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394

제주도 4박5일 - 우도 걷기

제주도 4박5일 여행의 둘째 날은 우도(牛島)를 걸어서 일주했다. 올레 1-1 코스인 이 길은 마을과 밭을 지나고 바다를 끼고 걷는 재미가 아기자기하다. 잔뜩 흐린 날, 성산 여객선터미널에서 배를 타고 20분 정도 걸려 우도 천진항에 닿았다. 배에서 내린 승객은 버스를 타거나 자전거, 스쿠터를 빌려 우도 구경을 시작했다. 걸으려 작정한 사람은 아내와 나, 둘밖에 없었다. 반시계방향으로 섬을 돌기로 했다. 길은 해안가를 벗어나 밭 사이로 꼬불꼬불 나 있었다. 밭의 경계를 나누는 돌담이 이색적이었다. 밭은 새로 경작을 시작하려는지 이랑이 잘 정리되어 있었다. 우도의 특산품은 땅콩이라고 한다. 밭길에 올레 표시가 잘 안 되어 있어 이리저리 많이 헤맸다. 그러나 어디를 걸어도 길인 것을, 멀리 보이는 우도 등대..

사진속일상 2014.06.14

남산길을 걷다

여름 선글라스를 사기 위해 남대문에 간 길에 남산에 오르고 주변 길을 걷다. 초입의 백범광장에는 새로 복원한 한양 성곽이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다. 예전의 음침했던 공원의 분위기가 일신했다. 안중근의사 기념관 앞에서 선생이 남긴 글귀를 읽는다. '見利思義'라, '이익을 만나면 의(義)를 생각한다'는 부분에 눈길이 멎는다. 맹자가 양 혜왕의 초청을 받아 찾아갔다. 혜왕은 맹자에게 나라를 이롭게 할 수 있는 계책을 물었다. 이때 맹자는 대답했다. "임금님께서는 어찌 이익만 말씀하십니까? 인(仁)과 의(義)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이 서로 자신의 이익만 챙기면 나라가 위태롭게 된다고 말했다. 첫머리에 나오는 얘기다. 최근에 우리에게 일어난 비극도 모두가 이(利)만 탐하다가 벌어진 사태가 아니던가. ..

사진속일상 2014.05.27

연속극 유감

다른 나라도 그런지 모르지만, 우리나라 TV는 연속극을 너무 많이 방송하는 것 같다. 그것도 황금시간대에 주로 편성이 되어 있다. 수요가 있으니까 방송을 하겠지만 나같이 연속극을 보지 않는 사람은 채널 선택권을 박탈당한 기분이다. 한류 열풍의 일등공신이 드라마니 무조건 나무랄 일도 아니나, 아무래도 입맛이 쓴 건 사실이다. TV를 바보상자라 부르는 건 넋을 놓고 연속극에 빠지는 현상을 나무란 것이다. 연속극 보는 걸 폄하하고 싶지는 않지만, 과연 책을 읽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를 생각하면 한심해진다. 한국인의 지적 수준을 하향 평준화시키는데 연속극의 공헌을 빼놓을 수 없다.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나이 들면 비슷해진다는 농담도 있다. 사람들의 TV 연속극에 대한 몰두가 불가사의하다. 막장이라고 욕..

길위의단상 2014.05.12

아내와 비봉에 오르다

아내와 북한산에 올랐다. 원래 계획은 비봉능선을 타고 보현봉까지 갔다가 사자능선으로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예상보다 등산로가 가파르고 바위가 많아 일찍 지치는 바람에 계획한 길의 반밖에 가지 못하고 비봉에서 하산했다. 뒷산 정도에 적응된 체력으로는 아무래도 무리였다. 북한산이 암산(岩山)이라는 걸 이번에 새삼 확인했다. 응봉능선으로 내려가면서 본 의상능선의 연이은 바위봉우리가 대단했다. 언젠가는 지나가 보고 싶은 능선이다. 바위산은 보기에는 좋지만 걸을 때는 조심해야 한다. 이제 우리 수준에는 북한산 둘레길 정도가 적당한 것 같다. 족두리봉. 비봉. 재미있게 생긴 바위들. 7km 정도의 산길이었는데 여섯 시간 가까이 걸렸다. 거친 숨 고르느라 쉬고 또 쉬었던 산행이었다. * 산행 시간; 5시간 30분..

