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갈매기'가 이틀간 200 mm 가까운 비를 뿌렸다. 태풍은 다행히 서해안에서 소멸되어 피해는 적었다. 비는 그쳤으나 잔뜩 흐리고 바람이 세게 부는 속에서 삼성산에 올랐다. 아내가 동행했다.
이번 산행의 들머리는 삼성산 성지였다. 이곳은 1839년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한 앵베르, 모방, 샤스탕 신부의 유해가 모셔졌던 곳이다. 이분들은 교우들의 희생을 줄이기 위해 스스로 관가에 나가 자수하여 신앙을 고백하고 군문효수형을 받았다. 유해는 20여 일간 새남터 모래사장에 버려져 있다가 뒤에 이곳에 안장되었다. 현재 세 신부의 유해는 명동성당 지하묘지에 옮겨져 있지만, 1984 년 세 분이 시성되자 이곳은 성지로 만들어졌다.
성지는 세 분의 무덤을 중심으로 간소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아래에는 큰 수련원 건물이 있지만, 이곳은 산의 나무들을 그대로 두면서 작은 기념물들을 세워놓아서 좋았다. 천주교 신자 두 분이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 때문에 분위기는 더욱 경건하게 느껴졌다.
삼성산의 한 봉우리인 호암산으로 오르는 길은 가팔랐다. 그러나 시원한 산바람이 불어서 힘들지는 않았다. 고도 400여 m를 단숨에 올랐다. 호암산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시원했다. 태풍이 지나간 뒤여선지 멀리 서해 바다까지 훤히 내려다보였다.
암벽의 벼랑 끝에서 자라고 있는 멋진 소나무를 만났다. 바위 사이로 뿌리를 내리고 비스듬히 기울어진 채 삿갓처럼 날개를 펼친 모습이 단정하며 날렵했다.
삼성산 정상 부근에서 바라본 서쪽 풍경이다. 짙은 구름이 덮은 하늘 아래 멀리 서해 바다가 보였다. 멀리만 느껴지던 바다가 산에 오르면 굉장히 가까워 보인다.
하산길에서 원추리를 만났다. 높은 산에서 홀로 자라는 원추리는 맑고도 당당한 기품이 있다. 원추리는 왕원추리에 비해서 색깔이 그윽하며 고와 우리들 정서에 맞는 꽃이다.그러나 도시의 화단에서는 무슨 이유에선지 대부분 왕원추리를 많이 심었다.
일부러 망월암으로 해서 길게 돌아가는 길을 택해 내려왔다. 처음 걷는 길이었는데 계곡을 따라난 길이 빗물에흔적이사라져 찾는데 애를 먹었다. 오가는 사람 조차 없는 외진 길이어서 두렵기도 했다. 그러나 인적 끊어진 계곡의 우렁찬 물소리와 나무를 뒤흔드는 바람은 속세에 찌든 마음을 씻어내기에 충분했다.
망월암은 분위기로 보아 사람이 상주하지 않는 암자인 것 같았다. 뜰에 있는 소나무 고사목이 눈길을 끌었는데, 살아있었을 때의 멋진 자태가 연상되어아쉬움이 컸다. 소나무의 쇠락과 암자의 퇴락은 서로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라갈 때보다 내려올 때가 시간도 더 많이 걸리고 힘들었다. 그러나 몸은 피곤해도 마음은 상쾌하고 뿌듯한 것은 산행이 주는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 산행 시간; 13:00 - 17:30
- 산행 경로 ; 삼성산성지 - 호암산 - 국기봉 - 삼성산 - 망월암 - 무너미고개 - 서울대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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