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394

해미에 다녀오다

수녀님을 모시고 아내와 함께 해미에 다녀왔다. 해미성지(海美聖地)에 가는 게 목적이었지만 해미읍성과 개심사도 들러보는 봄소풍이 되었다. 어제 내린 비는 그쳤지만 바람이 몹시 센 날씨였다. 해미 지역은 거의 10년 만에 다시 찾아간 셈이다. 전보다 모든 곳이 깔끔하게단장되어 있었다. 읍성 안도 마찬가지였다. 그중에서도 노란 유채꽃밭이 인상적이었다. 박해 시대 때 이곳 해미에서만 1천 명 가까운신자들이 순교를 했다. 산 채로 둠벙에 밀어넣고는생매장을 했다. 그런 비극의 현장에 해미성지가 위치하고있다. 십자가의 길 14처를 돌았다. 이곳을 '여숫골'이라 부르는 것은 '예수 마리아'라고 하는 신자들의 기도 소리를 '여수 머리'라고 잘못 알아들은 주민들에 의해 그대로 지명으로 되었다고 한다. "그렇고 말고. 기쁜..

사진속일상 2012.04.26

겨울 동해안 여행(3)

영덕에서두 시간 넘게 달려 정동진에 닿았다. 옛날과 달리 길은 4차선으로 넓게 만들어져 있었다. 아주 오래 전에 이 길을 갈 때는 해안을 따라 가는 2차선 도로였다. 빨리 편하게 이동하긴 하지만 옛길의 낭만은 사라졌다. 불편했던 그 시절이 그리워지는 건 단지 나이가 들어서만은 아닐 것이다. 정동진에서는 어디서나 보이는 산 위에 있는 큰 배(썬크루즈 리조트)를 찾아갔다. 평일이라서 일박에 7만 원으로 들 수 있었다. 위치가 높아서 전망이 환해 정동진이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다음 날, 9층 전망대에 나가서 일출을 보았다. 구름 사이로 해가 살포시 얼굴을 보였다가 사라졌다. 다행히 날씨는 많이 풀어졌다. 늦게까지 침대에서 빈둥거리다 나왔다. 불면증이 있는 아내는 잠자리가 바뀐 탓인지 이틀 연속 숙면을 취하..

사진속일상 2012.02.11

겨울 동해안 여행(2)

포항 내연산(內延山) 보경사(寶鏡寺)는 신라 진평왕 25년(602년)에 지명법사(智明法師)가 중국에서 불경과 보경을 가지고 와서 못에 묻고 지은 절이라 하여 보경사로 이름했다고 한다. 우선 절로 들어가는 길의 솔숲이 인상적이었다. 절 뒤 원진국사 부도 가는 길도 좋았다. 200m 정도 되는 짧은 길이지만 솔숲 사이로 난 길이 예뻤다. 뒤에서 바라보는 보경사의 품이 포근했다. 그중에서도 보경사에서부터 내연산으로 이어지는 내연산 계곡길이 제일 좋았다. 계곡을 따라 열두 폭포가 이어지는데 경치도 경치려니와 걷는 길이 아주 편안하면서 아기자기했다. 연산폭포까지 다녀오는데 두 시간이 걸렸다. 첫번 째 만나는 상생폭포(相生瀑布)다. 옛 이름은쌍폭(雙瀑)이다. 양쪽으로 갈라져 사이 좋게 흘러내리는 모습이 충분히 연상..

사진속일상 2012.02.11

겨울 동해안 여행(1)

2월 8일, 포항 과메기와 영덕 대게를 현지에서 맛보기 위해 아내와 길을 떠났다. 중부, 영동,중앙내륙,경부, 대구-포항 고속도로를 지나는 긴 길이었다. 또다시 찾아온 혹한의 추운 날이었다. 남쪽으로 내려가도 계속 영하의 기온이었고, 바람이 차갑고 세찼다. 이왕 포항까지 내려간 길에 동해안을 따라 강릉으로 올라오며 대관령에서 눈도 구경하기로 했다. 날씨만 좋다면 선자령 길도 걸어볼 예정이었다. 자연스레 2박 3일의 동해안 여행길이 되었다. 고속도로의 종점인 포항나들목을 통과해 시내를 지나 호미곶을 찾아갔다. 오랜만에 동해와 다시 만났다. 겨울이어선지 바다 색깔은 더욱 짙푸르렀다. 왼쪽으로 바다를 끼고 호미곶으로 향하는 북부 해안도로는 드라이브 길로 최고였다. 길은 꼬불거리며 마을과 들을 지나고 바다는 계..