사진속일상 2014.03.31

스모그에 갇힌 서울

한반도가 엿새째 미세먼지에 갇혔다. 여기에 스모그까지 더해져 서울의 공기는 최악이었다. 그래도 미세먼지가 보통 수준으로 떨어진다길래 배낭을 멨는데 별로 잘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나마 산에서는 덜 했는데 도심으로 내려오니 목이 칼칼하고 눈이 따끔거리는 게 도저히 사람이 숨 쉴 공기가 아니었다. 참말로 어리석은 인간이 아닌가. 생명의 기본인 물과 공기를 더럽혀 놓고는 행복과 웰빙을 찾느라 난리니 말이다. 공기 청정기를 틀어놓아야 안심이 되는 게 현실이 되었다. 물을 사 마시듯이 공기마저 사서 들고 다니며 호흡해야 할 시대가 닥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착잡한 심정으로 아내와 독립문에서 출발하여 인왕산을 넘어 창의문까지 걸었다. 서울을 뜬지 처음으로 다시 찾은 인왕산이었다. 인왕산은 338m지만 독립문 쪽..

사진속일상 2014.03.01

안산 일출

안산 자락에서 일출을 보았다. 하늘을 발갛게 물들이며 수줍은 듯이 해가 떠올랐다. 두 눈으로 해돋이를 보는 게 참 오랜만이었다. 이렇듯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에는 그동안 내가 너무 게을렀다. 또는 마음속에 그 무슨 간절함이 없었던 탓이기도 했다. 아니면 인생을 건성건성 살으려 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의 애환이 뒤섞인 도시 위로 우주의 등대인 양 태양이 빛나기 시작했다. 마치 새해 첫날처럼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싶어졌다. 아내와 같이 자락길을 한 바퀴 돌았다. 8km를 걷는데 두 시간 정도 걸렸는데, 우리 수준에서는 딱 걷기 알맞은 길이었다. 어느 길이나 다 그러하지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걷다 보면 마음이 환하게 밝아진다. 긍정과 감사의 에너지를 길에서 받는다. 원망과 미움의 감정도 스르..

사진속일상 2014.01.28

아내가 활짝 웃을 때

아내가 활짝 웃을 때는 손주와 함께 있을 때다. 숨어 있던 생의 에너지가 마구 폭발하는 것 같다. 둘이 같이 노는 모습을 보는 것도 즐거운 구경거리다. 핏줄의 힘은 무섭다. 다들 손주라면 사족을 못 쓰는데 왜 그런지 나는 별로다. 그래서 별종이라는 말도 듣는다. 이놈은 외할머니와는 잘 놀면서 나만 마주치면 얼음이 된다. 말은 못해도 눈치는 9단이다. 웃는 얼굴을 찍자면 시간이 더 흘러야 가능하겠다. 돌이 갓 지난 손주는 아직 걷지는 못하고 다른 데를 의지하고 일어설 정도다. 그러다가 넘어지면서 얼굴을 부딪쳐 상처가 났다. 잠시도 한눈을 팔 수가 없다. 이놈이 아장아장 걷게 될 따스한 봄이 기다려진다.

