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각연사와 연풍성지

샌. 2010. 10. 26. 15:27


각연사는 절에 이르는 길이 아름답다.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갈 수 있는 좁은 길이 마을에서 절까지 3 km 정도 이어진다. 가을이라 단풍이 고왔다. 차를 버리고 걸었다. 조용하고 호젓해서 좋았다. 길과 나란한 계곡에 흐르는 물은 맑고 찼다. 물고기들이 유유자적 노니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충북 괴산에 있는 각연사(覺淵寺)는 신라 법흥왕 2년(515)에 유일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원래 절을 지으려고 했던 곳은 아래쪽 마을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절을 짓는 공사 현장에 까마귀 떼들이 날아들어 나무토막과 대팻밥을 물고는 어디론가 날아가는 것이었다. 스님이 까마귀 떼를 쫓아갔더니 산속 연못위에 대팻밥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그리고 연못 안에는 빛이 나는 석불 한 기가 들어있었다고 한다. 스님은 연못을 메우고 절을 세워 석불을 모셨다. 각연사(覺淵寺)는 ‘깨달음이 연못의 부처님에게서 비롯되었다’(覺有佛於淵)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연못에서 얻은 깨달음이란 내 뜻보다는 하늘의 뜻에 따르라는 가르침이라고 나름대로 해석해 본다. 깨달음이란 내 의지의 포기에서 시작된다. 그런 사람에게 하늘 말씀은 들린다.





아내와 수안보에 온 길에 인근에 있는 각연사에 들렀다. 칠보산 등으로 둘러싸인 각연사에 드니 느낌이 편안했다. 산세와 잘 어울리는 모습으로 아담하게 앉아 있다. 그 중에서도 절 뒤쪽 산자락에서 보는 각연사의 풍경이 제일 아름답다. 뒷산길을 걸었다. 산 능선까지 올라보려 했으나 길은 이내 낙엽 속에 사라져버렸다. 앞서간 대여섯 명의 등산객 외에는 사람들도 보기 어려웠다. 올라가는 대신 단풍에 둘러싸여 산 아래서 느긋하게 쉬었다.


요사이는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기분이다. 낮의 일과를 보내는 게 무척 힘들다. 누구나 겪어야 하는 통과의례라고 한다. 오늘은 일상의 의무감에서 벗어난 자유와 자족을 즐긴다. 햇살이 밝고 환했다.


일기예보에는 비가 온다고 했다. 그러나 오후가 되면서 구름이 개고 파란 하늘이 나타났다. 연풍성지를 찾았다.



연풍은 조선 시대 때 현감이 머물렀던 고을로 충청도와 경상도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였다. 천주교 역사에서도 박해를 피해 피신하려던 신자들이 지나가던 길목이어서 1866년의 병인박해 때는 많은 신자들이 이곳에서 처형을 당했다. 순교한 황 루가 성인의 묘소도 성지 안에 모셔져 있다. 배교하지 않는 신자들을 목 졸라 죽일 때 쓰인 형구돌도 이곳에서 발굴되었다. 바로 그 순교 현장에 연풍순교성지가 있다.





성지 안에 있는 연풍공소에서 시골 어르신들과 함께 5시 미사를 드렸다. 색다른 분위기가 좋았고 방석에 앉아서 드리는 미사도 오랜만이었다. 도시의 큰 성당에서 드리는 미사는 여기에 비하니 무미건조해 보였다. 규모가 작은 공동체 안에서는 모두가 서로를 알아본다. 사람 사이의 정이 살아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신앙 공동체인 경우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최근에 모 대형교회 목사가 이렇게 설교했다고 한다. “작은 교회가 아름답다는 말을 믿지 마라. 목회에 실패한 이들이나 하는 변명이다. 주님 보기에 큰 교회가 아름답다.” 글쎄, 훌륭하신 목사님 말씀을 비판할 자격은 없으나 ‘크다’는 의미가 제발 욕망의 크기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아내가 성모님 상 앞에 촛불을 밝혔다. 세상을 바라보는 성모님의 표정이 온화하고 아름답다. 같은 기독교지만 개신교와 달리 가톨릭의 특징은 성모 마리아의 존재하심이다. 그분으로 인하여 신성의 모성적 측면이 보충된다. 가톨릭의 이미지가 개신교보다 부드러운 것은 성모 마리아 덕분이 아닌가 싶다. 성모님께 드리는 아내의 기도가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에 비해 낮아지고 겸손해졌으리라. 청하고 바라는 게 적은 기도가 하느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기도가 아닐까.


돌아보니 아내와 이렇게 바깥나들이를 함께 한 게 참 오래 되었다. 2년 전 수술을 받은 이래로 처음인 것 같다. 수술을 받은 몸이 온전치 않아 그동안 긴 여행은 자제를 했다. 이번에도 설악산 단풍을 보고 싶었으나 무리가 될 것 같아 온천으로 바꾸었다. 건강한 사람들에는 못 미칠지라도 동선을 줄이면 웬만한 여행은 가능할 것 같다. 아내는 산책과 걷기를 좋아한다. 내년에 퇴직하면 함께 국내 성지를 순회하기를 원한다. 가능하면 아내의 바람을 들어주려고 한다.


수안보상록호텔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따스한 온천욕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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