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어느 봄날 오후

샌. 2008. 4. 11. 20:48



어느새 봄은 우리들 가운데로 들어왔다. 한낮에는 양복이 답답할 정도로 기온도 올라갔다. 이곳저곳에서 꽃 축제가 한창이다. 우리 동네로 들어오는 작은 길에서도 벚꽃 축제가 열렸다. 바야흐로 축제의 계절이다. 얼굴을 간지리는 따스한 햇살, 움터 나오는 연초록의 나뭇잎들, 봄기운에 들뜬 당신의 마음 속에 봄은 들어있다.

 

일찍 퇴근하며 걸어서 광화문을 거쳐 시청 앞까지 걸었다. 운동장에 서면 옆의 산이 막 부르는 듯 하다고, 그래서 오늘은 인왕산을 넘어서 집으로 가겠다고 하던 동료도 지금은 산길을 걷고 있을 것이다. 말 없이 꽃잎을 건네주던 동료도 지금은 꽃길을 찾아 걷고 있을지 모른다. 하는 일 없이 사무실에 남아 있기에는 봄날의 오후는 너무나 설렌다.

 

시청 앞에는 분수가 물을 뿜어올리고, 철없는 아이들은 벌써 물 속을 뛰어다니며 장난을 치고 있다. 녹색 잔디 위에는 봄햇살을 즐기는 사람들이 자리 잡았다. 한 켠에서는 튜립 전시회도 열리고 있다. 생명의 약동이 한 눈에 느껴지는 풍경이다. 아마 보는 사람이 없었다면 나도 저 물 속으로 뛰어들고, 잔디밭에서 뒹굴었을지 모른다.

 



덕수궁에 들어서니 풍경은 일변하고 소란스런 도심의 소음도 사라졌다. 고궁의 봄을 즐기러 나온 사람들의 느릿느릿한 걸음들이 여유 있어서 좋았다. 벚꽃으로 인해 길은 화사하고 환했다. 벚나무 가지 사이로 비치는 오후의 양광이 또한 곱고 부드러웠다.

 



오래된 수양벚나무 한 그루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꽃을 보면 만지고 싶고, 향기를 맡고 싶은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인가 보다. 남녀를 불문하고 꽃에 대한 사람들의 특별한 애착은 무척 신기하다. 어떤 악인이더라도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꽃에 이끌리고 꽃을 사랑하는 사람의 공통된 본성에는 뭔가 알려지지 않은 깊은 의미가 숨어있을 것만 같다.

 



미술관 앞에는멋진 명자나무한 그루가 있었다. 불타는 정열을 아낌없이 저렇게 표현하는 명자나무가 어떨 때는 부러울 때가 있다. 이 명자나무는 색감도 이쁘고, 꽃의 크기도 작고 소담스러워 무척 예뻤다.

 



제비꽃 종류 중에서 원예용으로 기르는 것이 이 미국제비꽃이다. 이름 그대로 미국에서 건너온 것인데, 인공적으로 가꾼 화단에서 많이 볼 수 있다.덕수궁 같은 고궁에서는 가능하면 우리꽃을 심었으면 하는 희망사항이 나만의 바람은 아닐 것이다.

 

짧은 고궁 산책이었지만 예쁜 꽃들을 만나볼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고궁의 꽃들은 분위기 탓인지 색다른 맛이 느껴진다.새로운 꽃을 찾아가는 여행도 좋지만, 이렇게 내 주위에 가까이 있는 꽃들을 다시 만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어떤 꽃과의 만남이라도 그 시간 그 장소는 유일한 것이고, 첫 눈맞춤의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봄이 화려하면 화려할수록 이 시대의 먹구름이 점점 더 어둡게 다가오는 예감에 사로잡힌다. 봄을 봄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불안감이 마음 속에서 자라고 있다. 봄은 예대로 여전하고, 새싹은 흙을 뚫고 돋아나지만 뭔가 두려움의 기운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듯한 느낌에 흠칫 놀라기도 한다.

 

그래도...

봄은 봄이다. 이 때만은 모든 것을 잊기로 한다. 즐거운 방관자가 되기로 한다. 봄의 축제에 맘껏 동참하기로 한다.

 

'평생에 이런 봄 백 번쯤 온답디까?

그러니 봄기운에

그냥 몸을 맡기지 않으시렵니까?

그냥 봄잠에 취해보지 않으시렵니까?...'

 


'사진속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의 남산길을 산책하다  (2) 2008.04.13
동작동의 봄  (0) 2008.04.12
용마산과 아차산길을 걷다  (2) 2008.04.09
청계천을 거쳐 서울숲까지 걷다  (3) 2008.04.06
평화가 너희와 함께  (6) 2008.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