사진속일상 2013.12.22

제주도(3) - 한라산 영실

겨울 산행 준비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한라산 영실코스를 걸어보기로 했다. 길이 미끄러우면 적당한 데서 내려오면 되었다. 그러나 다행히 조심해야 할 구간은 그늘진 곳 일부였고, 나머지는 보통의 운동화로도 충분했다. 영실에서 한라산을 오르는 들머리는 해발 1,280m에서 시작한다. 영실에서는 한라산 백록담까지 오를 수는 없고, 대부분은 윗새오름(1,711m)을 거쳐 어리목으로 하산한다. 우리는 영실에 차를 주차해 놓았으므로 윗새오름까지 오른 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약 4시간이 걸렸다. 영실기암. 이곳 영실 계곡의 웅장한 모습이 부처님이 불제자들에게 설법하던 영산과 비슷하다 해서 영실(靈室)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작은 바위들은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제자들 모습이다. 영실 계곡의 중심인 병풍바위로 수직 암..

사진속일상 2013.12.16

제주도(2) - 올레 7, 8, 9코스

올레 7코스는 외돌개에서 월평마을까지 13.8km다. 서귀포 해안을 대표하는 풍광인 외돌개에서 7코스가 시작된다. 12월이지만 가을 분위기가 나는 길. 야자수가 있는 풍경. 바닷가에서 맛보는 회 한 접시. 범섬. 아픔의 현장, 강정 해안. 8코스는 월평마을에서 대평포구까지 19.2km다. 8코스를 대표하는 갯깍주상절리대. 웅대한 규모에 놀랐다. 암벽에 핀 꽃. 하얏트리젠시호텔 앞으로 올레길이 지나간다. 6코스에 있는 칼호텔은 길을 폐쇄했는데 하얏트는 길을 개방해 주어서 고마웠다. 중문해수욕장. 8코스의 바다 풍경. 9코스는 대평포구에서 화순해변까지 7.1km다. 대평포구에서 바라본 박수기정. 박수기정은 '샘물이 솟는 절벽'이라는 뜻이다. 올레 9코스는 박수기정 위를 지나게 된다. 옛날에는 박수기정 위 평..

사진속일상 2013.12.15

제주도(1) - 올레 5, 6코스

딸이 비행기표를 건네주는 바람에 생각지도 않던 제주도를 가게 되었다. 갑자기 이루어진 여행이라 부랴부랴 숙소를 정하고, 주로 올레길을 걷기 위해 떠났다. 아내와 함께 한 8박9일의 제주도 여행이었다. 올레 5코스는 남원포구에서 쇠소깍까지 14.7km다. 남원포구 앞 바다. 갯바위에서 낚시하는 사람들. 비가 지나간 길. 나무의 윤곽이 한반도 지형을 만들었다. 5코스의 하이라이트인 큰엉 해안. 파도에 깎인 해식절벽이 길게 이어지고, 올레길은 절벽을 따라 나 있다. 위미리에 있는 동백나무 군락. 17세 되던 해 이 마을로 시집 온 현병춘(1858~1933) 할머니가 해초캐기와 품팔이 등 근면한 생활로 어렵게 모은 돈 35냥으로 이곳 황무지를 사들인 후 모진 바람을 막기 위하여 한라산의 동백 씨앗을 따다가 뿌린..

사진속일상 2013.12.14

김장은 힘들어

고향에 내려가서 김장을 했다. "내려와 같이 김장을 담그자." 아직은 어머니의 파워가 막강하시니 꼼짝할 수가 없었다. "아니요, 저희는 여기서 따로 담을 께요." 아마 아내의 속마음은 이랬을 것이다. 절인 배추를 신청만 하면 집까지 택배로 보내주는 편리함이 자꾸 손짓한다. 그러나 김장에 대한 어머니의 정서는 다를 것이다. 김장을 함께 한다는 것은 가족이라는 동질감을 확인하는 한 해의 마지막 행사인지도 모른다. 배추를 심지 말라고 말려도 안 된다. 내 손으로 기른 채소를 자식에게 먹인다는 뿌듯함을 넉넉히 이해할 수 있다. 연세가 많으셔도 이만큼 기력이 있으시다는 게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다. 고향에서 하는 김장은 배추에서부터 모든 재료가 어머니가 손수 지은 것이다. 시장에서 사서 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르..

