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394

춘천 나들이

아내 생일날, 함께 춘천으로 나들이를 갔다. 아내의 몸 상태로는 상당히 먼 거리를 다녀온 셈이다. 다행히 서울과 춘천 사이에 고속도로가 열려서 시간상으로는 무척 가까워졌다. 춘천은 그냥 지나친 경우를 제외하면 이번이 세 번째 여행이다. 둘 다 오래전의 일이었다. 제일 먼저 들린 곳은 강원도립화목원이었다. 식물에 관심이 큰 것은 아내나 나나 취향이 같다. 온실에서 그간 굶주렸던 꽃들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이곳은 이름이 '화목원(花木苑)'인 것이 특이했고, 1999년에 개장했다는데 규모가 작고 아담했다. 그러나 큰 수목원과는 아무래도 내용면에서 차이가 났다. 이번 길에서는 춘천의 명물이라는 닭갈비와 막국수를 먹고 싶었다. 그래서 맛집으로 알려진 T 음식점을 찾아갔으나 대기하는 사람들로 한 시간이나 기다..

사진속일상 2010.02.28

이촌에서 새절까지 걷다

열여섯 번째 는 이촌에서 새절까지 걸었다. 출발지는 지하철 이촌역이었다. 역에서 내려 한강 시민공원으로 나가니 강바람이 차가웠다. 특히 하류 쪽으로 내려가는 방향은 맞바람을 맞아야 해서 더 힘들었다. 아내와 동행했는데 아내는 1차 목표가 절두산성지까지였다. 나는 불광천까지 거슬러 올라가 볼 예정이었다. 강 건너편에서 바라본 여의도. 한강길을 걸을 때의 장점은 이렇게 전망이 넓게 트인다는 점이다. 그리고 같은 길을 여러 번 걸어도 계절이나 시간에 따라 느낌이 다르므로 늘 새롭다. 한강의 얼음은 대부분 녹았지만 강 가장자리에는 아직 얼음 조각들이 남아 있다. 길은 강변북로와 나란히 이어진다. 큰 도로가 바로 옆에 있으면 소음 때문에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아스팔트로된 자전거길과 보행로로 이용되는 ..

사진속일상 2010.02.06

삼전도비를 보고 구의까지 걷다

1637년 1월 30일, 조선의 왕 인조는 한강 삼전도로 나가 청 태종을 향해 무릎을 꿇고 항복한다. 남한산성으로 도망간 지한 달여 만의 일이었다. 김훈의 을 읽어 보면 싸움다운 싸움 한 번 못해 본 조선 군대의 지리멸렬한 모습이 잘 그려져 있다. 하긴 청군이 개성까지 쳐들어 올 때까지도 전쟁이 일어난 것도 몰랐다니까 당시 나라꼴이 어떠했을지는 짐작이 간다. 병자호란의 치욕은 조선 집권층의 시대착오적 중화사상 탓이라는 게 정설이다.만주족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보면서도 사대부들은 고집불통으로 명나라와의 의리만 주장하고 다른 나라는 오랑캐의 나라라고 멸시했다. 청으로 국호를 바꾼 만주족은 다시 조선을 침략해서 항복을 받고 두 나라는 군신의 관계를 맺게 된다. 전쟁 뒤에 수많은 사람들이 볼모로 청나라에 잡혀 ..

사진속일상 2010.02.01

반포를 한 바퀴 돌아오다

오늘은 서초구로 산책을 나갔다. 집에서 약 30분 가량 걸어가면 서리풀공원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작은 산으로 된 녹지가 반포 지역까지 연결되어 있다. 중간에 몽마르뜨공원이 있고 누에다리를 지나서 내려가면 고속터미널이 나온다. 아내와 함께 첫 걸음을 해 보았다. 산책을 하는 길은 여러 종류가 있다. 되도록이면 시내의 번잡한 길은 피하는 편이지만 오늘 같은 날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새로운 길은 늘 가벼운 흥분을 일으킨다. 이석원의 산문집에서 이런 글을 읽었다. '세상에 길은 많고, 모든 길은 저마다의 특색이 있다. 여행지에서의 산책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 근처를 거닐게 된다. 그리고 그날그날 산책의 용도에 따라 코스 또한 다양하게 선택된다. 운동을 겸해 약간 빠르게 걸을 수 있는 길, 생각할 것..