사진속일상 2012.02.11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

아내는 불면증을앓고 있다. 4년 전 뇌수술을 받은 뒤 더 심해졌고, 작년에 딸을 시집보낸 전후로는 거의 잠을 자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나빴다. 그때는 수면제도 약발이 듣지 않았다. 밤을 꼬박 새우는 날이 흔했다. 본인의 고통이야 말할 필요가 없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심정도 무척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다행히 해가 바뀌면서 요사이는 상태가 많이 나아졌다. 이젠 가끔 수면제를 이용할 뿐 전에 비하면 수월하게 잠이 드는 편이다. 그래도 두세 시까지는 침대와 거실을 왔다갔다한다. 잠드는 게 전쟁이다. 반면에 나는 잠이 너무 많다. 하루에 아홉 시간 넘게 잠을 잔다. 나이가 들면 새벽잠이 없어진다는데 나는 아침 여덟 시가 넘어야 눈을 뜬다. 아내가 자야 할 잠을 내가 다 뺏어온 것 같다. 어제는 저녁 운동을 다녀온..

길위의단상 2012.02.02

2012 설날

아이들이 떠난 올 설은 단촐했다. 어머니를 포함해 넷이서 차례를 지냈다. 설 전날 오전에 일찌감치 차례 준비를 마치고 오후에는 햇빛바라기를 하며 마당에서 강아지와 놀았다. 떡국을 먹다가 아내는 눈물바람을 했다. 귀하게 키워서 남의 집에 주었다고 어머니도 한 소리 거들었다. 공주 대접 받고 있을 텐데 뭘 그러느냐, 했지만 내 마음도 한 쪽이 슬펐다. 광주에 돌아오니 딸과 사위가 세배를 왔다. 고향에서는 자식이 되었다가, 내 집에서는 부모가 된다. 통영에 다녀온 둘째는 싱싱한 해산물을 사 가지고 왔다. 스티로폼 박스에 담긴 대구가 엄청 컸다. 자식들은 떠나갔고 다시 둘이 남았다. 집은 잠시 적막에 잠긴다. 쓸쓸한 듯, 흐뭇한 듯, 집안에 묘한 기운이 감돈다. 이 또한 삶이 노년에 주는 새로운 맛이고 선물이 ..

사진속일상 2012.01.24

설봉산에 오르고 온천욕을 하다

이천에 있는 설봉산(雪峯山)은 따스한 추억이 있는 산이다. 갑자기 그곳에 다시 가고 싶어졌다. 오후가 되어서야 아내와 집을 나섰다. 이런 게 백수의 좋은 점이다. 마음만 먹으면 어느 때라도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다. 산 아래 있는 설봉공원은 예전과 달리 깔끔하게 단장되었다. 건물도 많이 들어섰다. 너무 많이 변해 전에 올랐던 입구는 찾지를 못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오른쪽 길을 따라 산에 들었다. 설봉산 산림욕장이라는 나무문을 지났다. 호암약수터를 지나 능선에 오르면 설봉산성(雪峯山城)이 나타난다. 유물로 볼 때 삼국시대 백제의 석성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산성 둘레는 약 1km이고, 칼바위 부근에 장대 건물터도 발견되었다. 두 개의 판석이 마치 날카로운 칼처럼 생겼다. 칼바위 부근에 있는 소나..