사진속일상 2013.11.24

갈매못 성지

충남 보령시 오천면 영보리는 마을 뒷산의 산세가 목마른 말이 물을 먹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갈마연동(渴馬淵洞)이라 불렸던 곳이다. 갈매못은 그 갈마연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1866년 3월에 이곳 바닷가에서 안토니오 다블뤼 주교를 비롯해 오메트로 오 베드로 신부, 우앵 민 루가 신부, 황석두 루가, 장주기 요셉 등 5명이 순교했다. 당시는 고종 국혼이 한 달밖에 남지 않은 때라 한양에서 피를 흘리게 하는 것은 국가의 장래에 이롭지 못하다는 무당의 말에 따라 이곳 오천의 충청수영으로 보내어 군문효수하게 된 것이다. 여기는 1846년에 프랑스 함대가 3척의 군함을 끌고 왔던 외연도가 가까운 곳이다. 대원군이 서양 오랑캐를 내친다는 의미에서 상징적으로 이곳을 선택했을 수도 있다. 다블뤼 주교는 1845년에 김대..

사진속일상 2013.11.02

2013 추석

동생네가 도착하기 전 셋이서 미리 송편을 빚었다. 모양새도 사람에 따라 세 가지로 나왔다. 나는 큼직하게 양손으로 눌러 만드는 데 익숙하다. 그러면 손가락 자국이 굵게 나온다. 어머니가 시집왔을 때 손가락 자국이 나는 건 상놈이 빚는 송편이라면서 절대 누르지 못하게 배웠다 하신다. 아내는 어릴 때 익힌 전라도 식이다. 송편소로는 콩, 깨, 밤 세 가지를 썼는데 내 몫은 콩이었다. 나중에 보니 콩을 너무 많이 넣어 송편인지 콩떡인지 모를 정도가 되었다. 송편을 찔 때 전에는 솔잎을 깔았는데 몇 해 전부터는 그 과정이 생략되었다. 송편이 '솔잎 떡'이라는 의미의 '송병(松餠)'에서 유래되었다는데 다음에는 번거롭더라도 뒷산에 다녀와야겠다. 아무래도 솔 향기가 배어야 제맛이 날 것 같다. 아무리 먹을 게 풍성하..

사진속일상 2013.09.20

손주와 창덕궁 나들이

9개월 된 외손주를 데리고 창덕궁에 나들이를 다녀왔다. 아이와 함께한 첫 외출이었다. 어느새 유모차를 따라가는 할아버지가 되다니, 내 자식이 유모차에 앉아 있었을 때가 자꾸 생각났다. 손주는 이제 막 길려고 한다. 팔과 무릎으로 버티기는 하는데 아직 앞으로 나가지는 못한다. 아이가 크는 걸 보면 무척 빠르다. 그래도 저걸 언제 키워서 사람으로 만들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창덕궁은 전과 달리 자유 입장이었지만, 후원은 여전히 가이드 인솔하에만 관람이 가능했다. 후원을 자유롭게 다니는 특별 관람이 없어져 아쉬웠다. 우리는 애련지까지만 따라갔다가 되돌아 나왔다. 그런데 후원에서는 통제가 너무 심해 마음 놓고 의자에 앉아 쉬지도 못했다. 잘 보전이 되어야 하므로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창덕궁은 조선 시대..

사진속일상 2013.09.06

아내와 남한산성을 일주하다

여름의 막바지에 아내와 성곽을 따라 남한산성을 한 바퀴 돌았다. 수없이 남한산성을 찾았지만 아내와 일주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조용한 평일날 부부가 함께 길을 걷는 행복을 누렸다. 또한 아내의 체력이 많이 회복된 걸 확인할 수 있어 기뻤다. 동문에서 출발하여 반시계방향으로 느릿느릿 한 바퀴 도는데 4시간이 걸렸다. 솔숲에서 쉬는데 어느 외국인이 지도를 보이며 'West Command Post'로 가는 길을 물었다. 한참을 고민한 끝에 그것이 수어장대를 가리키는 말인 줄 알았다. 외국인만 대하면 왜 머리가 하얘지는지 모르겠다. 뭉게구름이 키자랑을 하며 솟아올랐다. 더위의 기세도 이제 많이 누그러졌다. 갑자기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굵은 빗방울이 후두둑거리기도 했다. 인생길도 날씨처럼 변화무쌍한 법이었다. 일..

