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다 보면 목표한 곳과는 다르게 엉뚱한 곳에 가게 되는 수가 있다. 길을 잘못 들어 그럴 수도 있고, 길이 막혀 가지 못하게 되어 그럴 때도 있다. 오늘은 합정동에서부터 한강의 하류 방향으로걸어서 행주대교를 건넌 후, 반대편에서 거슬러 올라 선유도까지 걸을 계획이었으나 도중에 길이 막히는 바람에 생각지도 않았던 화전으로 가게 되었다. 덕분에 낯선 동네에 들리는 경험을 했다. 이럴 때가 아니면 언제 화전이라는 마을에 가볼 수가 있단 말인가, 그러고 보면 모든 게 인연 아닌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전철 합정역에서 내려 한강으로 나가는 길머리에 있는 절두산 성지에 들렀다. 이곳은 예전에 양화진(楊花鎭)이라 불린 곳으로 1866 년 병인박해 때 수천 명의 신자들이 목이 베어져 한강으로 던져진 순교의 현장이다. 그래서 그 이후부터는 이름이 목이 잘려졌다는 뜻의 절두산(切頭山)으로 불리고 있다. 이번에는 순교박물관을 한 시간 정도 꼼꼼히 살펴 보았다.
성지 뜰에 있는 빨마 가지를 든 예수상이 부드럽고 포근했다. 순교 성지는 참혹한 과거 때문에 왠지 마음이 굳어지기 쉽다. 그러나 이 예수님은 따스한 미소를 머금고 계서 한결 마음이 풀어지는 느낌이었다.
한강 하류쪽으로 갈 수록 둔치는 넓어지고 길은 여유가 있다. 또 식물들도 자연 상태 그대로 보존된 경우가 많다. 그만큼 인구밀도가 높은 시내에서 먼 탓일 것이다.
경기도 고양의 난지지구로 접어드니 둔치는 너른 벌판으로 변했다. 시야가 트이니 마음도 따라 펴지는 것 같다. 길도 넓고 흙길이어서 더욱 좋았다.
풀밭에는 노란 마타리가 벌써 나타났다.
여름의 뜨거운 정열을 나타내는 참나리도 한껏 화려하게 피었다. 꽃잎을 뒤로 발랑 젖힌 모습이 도도하기도 하고 요염하기도 하다.
홑왕원추리 꽃밭도 있다.
이것이 한강의 자연스런 모습이다. 모래톱이 자연스레 형성되어 있고, 그 사이로 물줄기가 여러 갈래로 갈라져 흐른다. 1960 년대에 찍은 한강 사진을 보니 절두산 앞 한강에는 섬이 있었고 그 안에 집들도 보였다. 그런데 한강 개발 사업을 하며 한강의 그런 섬들은 모두 없어졌다. 앞으로는 남아 있는 것만이라도 자연 그대로 보존되기를 희망한다.
새로 건설되고 있는 다리 아래로 흰색, 보라색, 노란색 꽃잔치가 벌어졌다.
양화대교, 성산대교, 가양대교를 거쳐 이곳 방화대교에까지 이르렀다. 바로 맞은편이 행주산성인데 한강으로 흘러드는 하천 때문에 건너갈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은 이곳 다리 아래서 휴식을 취하다가 되돌아간다.나는 하천을 따라 난 길을 따라 계속 걸었다. 그러나 산성으로 건너가는 다리는 종내 나타나지 않았다.
구름이 끼어 있어 걷기에 좋던 날씨가 이때부터 따가운 햇볕이 사정없이 내리쬐었다. 밑에서 올라오는 지열로 몸은땀으로 흥건해졌다. 뒤돌아보면 저 멀리 행주산성이 보이는데 아무리 걸어도 동네는 커녕 쉬어갈 그늘막 조차 나오지 않았다.많이 걸은 편이 아닌데도 날씨 탓으로 쉽게 지쳤다. 간간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을 뿐, 걷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만날 수 없었다.
드디어 화전에 도착했다. 목이 타고 배가 고픈 차에 화전역 앞 국수집에서 먹은 열무국수가 무척 시원하고 맛있었다. 서울에서 일산으로 가는 통로에 있는 화전은 건물이나 가게 간판이 아직도 6, 70년대식이어서 이채로웠다. 서울 인근에 아직도 이런 분위기의 거리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면서도 정겹게 느껴졌다.
여름의 따가운 햇살은 앞으로도 걷는데 하나의 도전이 될 것 같다. 무리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피해 다니지도 않을 것이다. 화전에서 버스를 타니 서울역에 30 분이 채 안 걸려 도착했다.
- 걸은 경로 ; 합정역 - 절두산성지 - 양화대교 - 성산대교 - 가양대교 - 방화대교 - 화전
- 걸은 거리 ; 15 km
- 걸은 시간 ; 4 시간(11:30 - 15:30)
'사진속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철산에서 금정까지 안양천을 따라 걷다 (0) | 2008.07.27 |
---|---|
중랑천을 따라 응봉에서 노원까지 걷다 (0) | 2008.07.24 |
태풍 뒤의 삼성산에 오르다 (0) | 2008.07.22 |
2008 여름 직원 여행 (0) | 2008.07.20 |
경복궁 버즘나무길 (0) | 2008.07.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