도 여기에 묻혀 있다.
첫째가 유럽 배낭여행을 하면서 피렌체가 너무 아름다워 예정에 없이 닷새를 묵었다고 했다. 단 한나절로 피렌체를 둘러본 우리는 피렌체의 멋과 아름다움을 얼마나 느낄 수 있었을까. 계획된 일정을 소화하느라 이리저리 숨차게 돌아다녔다. 이제는 아쉬움이 더 큰 그리움으로 남는다.
북부 지역 여행을 마치고 다시 로마로 돌아가는 길, 버스 창문으로 저녁 노을이 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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