사진속일상 2013.08.27

아내의 다짐

아내는 몸이 많이 부실하다. 5년 전의 큰 수술 후 더 나빠졌다. 조금씩 좋아지고는 있지만, 아직 여진이 끝나지 않았다. 어제는 구토가 나고 머리가 어지러워서 종일 누워있어야 했다. 뇌에 이상이 온 건 아닌지 병원 진료를 받아봐야 할 것 같다. 그래선지 아내는 요사이 부쩍 건강에 관심이 많아졌다. 요가를 하고, 장신대에서 하는 자연치유 강좌에도 나간다. 거기서 권해 준 방법을 집에서도 열심히 실천한다. 애쓰는 게 보이지만 나아지는 속도는 거북이보다 느리다. 노란 스티커에 써 놓은 아내의 메모를 보았다. 혼자의 시간 - 산 복식호흡과 여유 의식적으로 웃기 밤에는 다른 일 하지 않고 잠자기 위한 준비 아파하는 사람을 옆에서 지켜볼 때면 무력감을 느낀다. 고통은 온전히 아픈 사람 혼자서 감내해야 한다. 옆에 ..

길위의단상 2013.07.23

홍천 팔봉산

친구가 팔봉산 자락에 전원주택 터를 가지고 있다.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을 마치고 들어갈 살려는 장기적인 목적으로 산 것이다. 작년에 그 터를 구경하고 팔봉산을 처음 보았다. 아담하고 아기자기하게 생긴 산의 풍광이 좋았다. 산을 에두르며 홍천강이 흐르고 있어 산과 강이 잘 어우러진 풍경이었다. 팔봉산(八峰山)은 여덟 개의 암봉으로 이루어진 산인데 봉우리 높이는 3백m급이다. 그래서 동네 뒷산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어제 아내와 함께 산을 찾았다. 그런데 웬걸, 바위로 된 여덟 개의 봉우리를 오르내리는 게 만만치 않았다. 상당히 위험한 구간도 있었다. 작년 가을에는 5봉에서 추락사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쉽게 생각했다가 네 발로 엉금엉금 기느라 땀깨나 흘렸다. 팔봉산 최고봉이 해발 327.4m인 2봉이다...

사진속일상 2013.07.02

갑과 을

아내는 스마트폰이지만, 나는 아직 구식폰을 쓰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위치가 역전되는 게 자꾸 생긴다. 고등학생이었을 때 어느 선생님이 '사람 인'[人]자를 둘이서 서로 의지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설명한 게 생각난다. 지금은, 아내는 길고, 나는 짧다. ...................... 옛날폰을 들고 다니는 사람을 이젠 만나기 어렵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지 몇 년이 되지 않았는데 나는 마치 구석기 시대에서 온 원시인 같다. 모임에 나가보면 다들 자기 스마트폰을 꺼내 놓고 쳐다보기 바쁘다. 뭘 그렇게 하는 건지 궁금하기 그지없다. 얼마 전 순댓국밥집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 젊은이 둘이 들어왔다. 둘은 마주 앉긴 했으나 폰만 만지작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둘이 얼굴을 쳐다본 건 메뉴를 고를..