사진속일상 2012.01.10

고향에서 김장을 하다

고향에 내려가서 김장을 했다. 제사를 지내듯 매년 벌어지는 연례행사다. 함께 김장을 하며 한가족이라는 동질감을 확인하지만 힘들고 번거롭기도 하다. 몇 년 전부터는 이제 각자 알아서 하자는 쪽으로 얘기가 나오고 있다. 올해는 동생들이 오지 않았다. 어머니와 이모가 김장할 준비는 모두 갖춰 놓았다. 여든 내외의 두 분이 배추 100포기를 일주일에 걸쳐 준비하셨다. 이게 사람 사는 재미라지만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김장 행사는 올해로 그만두어야겠다고 마음먹게 된다. 힘들면서 돈도 더 든다. 요사이는 주문만 하면 절인 배추가 배달되는 편리한 세상이라고 아내는 강조한다. 이것 역시 변화하는 세상의 추세다. 약을 가져가지 못한 아내는 밤새 잠들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 펑크가 날 정도로 한 차 가득 가을 짐이 실렸다...

사진속일상 2011.11.22

서울 등축제

바야흐로 축제의 나라가 되었다. 전국 방방곡곡에 축제 없는 곳이 없고, 열리지 않는 때도 없다. 그러다 보니 별의별 축제가 다 생겨났다. 내가 사는 동네에는 '아줌마축제'도 열린다. 그만큼 세상이 좋아졌고, 먹고살 만해졌다는 방증이 되는 걸까. 서울에도 얼마 전에 억새축제, 불꽃축제가 열리더니 이번에는 등축제가 시작되었다. 서울에 간 길에 저녁 시간에 맞추어 청계천에 찾아갔다. 사람들 너무 많았다. 밀려들어 가서는 조금 걷다가 밖으로 탈출했다. 지난번에는 김제를 지나다가 우연히 지평선 축제장을 지나게 되었다. 한참을 차에 갇혀 있다가 내려보지도 못하고 되돌아 나온 적이 있었다. 하긴 사람으로 북적대지 않으면 축제라고 할 수 없겠지. 그런데 온갖 축제가 다 생기는 세상이니 '조용한 축제'를 한 번 기획해 ..

사진속일상 2011.11.10

광주 무갑산

광주의 산 답사 다섯 번째는 무갑산을 찾았다. 무갑산(武甲山)은 높이가 578m로 광주에 있는 산치고는 높은 편에 속한다. 또한 외지인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산이 아닐까 싶다. 무갑산이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산세가 갑옷을 입은 무사를 닮았기 때문이라는 설과, 임진왜란 때 무인들이 항복을 거부하고 이 산에 숨어들었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산행 들머리는 무갑사(武甲寺)로 했다. 절 옆으로 등산로가 시작된다. 조금 걸어 들어가면 이내 경사가 급해져 숨이 가빠진다. 정상까지 이르는 길은 짧지만 대신 경사가 급하다. 아내와 동행했는데 유람하듯 걸어서 1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정상에서는 나무들 키가 낮아 사방으로 조망이 훤했다. 그러나 시야가 좋지 않아 멀리까지 보이지는 않았다. 요사이는 아침에 일어나면..

사진속일상 2011.10.11

광한루원에서 널뛰기

하루는 남원 광한루원에 다녀왔다. 이번에는 장모님도 동행했다.딸과 함께 온 것은 20년도 더 되었다. 그때는 딸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에 다닐 때였다. 첫째가다 큰만큼이나 광한루원 안의 나무도 울창해졌다.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첫째는 사진 찍기를 좋아하고 이것저것 탈 것을 좋아하는 게 어린 아이일때와 똑 같았다. 그네를 타고, 널을 뛰고, 형틀에도 묶였다. 첫째 때문에 자주웃을 수 있었다. 나중에는 손주 재롱이 기쁘게 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런데 모녀가 널을 뛰는 모습은 너무 웃겼다. 처음으로 동영상으로 남겨 보았다.