사진속일상 2010.01.29

국립중앙박물관과 용산가족공원

며칠 동안 집안에서만 빈둥거리다가 오늘은 아내와 가벼운 나들이를 했다. 공기는 차가웠지만 햇살이 환한 날이었다. 집에서 전철로 두 정거장 거리에 국립중앙박물관이 있다. 부끄럽게도 아직 한 번도 가보지를 않았다. 그래서 박물관 구경도 하고 옆에 있는 공원도 산책하기로 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005 년에 서울 용산의 지금 자리로 신축 이전을 했다. 전에는 미군 기지의 헬기장으로 쓰였던 장소다. 그때 부지런히 헬기가 뜨고내리는 광경이 연상되어 격세지감이 느껴졌다. 터도 넓고 건물도 박물관 이미지에 어울리게 잘 지어졌다. 오늘은 1 층에 있는 전시실만 관람했다. 1 층은 선사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이다. 박물관에서 실시하는 교육 프로그램에 참석한 아이들이 많았다. 한 쪽에서는 잉카 유..

사진속일상 2010.01.03

과천에서 수서까지 걷다

열다섯 번째 는 양재천과 탄천을 따라 과천에서 수서까지 걸었다. 시작 지점은 전철 선바위역이었고, 끝 지점은 수서역이었다. 기온은 영하로 떨어졌지만 하늘은 맑았고 햇살은 환했다. 어렵게 아내가 동행했다. 여러 번 양재천을 걸었지만 과천에서 시작한 것은 처음이었다. 햇빛이나 바람이 반대쪽에 있어서 걷기에 더 좋았다.양재천 과천 구간은 한가해서 좋은 길이다. 소박한 시골 맛도 느껴진다. 그러나 서울로 들면서 산책 나온 사람들도 많고 복잡해진다. 그래도 걷는동안 자동차 소리에서 벗어날 수 있는 양재천 길이 좋다. 오랜만에 걸어선지 나중에는 허벅지가 당기고 발바닥도 아팠다. 아내는 더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날씨가 차가워 앉아 휴식하기도 마땅치 않았다. 그늘이 진 곳에서는 쉼없이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다 ..

사진속일상 2009.12.27

간장게장과 해수탕

몸이 찌뿌듯해서 집에서 쉬다가 불현듯 강화도가 떠올랐다. 해수탕에서 찜질을 하고 싶었고, 또 아내가 며칠 전부터 간장게장을 먹고 싶다고 했던 터였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초지대교를 건너기 전에 '진천정'이라고 간장게장을 잘 하는 집이 있었다. 먼저 전등사에 들러 절 주위를 산책했다. 여러 번 전등사에 왔지만 절을 둘러싸고 있는 산에 오르지는 못했다. 이름이 정족산(鼎足山)인데 조선시대에 사고(史庫)가 위치해서였는지 산성이 절을 감싸고 있다. 정족산성을 따라 반 바퀴 정도 걸었다. 낮은 산이지만 전등사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좋았다. 내 입에는 약간 비릿했지만 아내는 고소하다며 간장게장을 맛있게 먹었다. 처음으로 밥 한 공기를 다 비웠다. 그 모습을 보니 기쁘기도 하고 안스럽기도 했다. 아내는 말과 ..

사진속일상 2009.11.29

살아야겠다

“살아야겠다!” 요즈음 아내가 혼잣말처럼 자주 하는 말이다. 작년에 큰 수술을 받고 차츰 회복되고 있었으나 최근에 몸 상태가 다시 나빠지고 있다. 조금만 움직여도 쉽게 피로해하고 특히 기억력이 완연히 떨어졌다. 집안일도 힘든 것은 하지를 못하고, 차도 오래 타지를 못한다. 한 번 무리를 하면 며칠 동안 꼼짝을 못한다. 지난주에는 억지로 함께 고향을 다녀왔는데 그 여파가 만만치 않았다. 그러다보니 본인 마음도 약해지는지 가족들에게 의지를 하려하고 그게 여의치 않을 때는 마음의 상처도 많이 받는다. 더구나 나나 아이들이나 살갑게 보살펴주는 성격이 못되니 서운함은 더 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다 보니 나 역시 말 한 마디 하는 데도 조심스러워진다. 다른 때 같으면 그냥 웃고 넘어갈 것도 아내는 예민하게 ..