길위의단상 2013.06.02

어버이날 나들이

어버이날에 장모님을 모시고 임실에 있는 옥정호엘 다녀왔다. 문밖 출입을 잘 못하시는 장모님에게 바깥바람을 쐬어드리기 위해서였다. 작년만 해도 걷기에는 큰 지장이 없었는데 수술을 한 후에는 더욱 연로해지셨다. 신록의 계절은 더욱 푸르렀고, 갑자기 오른 기온은 이미 성큼 여름이 다가온 듯했다. 자식 아끼지 않는 부모가 어디 있겠느냐마는 장모님의 자식 사랑은 정말 유별하다. 장인어른이 돌아가신 후 배우자 연금으로 생활하시는데 본인을 위해서는 한 푼도 쓰지 못한다. 난방비를 아끼느라 겨울에도 집안에는 냉기가 싸늘하다. 그래서 모은 돈은 전부 자식들에게 준다. 아무리 말려도 소용없다. 몸이 아파도 자식들 힘들게 할까 봐, 그게 제일 걱정이다. 아직도 다 큰 자식으로 노심초사하시는 걸 보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천성..

사진속일상 2013.05.09

미주 여행 - 모뉴먼트 밸리와 파웰 호수

모뉴먼트 밸리(Monument Valley)는 애리조나주와 유타주에 걸쳐 있는 지역으로 나바호(Navajo) 인디언의 성지다. 현재는 나바호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되어 있다. 백인에게 쫓겨난 인디언의 슬픈 역사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장소다. 모뉴먼트 밸리는 철분이 포함된 붉은 바위산과 파란 하늘이 멋진 대조를 이룬다. 한반도 면적과 비슷한 붉은 대평원에 치솟은 거대한 바위 기둥과 언덕의 모습은 자연의 신비와 경이를 잘 보여준다. 이곳은 2,000m가 넘는 고원지대로 우리가 찾았을 때도 상당히 추었다. 겨울옷으로 무장해야 했다. '황야의 무법자' 같은 서부 영화들이 여기서 촬영되었다. 주로 존 웨인이 주연한 영화가 많았는지 그의 이름이 붙은 포인트도 있다. 모뉴먼트 밸리를 가장 조망하기 좋은 곳에는 더 뷰(..

사진속일상 2013.03.07

미주 여행 - 브라이스 캐니언, 안텔로프 캐니언, 자이언 캐니언

이번 여행에서는 그랜드 캐니언 외에 브라이스, 안텔로프, 자이언 등 3개의 캐니언을 더 들렀다. 이들 캐니언은 차로 두세 시간이면 갈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다. 브라이스 캐니언(Brice Canyon) - 오랜 시간 풍화작용에 의해 부드러운 흙은 사라지고 단단한 암석만 남아 지금은 수만 개의 분홍색, 크림색, 갈색의 돌 첨탑들이 도열하고 있다. 이곳에도 여러 개의 뷰 포인트가 있는데 그중 선셋 포인트(Sunset Point)도 있다. 석양을 받은 이곳 풍경은 불타듯 화려할 것 같다. 돌기둥 사이로는 걸을 수 있는 트레일 길도 나 있다. 개인적으로 찾아와서 넉넉하게 둘러보고 싶다. 안텔로프 캐니언(Antelope Canyon) - 붉은색의 사암층을 수만 년 동안 물이 흐르며 이리저리 깎아낸 후 지금은 좁은..

사진속일상 2013.03.06

미주 여행 - 그랜드 캐니언

전날 밤 늦게 라스베가스에 도착했는데 그랜드 캐니언에 가기 위해서는 새벽 4시에 일어나야 했다. 캐나다와 달리 미국에 들어와서는 일정이 빡세졌다. 또, 다른 여행팀과 합류하게 되어 대형버스에 38명이 함께 다니게 되었다. 그러나 그랜드 캐니언을 본다는 기대만으로도 온통 설레기만 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이 바로 그랜드 캐니언을 보는 것이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국어 교과서에 실린 천관우 씨의 그랜드 캐년 기행문을 읽었을 때의 감동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글이 소년의 마음을 얼마나 들뜨게 했는지 모른다. 나도 언젠가는 그랜드 캐니언에 가리라고 그때 다짐했었다. 그 바람이 40여년이 지나 이루어졌다. 라스베가스에서 그랜드 캐니언까지 가는 데는 5시간이 걸렸다. 길 옆으로는 단조로운 황무지가 끝없이 이어졌다...

