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일은 일요일이 주는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오늘은 흑석동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한 시간 삼십 분 가량 산길과 국립현충원 경내를 경유하면서 걸었다.
어제 내린 봄비로 산길은 촉촉하고 더욱 폭신해졌다. 꼬불꼬불 이어지고 갈라지는 뒷산길은 산책하기에 적당하다. 얕은 산이 옆으로 길게 뻗어있는데 그 능선을 따라난 산길은 아기자기한 맛이 있다. 어떤 곳은 길이 아주 예뻐 돌아가게 되지만 어쩔 수 없이 그 길로 들게 된다. 부드러운 산길을 걷는 기쁨은 그 무엇에도 비할 바가 없다.
날나리 신자여서인지는 몰라도 미사에 대한 집중도는 나로서는 성당의 분위기에 따라 확연히 달라진다. 이 동네로 이사를 오면서 제일 유감이었던 것이 본당의 분위기가 너무나 어수선하고 산만하다는 것이었다. 더구나 신부님의 언설이 더욱 그러함을 자극했다. 그래서 본당보다는 이웃 성당으로 미사를 가는 일이 잦다.
오늘 처음 가 본 흑석동성당은 차분하고 경건했다. 우선 성당터와 내부가 넓어서 좌석이나 움직임에 여유가 있으니 한결 편안한 분위기였다. 오랜만에 진지한 가운데서 미사를 드릴 수 있었다. 흑석동성당은 제대 뒷면을 전체적으로 덮은 모자이크 성화가 인상적이었다.
앞으로 몇 년간 서울에 있을지 모르지만 그 동안이라도 가능하면 서울 소재의 성당들을 순례하며 미사를 드리고 싶다. 아무래도 한 군데 정착을 하지 못하는 것은 내 타고난 습성인 듯 하다. 나에게는 물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계속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제자들은 유대인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 서시며 ,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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