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봄의 남산길을 산책하다

샌. 2008. 4. 13. 19:21



봄의 절정이 지나고 있다. 봄이 찾아온지 엊그제 같은데 인생의 황혼처럼 봄은 서둘러 떠나가고 있다. 서울 지역의 벚꽃 축제도 이번 주말이 마지막이다. 봄은 어느 순간에 찾아왔다가 잠깐 한 눈 파는 사이에 이미 우리 곁을 떠나간다. 가슴에 뜨거운 연정만 불질러 놓고 약 올리며 봄은 떠나간다.

 

봄꽃에 걸신이 들린 듯 오늘은 남산으로 나갔다. 찬란한 꽃잔치에 취하면 쓰디쓴 세상사는 잠시 잊는다. 그것이 짧은 순간의 마취제에 불과한 걸 잘 알지만 봄의 마력 앞에서는 누구나 마술에 걸릴 수밖에 없다. 마술이 풀리면 더 외롭고 쓸쓸해질 지라도 누구나 그 마법에 걸리고 싶어한다. 봄은 위대한 마술사다.

 

남산길에 차량 통행이 금지된 후 북쪽 순환로 일부만 걸어보았지만 전 구간을 걸어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후암동 남산도서관에서 시작하여 N 타워가지 오른 후 남쪽 순환로와 북쪽 순환로를 거쳐 한옥마을로 내려왔다. 순환로는 온통 막바지의 화려한 벚꽃 잔치였다.

 



후암동에서 순환로로 들어서는 입구.

 



남쪽 순환로를 내려가다 본 N 타워와 남산.

 



북쪽 순환로의 벚꽃 떨어진 길.

 



'남산 위의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애국가의 가사 때문에 남산 하면 누구나 소나무가 연상될 것이다. 그러나 남산의 소나무는 대부분 다 사라지고 일부 지역에서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한양 도성의 상징으로 남산의 소나무는 엄격하게 보호되었다고 한다. 그러나일제 시대부터의 남벌과 전쟁을 거치면서 소나무는 사라지기 시작했다. 최근에 들어서 소나무를 살리고 보호하기 위한 사업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남산길에 들기 전에 남산 자락에 있는 후암동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오래된 옛 집들이 그대로 남아있는 마을답게 미사분위기는 경건하고 묵직했다.

 

후암동은 나에게 첫 서울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쯤이었을까, 외할머니 따라 서울 친척집에 다니러 왔는데 거기가 후암동이었다.아마 잔치가 있었던 것 같다. 집에는 사람들로 북적되었고, 나는 2층으로 연결되는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한 바탕 소동을 부렸던 기억이 흐릿하게 난다.

 


 

오늘은 성소주일이었는데 신부님의 강론에서 수도자로 성공하는 조건으로'감사'와 '기쁨'을 들었다. 그러나 꼭 수도자들만이랴, 살아있는 영혼에서는 늘 '감사'와 '기쁨'의 곡조가 울리고 있을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는 산에서 따온 진달래로 화전을 만들어 먹었다. 막걸리 두 사발을 마시니 정신이 몽롱해졌다. 내 쉰여섯 번째 봄날은 그렇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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