사진속일상 2013.03.06

미주 여행 - 캐나디안 로키(2)

무슨 호수인지 이름은 잊었지만 마치 달력 사진에서 보았을 것 같은 아름다운 풍광에 넋을 잃었다.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표현해 낼 능력이 없다. 그래도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올 걸 하는 뒤늦은 후회를 이번 여행에서는 무척 많이 했다. 긴 여행에 방해가 될까봐 DSLR은 집에 두고 가벼운 똑딱이를 들고 나왔다. 인근에 있는 또다른 호수. 캐나디안 로키에는 이렇듯 수많은 호수가 산재해 있다. 우리가 이틀간 묵은 5성급의 페어몬트 샤또 레이크루이스 호텔(Fairmont Chateau Lake Louise)이다. 1년 전에 예약하지 않으면 숙박하기 힘들다는 호텔로 현지인이 꼽은 최고의 허니문 호텔 1위로 뽑혔다. 그러나 우리가 묵은 방은 시설이 열악했다. 난방 온도가 올라가지 않아 안 그래도 몸살이 난 몸..

사진속일상 2013.03.05

미주 여행 - 캐나디안 로키(1)

세계의 4대 산맥이라면 아시아의 히말라야, 유럽의 알프스, 북아메리카의 로키, 남아메리카의 안데스를 들 수 있다. 몇 년 전에 히말라야의 품에 안겼고, 이번에는 로키를 찾았다. 모두투어에 그랜드 케니언과 캐나디안 로키를 연계하는 상품이 있어 아내와 함께 패키지로 다녀왔다. 8박10일의 일정이었다. 캐나디안 로키(Canadian Rokies)에는 4개의 국립공원이 있으며, 최고봉은 3,954m의 롭슨산이다. 인천공항에서 에어 캐나다 편으로 10시간 가까이 걸려 동부 해안 도시인 벤쿠버에 도착했다. 밴쿠버에서 다시 국내선 항공기로 갈아타고 로키산맥을 넘어 캘거리에 닿았다. 밴쿠버에서는 비가 내렸는데 로키산맥을 넘으면서부터는 구름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눈 아래로 보이는 로키의 설경에 가슴이 뛰었다. 기류가 거..

사진속일상 2013.03.05

화를 내라, 그러나 잘 내라

내 단점은 불뚝 성질이다. 얘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큰소리를 치며 화를 내는 경우가 있다. 밖에서는 얌전한데 집 식구에게 그런다. 전형적인 졸장부의 모습이다. 전에는 잘 참아주던 아내가 이젠 같이 맞받아친다. 부부싸움으로 확전이 되기도 한다. 말투 하나에서 시작하여 집안에 찬바람이 분다. 내 불뚝 성질은 아내의 가장 큰 스트레스다. 심리학을 공부하는 아내는 내 안에 무언가 억압을 받고 있는 게 있다고 말한다. 나는 아니라고 변명하지만 속으로는 그럴 수도 있다고 인정한다. 잘못된 습관을 고치고 싶지만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게 아니어서 괴롭다. 겉으로 나타나는 것과 달리 마음은 그렇지 않는 걸 아내도 알 것이다. 따뜻이 대하고 싶은데 이상하게 말은 반대로 나온다. 어제도 작은 폭풍이 지나갔다. 아내가 외출하고 ..