길위의단상 2009.09.18

세미원 연꽃과 호명호수

오랜만에 아내와 드라이브를 나갔다. 햇빛는 났지만 다행히 그리 더운 날씨는 아니었다. 먼저 양수리에 있는 세미원에 들러서 연꽃을 구경했다. 세미원에는연꽃,노랑어리연꽃, 열대수련, 수련이 주종이다. 세미원에는 새 건물이 들어서고 입장료를 받는 등 전과는 달라졌지만 연꽃은 3 년 전 모습과 별로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그래도 세미원은 연꽃 속에서 마음껏 행복해질수 있는 장소다. 나 역시 오랜만에 카메라에 망원렌즈를 달고서 연꽃들을 찍어 보았다. 연꽃 구경을 마친 뒤 북한강변에 있는쌀밥집에서 점심을 맛나게 먹은 후 호명산으로 향했다. 작년에 가평 양수발전소를 개방했다고 해서 산 위에 있는 호명호수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발전소 고개에 차를 세우고 산 능선을 따라 호명호수까지 걸었다. 산길은 약 2 km 정..

사진속일상 2009.07.23

우이령을 넘다

우이령이 41년 만에 시민 품으로 돌아왔다. 서울 우이동과 양주시 교현리를 연결하는 우이령은 1968년 1월에 청와대를 습격하기 위해 무장공비가 침투한 길로 이용되면서 폐쇄되었다. 북한산과 도봉산 사이에 있는 이 길은 예전에는 경기도 사람들이 서울로 오갈 때 이용한 주요 통로였다. 우이령(牛耳嶺)이라는 이름은 길 모양이 쇠귀를 닮아서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개방 기념으로 오는 26일까지만 자유롭게 통행을 허용하고, 그 뒤부터는 예약을 통해 제한된 숫자만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어제는 아내와 함께 우이령에 다녀왔다. 우이동 입구에서 교현리까지 간 뒤 다시 우이동으로 돌아왔다. 우이령길을 왕복한 셈이다. 걸은 거리는 약 13 km, 3시간 30분이 걸렸다. 우이령에 들기 위해서는 버스에서 내려 소란한 음식점..

사진속일상 2009.07.21

서울대공원에서 청계산에 오르다

이번 청계산행의 들머리는 서울대공원 관리사무소 입구였다. 대개 과천 쪽에서 오르는 청계산은 서울대공원 오른쪽 길을 이용하지만 이번에는 왼쪽 방향을 택했다. 여기는 찾는 사람들이 적어 조용해서 좋다. 길도 완만한 오르막이어서 걷기에 편하다. 약 40분 정도 걸으면 청계산 주능선에 이르고 곧 옥녀봉이 나온다. 아내와 동행했는데 아내가 힘들어하면 반대쪽 양재로 하산할 계획이었으나 의외로 아내의 몸 상태가 좋아 정상을 오르기로 했다. 그래서 1천여 개의 계단을 지나 매봉에 오른 다음 바로 청계산 최고봉인 망경대(望京臺, 618m)까지 올랐다. 아내와는 며칠전에 퇴직 문제로 작은 다툼이 있었다. 빨리 퇴직하고 싶은 내 바람을 아내는 여전히 받아주지 않고 있다. 남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아내가 나는 야속한 것..

사진속일상 2009.07.11

광교산과 백운산을 종주하다

수원에 있는 광교산(光橋山)과 의왕에 있는 백운산(白雲山)은 오래전부터 오르고 싶었던 산이었다. 마침 오늘 아내와 함께 그 두 산을 함께 종주할 기회가 생겼다. 아내의 체력이 약해져서 무리를 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아침에 일어나니 좋은 날씨가 충동질을 하는 바람에 배낭을 꾸리게 되었다. 사당에서 7000번 버스를 타고 수원에 있는 경기대 후문에서 내렸다. 약 30분 정도가 걸렸다. 거기서 캠퍼스를 가로질러 정문으로 가니 광교산 등산로 입구가 나왔다. 토요일이라 등산객들이 무척 많았다. 형제봉까지 오르는 길은 사람의 행렬 속에 갇혀야 했다. 약 2시간 정도 걸려서 광교산의 최고봉인 시루봉(582m)에 이르렀다. 광교산은 소나무가 많은 산이다. 바람을 따라 솔향기가 코를 간질여서 기분이 좋았다. 길 또한 완만..