사진속일상 2011.10.05

진도 가족여행

진도로 1박2일의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올 초부터 아이들이 결혼하기 전에 함께 여행을 가길 계획했었지만 서로 일정이 맞지 않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결국 시집간 둘째는 빠지고 첫째만 동행했다. 원래는 울릉도를 생각했지만 장시간 배를 타는데 부담을 느껴서 진도로 결정했다. 진도는 멀었다. 전주에서 가는데도 꼬박 세 시간이 걸렸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진도대교 주변에서는 명량대첩 축제를 하고 있었다. 축제라면 교통 혼잡과 소란스러움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경험한 지자체들의 축제는 대부분 그랬다. 이름에 걸맞는 내용은 없고 그저 시끄러운 장터에 불과했다. 그래서 축제장이라면 아예 피한다. 그러나 차 없는 진도대교를 걸어서 건너볼 기회는 오늘밖에 없었다. 마침 당시의 해전 상황을 재현하는 프로그램도 있었다..

사진속일상 2011.10.04

진천 농다리와 배티성지

아내와 진천으로 가을 나들이를 나갔다. 퇴직한 후 일곱 달이 지났지만 함께 나간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무엇에 그리 바빴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마음 여유가 없었다. 진천 농다리[籠橋]는 중부고속도로를 다닐 때 곁눈질로 보기만 했었다. 언제 한 번 가봐야지 했는데 오늘에야 찾아가게 되었다. 직접 밟아보니 돌로 만든 다리는아주 튼튼했다. 장마가 져도 무너지지 않는다니 얼마나 견고한지 알 수 있다.더구나 고려 초기에 처음 만들어졌다니 천 년의 역사를 가진 다리다. 다리는 길이가 94 m, 폭이 3.6 m다. 그런데 이곳 암석은 검은색과 붉은색을 띄는 게 특이하다. 주변에는 산책로와 쉼터, 꽃밭이 조성되어 있어 이것저것 구경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작은 고개를 넘으면 초평저수지도 나온다. 그러나 산에 ..

사진속일상 2011.09.26

아내와 앵자봉에 오르다

아내와 앵자봉에 올랐다. 오랜만의 햇살이 반가워 산에 들었는데 너무 더웠다. 땀을 엄청 흘렸고 힘들었다. 지지난 주에 환상적인 운무 속을 걸었던 첫 앵자봉 산길이었는데 땡볕 속을 걸으니 산의 느낌이 또 달랐다. 오늘은 주위 전망이 환히 열렸다. 천진암 주차장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라운딩하는데 5시간이나 걸렸다. 몸이 지치니 산길은 가도가도 끝이 없었다. 그 긴 길에서 오늘도 다른 등산객은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이 큰 산을 우리가 전세낸 것 같았다. 대신 노루도 만났고, 너구리(?)도 만났고, 뱀도 만났다. 원래 산의 주인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어반가웠다. 지난 비에 등산로가 많이 패여 나갔다. 사람이 만든 길을 따라 빗물이 모이고 흘러 침식이 잘 일어난다. 나무 뿌리도 밖으로 드러나 어쩔 수 ..

사진속일상 2011.08.05

화려한 외출

아내와 시내 나들이를 나갔다. 음력 정월 스무 날, 한 가지 일이 마무리되고 조금은 어깨가 가벼워졌다. 참치횟집에서 가장 비싼 정식을 시켰다. 언제 이런 걸 먹어보랴, 큰 맘 먹고 사치를 부렸다.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이태리 영화 ‘아이 엠 러브’를 보았다. 치명적인 사랑 이야기였다. 재벌 가문의 귀부인인 엠마는 어느 순간 아들의 친구를 사랑하게 되면서 모든 것에 새롭게 눈을 뜬다. “나는 이제 당신이 알던 내가 아니야.” 그녀의 선택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부와 신분, 어머니의 자리를 내던지고 그녀가 얻은 것이 진정 사랑일까? 판단 유보다. 어찌 되었든 주인공으로 나온 틸다 스윈튼의 연기는 뛰어났다. 덕수궁 돌담길과 경복궁 돌담길을 걸었다. 광화문광장을 지났다. 교보빌딩에 걸린 대형 현수막이 봄을 알..