길위의단상 2012.11.22

단풍 여행 - 동강 어라연

다음 날은 동강을 찾아갔다. 첫째가 마련해준 숙소가 마침 동강 어라연 가까이에 있었다. 원래 계획은 아내의 상태를 고려해 강변을 따라 걷기 편한 길로 어라연까지 갔다오는 것이었다. 거운리 어라연탐방안내센터에 주차를 하고 임도를 따라 올라갔다. 10여 분 올라가니 잣봉으로 올라가는 등산로와 강변으로 내려가는 길이 나누어지는 지점이 나왔다. 다시 걷기 열병이 발동했고 잣봉으로 올라 라운딩하는데 아내도 동의했다. 등산은 생각지도 않았으므로 운동화 차림의 아내는 나무 작대기를 찾아 짚었다. 잣봉(537m)으로 가는 길. 힘들게 올라서니 편안한 능선길이 나오고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능선에 있는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동강과 어라연. 청옥빛 물 색깔이 보석 같이 아름다웠다. 잣봉에서부터 동강으로 내려가는 길은 ..

사진속일상 2012.10.26

단풍 여행 - 대청호와 청남대

세상사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울릉도에 갈 준비를 마치고 날짜만 기다리고 있는데 아내의 무릎에 이상이 생겼다. 병원에 다니며 물리치료를 받았지만 별로 차도가 없었다. 부득이 울릉도 여행은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성인봉을 오를 수 없는데 울릉도에 갈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은 울릉도에 인연이 닿지 않는가 보다. 마침 지인의 장례식이 있어 청주에 가야 할 일이 생겼다. 그래서 울릉도 대신 내륙 지방 단풍 여행을 하기로 했다. 23일 아침에 장례 미사에 참례한 후 인근에 있는 대청호와 청남대에 들렀다. 이래서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장소에 가게 되었다. 맑은 날이었지만 기온이 뚝 떨어져 싸늘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대청호에는 아직 오색 단풍은 오지 않았다. 청남대 산책로를 걷고, 맞은편 호반길을 드라이브했..

사진속일상 2012.10.26

선자령과 권금성

궂은 날씨 가운데에서 맑은 초가을 하늘이 열렸다. 강원도의 산과 바다로 훌쩍 길을 떠났다. 아내와 동행했다. 먼저 대관령에서 선자령을 오가는 산길을 걸었다. 갈 때는 능선길을, 돌아올 때는 계곡길을 따랐다. 능선길은 전망이 시원했고, 계곡길에서는 많은 꽃을 만났다. 왕복 9km 정도 되는 길을 걷는데 4시간이 걸렸다.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는 매력 있는 길이었다. 선자령은 눈꽃산행을 많이 하는 곳으로 알고 있었는데 어느 계절에 찾아가더라도 특색 있는 풍경을 볼 것 같다. 속초 바닷가에서 하룻밤을 자고 설악산 권금성에 올랐다. 처음으로 케이블카를 이용했다. 명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문제로 논란이 많은데 무조건 반대만이 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유럽 알프스처럼 자연환경과 잘 어울리는 시설..

사진속일상 2012.09.08

이포보

드라이브를 나간 길에 여주 이포보에 들렀다. 이 며칠 마음이 울적했던 차였다. 몸 상태도 좋지 않았지만 연일 비 내리는 궂은 날씨 탓이기도 했다. 거기에 옛 밤골 생활의 기록을 정리하면서 마음이 더 심란해졌다. 우울에 우울이 겹쳤다. 기어코 4대강 사업도 끝났고 보도 완성되었다. 공사 중일 때 몇 차례 이 옆을 지날 때는 눈길도 주기 싫었다. 환경운동가들이 여기에서 시위를 하기도 했지만 공사에는 아무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 놓았을까, 궁금했다. 보 위에 건설된 다리를 따라 반대편까지 갔다 왔다. 이곳에 보가 왜 필요한 건지 현장에서 봐도 의문이 든다. 단순히 물을 막기 위해 이런 거대한 시설이 왜 필요한지 모르겠다. 홍보 자료를 보면, 첫째, 물 부족과 홍수 예방. 둘째, 수질 개선..

사진속일상 2012.0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