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년이라는 짧지 않은 기간을오가며 이 길과도 정이 많이 들었다. 무생물의 사물일지라도 오랫동안 가까이하다 보면 사람처럼 정이 들게 된다. 길도 마찬가지다. 길을 오가며 느꼈던 상념과 추억들이 그 길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는 길에서 느끼는 친근감이 사람보다 덜하다고 할 수 없다. 도리어 사람의 변덕이 없는 은근하고 속 깊은 정을 길에서는 느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길을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그 과정을 통해 나를 만나고 세상을 만나는 것이다.
보통 경복궁 돌담길이라고 하는데, 이 길의 돌담을 따라서는 아름드리 버즘나무가 도열해 있다. 그리고 사이사이에는 은행나무도 함께 자라고 있다. 여름인 지금은 버즘나무 잎들로 나무 터널을 이루고 있어 더욱 시원하고 보기에도 좋다. 이 버즘나무 터널은 따가운 햇볕도 가려주고 어지간한 비도 막아준다.
경복궁 동, 서, 북면이 전부 돌담이지만 나는 그 중에서도 서쪽 길이 가장 좋다. 이 길은 전철 경복궁역에서 청와대로 연결되는데 길이가800여 m에 이른다.보도의 한 쪽은 돌담이고 다른 쪽은 버즘나무가 싱싱하게 자라고 있다. 돌과 나무, 무생물과 생물이 만드는 조화가아름답다.둘은다정한 친구같다. 왕궁의 담이어서인지 너무 높은게 흠이지만 그래도 정갈하게 쌓아올린 돌담은포근하다. 돌은 차가운데 그 돌들이 모여 만들어진 돌담은 따스하고 정겹게 느껴진다. 그래도 돌담보다는 옆에 있는 버즘나무에 나는 더 애착이 간다.그래서 통상 경복궁 돌담길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버즘나무길이라고 애써 바꾸어 부른다.
내가 이 길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호젓하기 때문이다. 청와대를 구경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차로 지나가지 걸어서 가는 사람은 거의 없다. 출퇴근 하며 걸을 때 어떤 때는 한 사람도 마주치지 않는다. 그래서 이 길에 들면 절로편안해지고 날카로웠던 마음도 스르르 풀어진다.이 길은 나를 자연스레 무장해제 시킨다. 가끔 검문에 부딪치는 게 불편하긴 하지만 크게 신경 쓰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요사이는 이 길을 걸으면서 조금씩 서운한 감정이 생긴다.올해가 지나면 이 길과도 헤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길을 가고 사람들과 만나며 헤어지게 되는데, 그 중에서도 특별히 잊혀지지 않는 길이나 사람이 있다. 아마 이 경복궁 버즘나무길도 나에게는 그런 길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그리고 훗날 이 길을 떠올리며 정겨웠으며 애태우기도 했던 사연들과 사람들을 동시에 기억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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