사진속일상 2009.06.13

뒷산을 산책하다

대도시에 살면서 대문을 나서면 바로 이런 아름다운 산길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비록 그 축복을 자주 누리지는 못하지만 언제고 날 기다려주는 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오늘도 가벼운 운동화 꺼내 신고 산길에 든다. 일요일인데도 길은 호젓하다. 사람들은 유명 관광지나 축제에는 몰리지만 이런산은 잘 찾지 않는다. 너무 가까이 있어서 도리어 그 소중함을 잘 알지 못한다. 아니면 걷기를 별로 즐기지 않는 탓도 있으리라. 그래도 예전에 비해서는 걷기의 가치를 많이 깨달아가고 있다. "나는 걸을 때 명상을 할 수 있다. 걸음이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나의 정신은 오직 나의 다리와 함께 움직인다." 루소가 '고백록'에서 한 말이다. 또 니체는 말했다. "진정으로 위대한 생각은 걷기로부터 나온..

사진속일상 2009.06.07

늙어가는 아내에게 / 황지우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 살아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 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꼽을 훔치거나 그대 웃깃의 솔밥이 뜯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보이는 게야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 너머 잎 내리는 잡목 숲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주었지 그런거야, 서로를 오래오래 그냥, 보게 하는 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

시읽는기쁨 2009.05.25

석모도 해명산길을 걷다

외포리에 도착할 때까지 비가 오락가락했다. 일기예보로는 아침에 비가 그친다 했다. 차안에서 김밥으로 아침을 대신하며 일찍 출발한 길이었다. 토요일이라 늦으면 사람들로 복잡할 것 같아서였다. 석모도 산능선길은 예전부터 걷고 싶었던 길이었는데 이번에 드디어 걸어보게 되었다. 아내와 동행했다. 차는 외포리에주차시켜놓고 배로 건너가서 다시 버스를 타고 전득이고개에서 내렸다. 해명산 등산로 입구다. 벌써 관광버스 두 대가 와서 등산객을 내려놓고 있었다. 비는 그쳤으나 산안개가 자욱했다. 해명산, 석가산, 상봉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석모도의 척추를 이룬다. 모두 3백 m급의 야트막한 산이다. 해명산에만 올라서면 포근하고 아름다운 산길이 10 km 가까이 계속된다. 길은 적당하게 오르내리면서 북쪽으로 향하는데 산길..

사진속일상 2009.05.24

강화도 나들이

아내의 몸이 많이 회복되어 이제 짧은 거리의 나들이는 가능하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가까운 강화도를 함께 다녀왔다. 수술을 받은지 꼭 6 개월만에 첫 바깥 나들이를 한 셈이다. 이제부터는 전처럼 함께 다닐 시간이 많아질 것 같다. 모든 인간관계가 그러하듯 부부도 자주 얼굴을 대하고 가까이 있지않으면 소원해지기 쉽다. 비록 티격태격하더라도 함께 하는 시간을갖고 대화를 자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가는 동안에는 봄비가 계속 내렸는데 다행히 강화도에 들어서니 비는 그쳤다. 먼저 초지진에 들러 소나무를 보고 점심을 먹은 뒤 광성보의 산길을 산책했다. 바닷가를 따라 난 길은 군데군데 제비꽃이 피어 있고 노란 생강나무꽃이 반가운 호젓한 길이었다. 산에 드니 비가 온 뒤인데도 낙엽 밟히는 소리가 바삭거렸다...

사진속일상 2009.03.26

마누라 음식 간보기 / 임보

아내는 새로운 음식을 만들때마다 내 앞에 가져와 한 숟갈 내밀며 간을 보라 한다. 그러면 "음, 마침맞구먼, 맛있네!" 이것이 요즘 내가 터득한 정답이다. 물론, 때로는 좀 간간하기도 하고 좀 싱겁기도 할 때가 없지 않지만- 만일 "좀 간간한 것 같은데" 하면 아내가 한 입 자셔 보고 나서 "뭣이 간간허요? 밥에다 자시면 딱 쓰것구만!" 하신다. 만일 "좀 삼삼헌디" 하면 또 아내가 한 입 자셔 보고 나서 "짜면 건강에 해롭다요. 싱겁게 드시시오." 하시니 할말이 없다 내가 얼마나 멍청한고? 아내 음식 간 맞추는 데 평생이 걸렸으니 정답은 "참 맛있네!"인데 그 쉬운 것도 모르고.... -마누라 음식 간보기 / 임보 마눌님 눈치 보는 일이 잦아졌다. 나이가 들면서 고개 숙인 남자가 되는 건 자연의 필연 ..

