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기를 마치며 80 명의 직원들이 남원과 무주 지역으로 나들이를 다녀왔다. 밥벌이의 일에서 벗어나는 것은 누구에게나 즐겁고 홀가분한 것이리라. 얼굴 표정이 모두들 밝고 환했다.
7/18(금) 10:00 서울 출발 - 점심(이천 지원쌀밥집) - 이동(중부, 경부, 대진, 88고속도로 경유) - 16:00 실상사 - 18:00 광한루와 춘향테마파크 - 저녁(수목한우촌)
7/19(토) 09:00 아침(새집추어탕) - 11:00 무주리조트 향적봉 등반 - 점심(무주구천동 전주식당) - 14:30 출발(88, 대진, 경부고속도로 경유) - 18:00 서울 도착
내려가며 맨 처음찾은 곳이 실상사였다. 15 년 전에 당시 직장 동료들과 지리산 등반을 하고 이곳에 들린 적이 있었다. 절은 평지에 자리잡고 있는 점이 특이했는데 거창한 불사를 하지 않은 소담한 모습이 좋았다. 도법 스님이 계시는 이곳이 불교 환경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어서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유명한 실상사 석장승 중의 하나인데, 절로 건너가는 다리 입구에 있다. 지금은 넓은 시멘트 다리가 놓여 있는데, 예전에는 개울의 징검다리를 건너 절로 들어가게 되어 있어 더욱 운치가 있었다고 한다. 석장승은 현재 세 개가 남아있는데 머리에 모자를 쓰고 둥근 눈에 주먹코가 이색적이다.어찌 보면 제주의 돌하루방과 닮았다. 표정이 익살스럽고 재미있어 서민적 분위기를 풍긴다.
보물 35 호인 실상사 석등은 규모도 크고 아름다웠다. 그리고 석등 앞에 있는 돌계단도 이채로웠다. 쌓은 계단이 아니라 큰 돌을 파서 만든 계단이었다.
경내에 오래된 나무는 별로 없었는데 그 중에서도 이 배롱나무가 특별히 눈에 띄었다.키는 작으나 줄기는 엄청나게 굵어 흐른 세월이 만만찮음을 알 수 있었다.
남원 광한루 역시 오랜만에 들렀다.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때 쯤이니 거의 20 년이 된 것 같다. 그 정도의 세월이면왔다간 기억 외에는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진다. 또 같은 것을 보더라도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져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에 주목하게도 된다. 그러나 단체여행의 단점은 느긋하게 나만의 시간을 즐길 수 없다는 것이다. 30 분 정도 둘러보는 것으로 광한루를 보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광한루 정문을 들어섰을 때 이 팽나무가 가장 먼저 반겨주었다. 명종 재위 무렵에 심어졌다고 하니 약 450 년 정도 된 나무다. 원래는 다른 곳에 있었는데 이곳으로 옮겨 심었다고 안내문에 적혀 있다. 남쪽 지방에서는 마을의 정자나무로 팽나무를 흔히 볼 수 있다고 한다. 이 외에도 광한루에는 그 역사성 만큼이나 오래 된 고목들이 많았다.
여름의 꽃인 배롱나무꽃은 반갑다. 이 꽃이 피면 방학이 되기 때문에 나로서는 봄부터 기다려지는 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이 꽃에는 처연한 그리움이 서려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저녁 식사 후 회식 자리에 잠시 끼였다가 나왔다. 많은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아직도 적응이 안된다. 그래서 기회만 되면 탈출하려고 눈치를 본다. 조금씩 마신 술과 음식도 과했다.마침 남원의 젖줄이라는 요천이 옆에 있어 마음에 맞는 동료와 천변길을 오랫동안 걸었다. 요사이는 어느 도시에서나 시민들 휴식공간으로 천변길이 잘 만들어져 있다.
늦게 자리에 들었는데도일찍눈이 떠졌다. 가만이 옷을 챙겨 입고 홀로 숙소 뒤에 있는 덕음봉에 올랐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아침 산책으로서는 적당한 산이었다. 그러나 정상의 전망대에 올랐을 때는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전망대에서는 동서남북 모든 방향으로 활짝 열려 있었는데 아침의 조망이 장관이었다.
사진의 아래에 보이는 것이 지난 저녁에 들렀던 춘향테마파크인데 춘향을 소재로 해서 관광수입을 올리려는 심정은 이해되지만 외화내빈이랄까,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내용이 없어 실망이었다. 그리고 '춘향테마파크'라는 이름은 또 무엇인가. 차라리 촌스러울 망정 '춘향공원'이 더 나아보인다.
동편으로는 지리산 연봉들이장엄하게 펼쳐져 있었다. 특히 아침 햇살을 받아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은 감동이었다. 시간만 있다면 넋 놓고 몇 시간이고 앉아있고 싶었다.
무주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덕유산에 올랐다. 1600 m 높이를 10여 분만에 올라갔으니 옛날 사람들이 보았다면 축지법이라도 썼다 할 것이다. 구름 사이로 보이는 고사목들이 멋있었다.
곤돌라에서 내려 약 20 분 정도 걸으면 덕유산의 정상인 향적봉에 갈 수 있다. 정상에 서긴 했으나 솔직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 발이 아니라 기계의 힘으로 올라왔으니정상에서의 감격이 같을 수가 없다.역시 땀이 없는 결과는 공허할 수밖에 없다. 정상에 서는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거기에 이르는 과정이라는 걸 다시 배웠다.
정상의 바위 틈에서 자라고 있는 바위채송화를 만났다. 강인한 생명력의 이 식물은 이제 막 노란 꽃을 피우기 시작하고 있었다. 이 외에도 정상 부근 풀밭에서는 여러 종류의 꽃들이피어 있었다. 그러나 바람이 불고 비가 내리는 악조건이어서 꽃을 살피며 사진을 찍을 여유가 없었다.
서울을 비롯한 중부 지방에서는 100 mm 이상의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는데 다행히 이곳은 가는 비가 오락가락할 뿐이었다. 계획대로 야외활동은 지장 없이 할 수 있었다. 무주구천동으로 나와 산채정식으로 점심을 먹었다. 그 후 계곡 산책이 예정되어 있었으나태풍 소식에 사람들 마음이 바빠졌는지 그냥 올라가자는 의견이 많아 산책은 취소되었다. 귀경길은 폭우를 헤치며 달렸다.
전체적으로 즐거운 여행이었으나 단체여행에서 오는 피곤함도 있었다.특히 몸보다는 마음이 더 그랬다. 그것은 사람들과의 어울림에 미숙한 나 자신에 원인이 있다.인생의 한 때에 같은 공간에서 지내는 인연의 지엄함을 생각하면 누구든 반갑고 고마운 사람들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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