사진속일상 2011.02.22

산 넘어 산

인생사는 산 넘어 산이다. 한 고비를 넘기면 또 다른 고개가 찾아와 숨을 거칠게 한다. 평탄한 길이 나오는 건 잠시뿐이다. 또한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기도 하다. 하긴 내 마음도 잘 모르겠는데 남의 속을 어찌 알까. 지나가는 바람을 잡으려는 건 내 욕심이다. 어제는 분당에서 일을 보고 아내와 율동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호숫가를 따라산책길이 잘 만들어져 있었다. 사람은 지 福을 타고난다고 옛 어르신들은 종종 말씀하셨다. 사람 사이의 인연에 대해 생각해 보며 쓸쓸하고 착잡했던 오후였다. 길가의 국화빵이 그나마 고소했다.

사진속일상 2011.02.20

북한산 문수봉을 돌아오다

11월 18일, 수능 시험 보는 날이었다. 처음으로 감독이 빠졌다. 주말에는 엄두를 내지 못하는 북한산에 오르기로 했다. 며칠 전에는 첫째가 떨어지는 문짝에 발을 다쳤다. 발가락뼈가 깨질 정도로 큰 부상이었다. 아침에는 병원에 데리고 가 치료 받게 하고 광화문에 있는 직장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 바로 북한산으로 향했다. 가볍게 비봉까지만 다녀오기로 했는데 산에 드니 아내의 걷기 욕심이 또 발동했다. 늘 그렇다. 이왕에 온 것 좀 더 멀리까지 가보고 싶어 한다. 그래서 문수봉으로 방향을 틀었다. 길은 돌과 계단이 많아 좋지 않았다. 천천히 거북이 산행을 했다. 그래도 우리보다 뒤처지는 사람들도 있었다. 햇볕 따스한 대남문 앞에서 도시락을 열었다. 내년에는 이런 시간들이 많아질 것이다. 비봉능선으로 연결..

사진속일상 2010.11.19

하늘재를 걷다

수안보온천 여행 둘째 날, 아침 산책을 나갔다가 수안보성당까지 가게 되었다. 수안보를 한 눈에 내려다보는 산자락에 위치한 성당이 예뻤다. 절로 마음을 여미게 될 만큼 정갈했다.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어수선한 저잣거리를 지나온 탓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강아지도 사진을 찍고 싶은 모양이었다. 성당에 들어설 때부터 꼬리를 치며 반가워하더니 사진을 찍는 옆에서 자기도 포즈를 취했다. 귀엽고 순해 보이는 강아지였다. 아침에는 잔뜩 안개가 끼었다. 집을 떠나면 잠을 설친다. 나이가 들수록 낯선 방에서 잠드는 게 쉽지 않다. 우선 베개가 맞지 않아서 잠자리가 불편하다. 아내는 더하다. 수면제를 먹었지만 내 코 고는 소리에 숙면을 취하지 못했다고 한다. 오늘은 월악산 만수봉에 오르려 했는데 아무래도 무리가 될 ..

사진속일상 2010.10.27

각연사와 연풍성지

각연사는 절에 이르는 길이 아름답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이 마을에서 절까지 3 km 정도 이어진다. 가을이라 단풍이 고왔다. 차를 버리고 걸었다. 조용하고 호젓해서 좋았다. 길과 나란한 계곡에 흐르는 물은 맑고 찼다. 물고기들이 유유자적 노니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충북 괴산에 있는 각연사(覺淵寺)는 신라 법흥왕 2년(515)에 유일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원래 절을 지으려고 했던 곳은 아래쪽 마을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절을 짓는 공사 현장에 까마귀 떼들이 날아들어 나무토막과 대팻밥을 물고는 어디론가 날아가는 것이었다. 스님이 까마귀 떼를 쫓아갔더니 산속 연못위에 대팻밥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연못 안에는 빛이 나는 석불 한 기가 들어있었다고 한다. 스님은 연못을..