시읽는기쁨 2009.03.18

국립현충원의 가을

아내와 첫 외출을 했다.수술을 받은지 한 달 반만이다. 처음에는 집 주변을 가볍게 산책했으나 그것마저 무리가 되는 것 같아 포기하고 아내는 집에서만 지냈다. 가볍게 운동을 했으면 싶지만 찬바람을 쐬면 자꾸 머리가 아파오니 어쩔 수가 없었다. 집 뒤의 국립현충원에 가을이 한껏 익었다. 전 같으면 가볍게 운동화를 신고 나갔겠지만 이번에는 차를 이용했다. 열심히 걷기 운동을 하던 길을 차를 타고 지나야 되니 괜히 슬퍼졌다. 단풍이 멋진 곳에서는 내려서 조금씩 주변을 산책했다. 올들어 처음 보는 가을 단풍에 아내는 환호성을 질렀다. 도심에 이런 멋진 곳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러나 휴일인데도 사람들은 별로 없이 한산했다. 아마 묘지라는 인식이 사람들을 꺼리게 만드는 것 같다. 아내는 이 정도라..

사진속일상 2008.11.10

아내가 퇴원하다

큰 수술을 받은 아내가 퇴원했다. 지난 달 22일에 입원했으니 꼭 열하루 동안 병원 생활을 한 셈이다. 머리를 감은 붕대는 그저께 풀었는데 두개골을 열고 수술 받은 흔적이깊었다. 이마 위로 해서 귀까지 30 cm 가까이나 길게상처가 나 있다. 아직도 아내는 발음이 분명하지 않고 기억도 오락가락 한다. 팔다리에는 시커먼 멍투성이다. 수술이 잘 되어서 다행이긴 하나 아내의 모습을 보면 여간 마음이 아프지 않다. 아내는 집에 와서도 기운을 차리지 못하고 계속 잠만 잔다. 지칠 만도 할 것이라 생각되지만 옆에서 지켜보노라면 여간 안스러운 게 아니다. 빨리 회복되길 기도한다. 열하루 동안 아이들과 교대로 병원 출입을 하며 아내를 지켜 보았다. 특히 아이들이 애를 많이 썼다.병원에서는 2인 병실에 있었는데옆 자리에..

사진속일상 2008.10.03

아내가 수술을 받다

한 달여 전에 아내는 '비출혈성 동맥류'라는 진단을 받았다. 전부터 편두통이 심했는데 우연히 MRI 촬영을 하게 되어 뇌동맥에 이상이 생긴 것을 발견한 것이다. 사진상으로는 포도송이처럼 혈관이 비정상적으로 부풀어 있었는데 문외한인 내가 보아도 금방 터질 듯 위험해 보였다. 더 큰 병원에 가서 정밀진단을 받으라는 권고를 듣고 서울에서 CT 등의 더 자세한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전과 동일하였고 가능하면 빨리 수술을 받으라고 했다. 지난 월요일에 입원해서 최종적으로 조영술 검사로 확인한 후 두개골을 열어서 이상 부위를 차단하는 수술을받았다. 처음에는 간단하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수술 부위가 뇌라서혹시 잘못 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컸다. 아내를 수술실로 들여보낼 때는 더욱 안스럽고 안타까웠다.수술실..

사진속일상 2008.09.26

수리산에 오르다

이열치열로 여름과 정면대결해 보는 것은 어떨까?폭염주의보가 내려진 한낮에 아내와 함께 수리산에 올랐다. 때가 때인지라 땀 많이 흘리고, 물 엄청 마셨다. - 산행 시간 ; 10:00 - 15:30 - 산행 경로 ; 수리산역 - 용진사 - 슬기봉(475m) - 칼바위 - 병풍바위 - 태을봉(489m) - 산본고등학교 - 산본역 수리산(修理山)은 변산 아씨를 만나러 몇 번 온 적은 있었지만 정식 산행을 위해 찾은 것은 처음이었다. 500 m가 안 되는 봉우리들로 이루어진 산이라 가볍게 생각했는데 예상 외로 산은 컸고 힘들었다. 거의 30 분마다 한 번씩 휴식을 했다. 아마 더운 날씨 탓도 있었을 것이다. 수리산역에서부터 용진사를 거쳐 슬기봉 아래까지 가는 길은 완만한 경사에 산책하기 좋은 포근한 흙길이었다...

