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일주일째 찜통더위가 이어지고 있다. 북태평양고기압의 세력이 이상 팽창하여 장마전선을 북쪽으로 밀어낸 때문이라고 한다. 장마철의 한가운데에서 비를 그리워하다니, 마치 바다 한복판에서 마실 물이 없는 고통과 비슷하다. 우리나라의 여름은 습도가 높아서 더욱 짜증스럽다. 땀이 잘 증발하지 못해서 생기는 끈적거리는 느낌도 불쾌하다. 이런 때는 감정 조절을 잘 해야 한다. 그러나 수양이 부족한 나로서는 자주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마찰이 생기고 내상을 입는다.
어제 저녁에는 서소문을 지나다가 예쁜 노을을 만났다. 빌딩의 실루엣 사이로 펼쳐진 노을은 그 품에 안기고 싶도록 곱고도 따스했다.이 욕망의 땅에서 훌쩍 뛰어올라 저 아름다운 무욕의 공간으로 녹아들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그러나 달콤한 상상은아교처럼 내 발을 붙들고 있는 답답한 현실의 늪을 더욱 확인시켜 줄 뿐이었다. 하늘로 날아오르려 할수록 발은 점점 더 늪속으로 빠져들다니 묘한 일이다.
인간에 대한 예의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이웃에 대한 배려나 염치가 사라진 세상은 지옥에 다름 아니다. 세상은 점점 영혼이 없는 좀비들이 활개를 치는 무대로 변하고 있다. 그러나 누굴 탓하랴. 나 역시 체제에 기생하며 단맛을 몰래즐기는 속물에 다름 아닌 것을. 노을은 눈을 멀게 할 듯지순한 미를 보여주다가는이내 회색톤으로 변했다.아름다운 순간은 짧다. 그러나 너무 낙담은 말자. 회색 도시의 하늘에도 고운 노을이 나타나고, 그리고 그 노을에 감동하는 마음이 있는 한,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믿기로 하자. 그나저나 시원한 비 한줄기가 몹시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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