사진속일상 2010.10.26

청계산을 넘다

늦더위 기세가 거세다. 전국이 폭염주의보와 경보의 빨간색으로 덮였다. 이럴 때는 집안에 있기보다는 차라리 산에 드는 게 낫다. 베낭을 챙겨 아내와 청계산을 찾았다. 처음에는 산자락을 도는 산림욕로를 걸을 예정이었으나 입구에서 생각이 달라졌다. 이왕이면 청계산을 조금이라도 올라보기로 한 것이다.올라가다 보면 산림욕로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기에 힘들면 그리로 내려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모든 통로가 폐쇄되어 있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청계산을 넘어야 했다. 피서를 겸해 산에 쉬러 갔다가 제대로 된 등산을 한 셈이 되었다. 아내의 체력이 걱정이었지만 잘 버텨주었다. 아내로서는 오늘 산행이 자신을 갖게 되는 의미 있는 걸음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산을 다 내려와서는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들 정도로 에너..

사진속일상 2010.08.20

채석강과 새만금방조제

바다를 보고 싶다는 장모님을 모시고 아내와 함께 서해안으로 하루 나들이를 다녀왔다. 하루 종일 비가 오락가락한 궂은 날씨였다.그러나 바닷물에 뛰어들 나이도 아니니 날씨가 무슨 상관이겠는가. 차라리 여름의 따가운 햇볕보다는 비 내리는 날이 더 좋은 부분도 있다. 장모님은 작년에 수술을 받으시고 몸과 마음이 많이 약해지셨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매우 안타깝다. 아마 아내는 더 할 것이다.어디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시는 분이 아니신데 이번에는 직접 바다를 거명하셨다. 당신은 바닷가에서 하룻밤 지낼 생각까지도 하셨던 것 같다. 그러나 그 소원은 들어 드리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우리 부부도 바닷가에 함께 나온 게 무척 오래 되었다. 아내가 아픈 뒤로는가족 여행을전혀 못했기 때문이다. 이곳 부안 쪽 바다는 아이..

사진속일상 2010.08.17

다시 관악산에 다녀오다

어젯밤에는 바람이 거셌다. 뒷산 나무들이 밤새 우는 소리를 냈다. 산속에서 악에 받쳐 고함을 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선지 답지 않게 잠을 설쳤다. 수없이 잤다 깼다를 반복했다. 비몽사몽간에 이런저런 욕망과 망상에 시달렸다. 전에 없던 일이었다. 집에서부터 서달산, 까치산을 거쳐 관악산까지 이어지는 길을 다시 걸었다. 이번에는 아내가 동행했다. 아기자기한 산길이 무척 좋았다. 우리는 이 길을 '관악산 올레길'이라고 이름 붙였다. 산길을 걷는 아내의 발걸음도 오늘은 가벼웠다. 이제 조금씩 고도를 높으며 도전한다면 관악산 정상에 서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방학 끝 무렵에는 산 정상에 서는 게 목표다.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약간 더 고도를 높인 뒤 관음사를 거쳐 내려왔다. 그래봤자 아직은 산의 3부 능선 쯤..

사진속일상 2010.08.01

부여 궁남지와 낙화암

전주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부여에 들렀다. 아이들이 초등학생이었을 때 부여에 놀러왔던 게 마지막이었으니 벌써 20 년 전의 일이다. 그 전에는 약혼 기념으로 아내와 여행할 때 부여에 들린 적이 있었다. 모두 아득한 옛날이어서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별로 없다. 부여에 들어서면서 부여가 아직 시가 아닌 읍이라는 사실이나로서는 놀라웠다. 백제의 마지막 수도로서 지명도가 높은 고을이니 당연히 시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백제 하면 떠오르는 어떤 쓸쓸하고 애상적인 분위기가 지금의 부여에서도 그대로 느껴진다. 그리고 어쩌면 이런 분위기가 도리어 백제의 옛 수도로서 어울리는 것도 같다. 먼저 궁남지(宮南沚)를 찾았다. 궁남지는 백제 무왕 때 만든 인공호수로 경주 안압지와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궁남지는 아담한 크기..