사진속일상 2008.08.07

도봉산에 오르다

젊었을 때는 도봉산을 자주 찾았는데 최근에는 뜸해졌다. 더구나 아내는 20 년 가까이나 된다. 뜨거운 여름에 큰 산(?)을 오르는 것이 부담이 되었지만 한 번 시도해 보기로 했다. 무리하지는 말고 너무 힘이 들면 어느 때고 포기하자고 했다. 그러나 오르는 길이 걱정했던 만큼 힘들지는 않았다.신선대 정상에 오른 뒤 내려오는 길이 도리어 어려웠다. 경사가 가파르고 바위길이라 오를 때보다 더 신경이 쓰였다. 천천히 걸었지만 여름은 여름이라 산행길 내내 땀이 비오듯 흘렀다.그러나 기분 좋은 땀흘림이었다. 몸의 나쁜 기운이 땀으로 빠져나가고 있다고 상상하니 더욱 그랬다.땀이 흐르면 흐를수록 몸은 더 개운해졌다. 산길을 걸으면 아무리 피곤해도 지치지는 않는다. 산에서 받는 무언가의 기운이나 에너지가 분명 있는 것 ..

사진속일상 2008.08.05

태풍 뒤의 삼성산에 오르다

태풍 '갈매기'가 이틀간 200 mm 가까운 비를 뿌렸다. 태풍은 다행히 서해안에서 소멸되어 피해는 적었다. 비는 그쳤으나 잔뜩 흐리고 바람이 세게 부는 속에서 삼성산에 올랐다. 아내가 동행했다. 이번 산행의 들머리는 삼성산 성지였다. 이곳은 1839년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앵베르, 모방, 샤스탕 신부의 유해가 모셔졌던 곳이다. 이분들은 교우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스스로 관가에 나가 자수하여 신앙을 고백하고 군문효수형을 받았다. 유해는 20여 일간 새남터 모래사장에 버려져 있다가 뒤에 이곳에 안장되었다. 현재 세 신부의 유해는 명동성당 지하묘지에 옮겨져 있지만, 1984 년 세 분이 시성되자 이곳은 성지로 만들어졌다. 성지는 세 분의 무덤을 중심으로 간소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아래에는 큰 수련..

사진속일상 2008.07.22

대모산과 구룡산길을 걷다

집이든 직장이든 예전에 살던 곳을 다시 찾게 되는 일은 쉽지 않다. 옛 장소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던 그렇지 않던 세월의 무상함을 상기시켜 준다. 그래선지 옛 장소에 가면 쓸쓸함과 아쉬움 같은 것, 삶 뒤켠의 허전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누구나 젊었을 때의 꿈과 치기를 다시 기억해내는 데 대한 어색함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은 또 다른 나를 대면하기가 두려운 때문인지도 모른다. 대모산은 내 인생의 중심이었던 삼사십대 시기에 가장 가까이 했던 산이었다. 서울의 남쪽에 있는 대모산과 구룡산은 해발 300 m 정도의 아담한 산으로가볍게 산길을 걷기에 아주 적당하다. 두 산은 능선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쉼없이 걷는다면 두 시간 정도면 두 산을 종주할 수 있다. 불현듯 옛 생각이 나서 아내와 같이 전철을 타고..

사진속일상 2008.07.12

동작동에서 삼성동까지 걷다

사월 초파일 휴일, 오늘은 한강길을 걸었다. 아침에 아내와 함께 집에서 나와 뒷산으로 해서 국립현충원을 지나 한강에 나갔다. 거기서부터 둔치길을 따라 영동대교까지 간 다음에 다시 시내로 들어가 경기고와 봉은사, 삼릉공원을 차례로 들린 후 선릉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걸은 시간 : 9:00 - 15:30 걸은 거리 : 약 17 km 걸은 경로 : 동작동 - 국립현충원 - 한강(동작대교 - 반포대교 - 한남대교 - 동호대교 - 성수대교 - 영동대교) - - 경기고 - 봉은사 - 삼릉공원 - 선릉역 - 동작동 아무래도 난 걷기 열병에 걸린 것 같다. 3 일간의 연휴를 전부 걷기에 바쳤다. 첫째 날은 북한산, 둘째 날은 우면산, 그리고 오늘은 한강 둔치길을 걸었다. 첫째날은 동료와 함..

