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하늘재를 걷다

샌. 2010. 10. 27. 15:22


수안보온천 여행 둘째 날, 아침 산책을 나갔다가 수안보성당까지 가게 되었다. 수안보를 한 눈에 내려다보는 산자락에 위치한 성당이 예뻤다. 절로 마음을 여미게 될 만큼 정갈했다. 영혼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어수선한 저잣거리를 지나온 탓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강아지도 사진을 찍고 싶은 모양이었다. 성당에 들어설 때부터 꼬리를 치며 반가워하더니 사진을 찍는 옆에서 자기도 포즈를 취했다. 귀엽고 순해 보이는 강아지였다.



아침에는 잔뜩 안개가 끼었다. 집을 떠나면 잠을 설친다. 나이가 들수록 낯선 방에서 잠드는 게 쉽지 않다. 우선 베개가 맞지 않아서 잠자리가 불편하다. 아내는 더하다. 수면제를 먹었지만 내 코 고는 소리에 숙면을 취하지 못했다고 한다. 오늘은 월악산 만수봉에 오르려 했는데 아무래도 무리가 될 것 같아 하늘재 걷기로 바꾸었다.


하늘재 길은 충북 충주와 경북 문경을 연결하는 옛길이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아달라왕(阿達羅王) 3년(156)에 개척했다고 하며 죽령보다 2년 먼저 열렸다. 원래 이름은 계립령(鷄立嶺)이었다. 이 고개를 중심으로 삼국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을 것이다. 신라 입장에서는 북쪽으로 진출하는 길임과 동시에 고구려의 남침을 저지하는 군사적 요충지였다. 그러나 조선조 태종 14년(1414)에 문경새재가 개통되면서 계립령 길은 점점 잊혀졌다.




하늘재 길은 미륵리사지에서 시작된다. 여기에는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미륵리석불입상이 있다. 뒤와 좌우에 석축이 쌓여있는데 원래는 석굴로 된 법당이었다고 한다. 석불은 세련되지 않고 소박해서 오히려 더 정겨웠다. 지그시 눈을 감고 깊은 명상에 드신 부처님 얼굴이 부드럽고 포근했다. 위엄이 느껴지지 않아 좋았다.


모든 종교에 공통된 ‘종교심’(宗敎心)을 생각한다. 무엇을 믿든 보편적 믿음의 마음은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을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동경’이라고 본다. 미륵리사지에서는 온화한 부처님의 얼굴로 그 세계가 표현되어 있다. 참된 종교심은 세상살이의 갈등과 대립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준다. 한없이 넓은 마음으로 만상을 포용하고 조화를 이룬다.


‘봉은사 땅밟기’라는 동영상이 충격을 주고 있다. 모 개신교 단체의 젊은이들이 심야에 봉은사에 들어가 우상숭배를 멸해달라는 기도를 하는 영상이다. 법당 안에서 두 팔을 쳐들고 기도를 하는 장면도 있다. 우상숭배의 땅을 하나님의 땅으로 바꿔달라는 것이다. 이 정도라면 일부 개신교의 행태는 갈 데까지 갔다. 개신교의 몰락을 부추기는 철딱서니 없는 행동들이다. 그리고 진짜 우상숭배가 뭔지 그들에게 묻고 싶다. 지금 이 시대의 맘몬 숭배야말로 가장 심각한 우상숭배가 아니겠는가. 남을 비판하기에 앞서 교회는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자신들의 우상숭배부터 척결할 일이다.




미륵리사지에서 조금 더 나가면 하늘재로 가는 입구가 나온다. 길은 산책하기에 최고다. 남녀노소 누구나 어렵지 않게 걸을 수 있다. 입구에서 하늘재까지는 2 km로 느릿느릿 걸어도 왕복하는데 두 시간이면 충분하다. 인근의 죽령이나 문경새재보다 훨씬 낮고 짧다.



길을 가다보면 ‘김연아를 닮은 나무’가 있다. 소나무 가지의 생김새가 꼭 김연아 선수가 피겨를 하는 모양이다. 잔뜩 흐린 날씨가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듯 했다. 바람도 세게 불어 옷을 꺼내 입어도 추웠다. 이럴 때는 열심히 걷는 수밖에 없다. 하늘재는 가까이에 있었다.



하늘재 꼭대기 모습이다. 정상에 차들이 주차해 있어 의아해했더니 반대편 문경 쪽은 아스팔트 포장이 되어 있었다. 남쪽에서는 차를 타고 하늘재까지 올라온다. 언젠가는 아스팔트를 걷어내고 다시 흙길로 복원하길 기대한다. 그래야 온전한 하늘재 길을 걸을 수 있겠다.

 

내려오니 날이 개이고 파란 하늘이 보였다. 단풍도 더욱 선연한 색깔로 다가왔다. 그러나 서울로 일찍 돌아와 쉬기로 했다. 여행을 다녀보면 나이가 들었다는 걸 실감한다. 쉽게 지친다. 구경도 젊어서 한다는 말, 전에는 흘려들었는데 지금은 몸으로 체험하고 있다.어제 각연사와 연풍성지, 오늘 미륵리사지와 하늘재의 인상은 공통적으로 부드럽고 따스했다.비록 주마간산으로 스쳐지났지만 우리 산천과 사람의 흔적들이 아름답고 포근했다. 앞으로도 자연과, 또사람들과 좀더 깊은 교감을 나눌 수 있는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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