사진속일상 2010.06.30

까치산공원

투표를 하고 아내와 함께 인근에 있는 까치산공원에 산책을 나갔다. 서울 동작구에 있는 까치산은 집에서 걸어서 30분 정도면 갈 수 있다. 늘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다가 이번에 일부러 찾아가 보았다. 국립현충원이 있는 서달산과 이 까치산이 힌깅과 관악산을 연결하고 있다. 주택가를 조금만 통과하면 숲길을 따라서 한강과 관악산이 만난다. 다음에는 이 녹지축을 따라서 걸어봐야겠다. 오늘은 집에서 삼일공원을 지나 까치산에 이르렀다. 입구에는 동작구 보호수로 지정된 느티나무와 은행나무도 있었다. 산은 일자로 길게 뻗어있는데 완만한 흙길이 걷기에 매우 편했다. 남부순환로를 가로지르는 육교를 지나면 관악산과 바로 이어진다. 오늘은 관악산 아래까지만 갔다가 다시 되돌아왔다. 어느덧 여름이 불쑥 다가왔다. 반팔 차림으로 나..

사진속일상 2010.06.02

장봉도 산길을 걷다

부처님 오신 날, 아내와 함께 서해에 있는 장봉도에 갔다. 영종도 삼목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30분을 가면 만나는 섬이다. 섬을 가로질러 걷는 산길이 좋다고 해서 일부러 찾았다. 휴일이라 복잡할 걸 예상하고 일찍 집을 나섰는데 웬걸, 안개로 배가 두 편이나 결항되었다. 거의 두 시간을 기다려 배를 탔지만 덕분에 사람과 차로 엄청 복잡했다. 섬의 옹암선착장에서 부터 북서로 이어지는 초록의 산길은 좋았다. 그러나 단체 등산객이 있어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느라 많이 피곤했다. 조용한 산속에서 시끄러운 사람 소리는 너무 신경을 거슬리게 한다. 섬의 최고봉인 국사봉을 지나 장봉3리까지 가는데 세 시간 가까이 걸렸다. 길가에서 붓꽃, 조개나물, 흰민들레, 엉겅퀴, 개구리자리, 등대풀 등의 꽃들도 만났다. 낮에는 여름 ..

사진속일상 2010.05.21

아내의 메모

책상 위에 아내가 쓴 메모지가 놓여 있다. 어디에서 옮겨 적었는지 급히 쓴 흔적이 역력하다. 요사이 아내는 몸에 대해 노심초사하며 걱정이 많다. 2 년 전에 큰 수술을 받은 뒤로 아직도 후유증이 가시지 않았는데 또 가슴에 종양이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악성으로 진행되지 않는지 주기적으로 확인을 받아야 한다. 음식과 함께 몸무게에 주의하라는 경고도 의사에게서 받았다. 메모지를 보다가 특히 ‘암’이라는 글자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아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다. 본인은 그것 때문에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할까 싶다. 내 생각 같아서는 병에 대해 너무 신경을 안 쓰는 게 도리어 정신건강에 좋을 것 같은데 아내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옆에서 아무 힘도 되어주지 못하면서 자주 내 생각대로만 타박을 하기 일..

사진속일상 2010.05.14

서울대공원에서 봄향기에 취하다

아내와 함께 가까운 서울대공원으로 나들이를 나갔다. 멀리 가지 않고도 봄 정취를 즐기기에 이만한 곳도 없다. 예년에 비해 개화 시기가 늦어서 벚꽃도 아직 볼 만했다. 오랜만에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에 화창한 봄날이었다. 꽃보다도 더 예쁜 것이 수채화 물감으로 그린 듯한 봄산의 모습이다. 이제 막 돋아나기 시작하는 숲의 나뭇잎들이 만드는 색감은 그 얼마나 귀여운가. 꼬옥 깨물어주고 싶다. 마침 식물원에서 봄꽃 페스티발을 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꽃장식들이 눈길을 끌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들렀는데 건물 중앙에 새로 전시된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밤나무를 소재로 해서 저렇게 완벽한 구형의 고리를 만들었다. 거친 나무가 마치 실크와 같은 부드러운 느낌으로 변했다. 참 재미있는 작품이다. 그런데 작품 제목이 ..

사진속일상 2010.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