사진속일상 2008.05.12

봄의 남산길을 산책하다

봄의 절정이 지나고 있다. 봄이 찾아온지 엊그제 같은데 인생의 황혼처럼 봄은 서둘러 떠나가고 있다. 서울 지역의 벚꽃 축제도 이번 주말이 마지막이다. 봄은 어느 순간에 찾아왔다가 잠깐 한 눈 파는 사이에 이미 우리 곁을 떠나간다. 가슴에 뜨거운 연정만 불질러 놓고 약 올리며 봄은 떠나간다. 봄꽃에 걸신이 들린 듯 오늘은 남산으로 나갔다. 찬란한 꽃잔치에 취하면 쓰디쓴 세상사는 잠시 잊는다. 그것이 짧은 순간의 마취제에 불과한 걸 잘 알지만 봄의 마력 앞에서는 누구나 마술에 걸릴 수밖에 없다. 마술이 풀리면 더 외롭고 쓸쓸해질 지라도 누구나 그 마법에 걸리고 싶어한다. 봄은 위대한 마술사다. 남산길에 차량 통행이 금지된 후 북쪽 순환로 일부만 걸어보았지만 전 구간을 걸어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후암동 ..

사진속일상 2008.04.13

수암봉에 오르다

변산아씨를 만나러 아내와 같이 수리산을 찾아갔다. 그러나 변산아씨는 빗장을 꼭 잠그고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면서 그 고운 자태를 숨기고만 있었다.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려 수암봉에 올랐다. 제 3 산림욕장에서 시작하여 네거리 쉼터를 거쳐 수암봉에 오른 뒤 삼거리를 지나 담배촌으로 내려왔다. 약 두 시간여의 산행 중 수암봉에서 삼거리까지의 능선길이 제일 좋았다. 인적이 드문 산길을 걸을 때만큼 행복할 때도 없다. 살아있다는 존재감에 절로 감사하고 행복해지는 때다. 무엇을 가지고 못 가지고는 별로 의미가 없다. 내가 지금 이 순간 이 자리에 존재한다는 사실, 뭇 생명들과 함께 숨을 쉬고 보고 느끼며 걸어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기적 같고 그지없이 고마운 일로 받아들여진다. 조용하고 ..

사진속일상 2008.03.01

동작에서 선유도까지 걷다

동작에서 선유도까지 걷다[11:50 - 16:20, 약 15 km]. 오늘 한강길 걷기에는 아내가 동행했다. 동작 하류 방향은 아내로서는 첫길이기 때문에 의미가 있었다. 더우기 평소에 가보고 싶어하던 여의도공원과 선유도가 모두 포함되어 있어 더욱 좋았다. 11:50, 집을 출발하다. 12:40, 한강 동작지구에 도착하다. 13:10, 한강철교를 지나다. 걷는다는 것은 심리적 중화효과가 있다. 걷기를 통해 사람의 감정은 중화되고 순화된다. 기쁜 일이 있어도 지나치게 기뻐해서만 할 일도 아니라는 것을, 마찬가지로 슬픈 일이 있어도 크게 슬퍼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걷다 보면 자연히 느껴지게 된다. 또한 세상 살다 보면 생기는 서운한 감정도 마찬가지다. 서운했던 사람과 같이 말없이 걸어 보라. 서운했던 감정은 ..

사진속일상 2008.02.09

집 장만 작전에 들어가다

아내와의 사이에서 제일 큰 갈등은 집 문제로 인한 의견 차이다. 아내는 우리 소유의 집이 없으면 불안해서 못 살겠다고 한다. 반면에 나는 세상을 좀 거슬러 살아보자는 주장이다. 이왕 버린 몸, 떳떳하고 당당하게라도 살아가자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아내는 점점 집값은 뛰는데 이러다가는내 집을 가져 보지 못하는 게 아닌가 걱정한다. 아이들은 출가할 때가 되었는데 사돈댁에 집도 없는 처지로 보이는 것은 싫다는 말도 한다. 아내의 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은 알지만 그동안 내가 옳다고 믿고 살아온 신념 때문에 나는 선뜻 동의하기가 어려웠다.서울 같은 도시에서 집을 소유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도덕하게 느낀 적도 있었다. 반면에 아내는 평범하고 상식적인 사고를 갖고 있다. 이런 두 사람의 가치관 차이로 인해수 년간 팽..

사진속일상 2008.01.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