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394

이탈리아(4) - 친퀘테레, 피사

어제 묵은 밀라노의 티파니 호텔은 시설이 안락해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중간에 잠을 깨지 않고 4시 30분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이탈리아 여행 다섯째 날이다. 호텔에서 보이는 이탈리아 아파트다. 이탈리아에는 아파트를 보기 어렵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아파트를 좋아하지 않는다. 마당이 있는 집을 선호한다. "사랑을 얻으면 한 달이 행복하고, 젖소를 얻으면 1년이 행복하고, 마당을 가꾸면 평생 행복하다"고 이탈리아 사람들은 말한다. 친퀘테레로 가기 위해 기차역으로 걸어간다. 가로수인 오렌지나무가 정겹다. 친퀘테레행 기차를 타는 라스페지아 기차역이다. 숨가쁘게 달려갔지만 눈 앞에서 기차를 놓쳤다. 다음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역 앞에서 비둘기와 놀다. 빵 부스러기를 주니 먹이 다툼이 치열하다. 친퀘테레(Ci..

사진속일상 2018.03.19

이탈리아(3) - 베로나, 밀라노

3월 11일 이탈리아 여행 넷째 날,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오늘은 여유 있는 일정이라 7시 30분에 아침 식사를 하고, 8시 30분에 숙소를 출발한다. 오전은 베로나, 오후는 밀라노 관광이다. 베로나(Verona)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무대가 된 도시다. 교황파와 황제파의 싸움을 배경으로 탄생한 사랑 이야기다. 관광객들은 줄리엣을 만나러 베로나로 몰려든다. 그러나 시대 배경은 맞지만 로미오와 줄리엣은 실재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소설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베로나 시에서는 건물을 사서 줄리엣의 집으로 꾸몄다. 사람들은 허구의 집인 이곳으로 끊임없이 찾아온다. 문화 컨텐츠가 성공한 예다. 또 다른 베로나의 자랑거리는 아레나 원형경기장이다. 현존하는 원형경기장 중 세 번째로 크다.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

사진속일상 2018.03.18

이탈리아(2) - 베네치아

3월 10일, 이탈리아 여행 셋째 날이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로 가는 날이어서인지 하늘은 잔뜩 흐리고 가랑비가 뿌린다. 비 오는 날 베네치아 관광은 최악이라는데 제발 많은 비만 내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베네치아(Venezia)는 바다 위에 세워진 경이로운 도시다. 베네치아의 역사는 6세기에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의 피난민이 열두 개의 섬에 마을을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그 뒤 베네치아는 해상 무역의 중심지가 되면서 번영을 누리게 된다. 10세기의 베네치아 공화국은 이탈리아 도시 국가 중 가장 부강한 나라였다. 15세기까지 황금기를 구가하던 베네치아는 이후 쇠락해 간다. 지금은 110여개의 섬들이 400개가 넘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고, 30만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실제 베네치아에 가면 엄청난 규모에..

사진속일상 2018.03.18

이탈리아(1) - 아시시

2018년 3월 8일 오후 4시 40분에 이탈리아에 도착했다. 낮 12시 40분에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로마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공항까지 12시간이 걸렸다. 우리나라와 이탈리아는 8시간의 시차가 난다. 아내와 함께 하는 7박 9일의 이탈리아 여행이 시작되었다. 공항 밖에서 패키지여행 멤버들이 모였다. 총 27명인데 여자가 24명, 남자가 3명이다. 여자끼리 단체로 온 10명과 8명 그룹에 우리와 비슷한 나잇대의 부부, 그리고 자매와 모녀 팀, 혼자 온 남자가 한 명 있다. 여자들 틈새에서 어떻게 지낼까, 라는 걱정이 먼저 들었다. 첫날은 다른 일정 없이 로마 시내에 있는 호텔에 가서 쉬었다. 저녁으로는 김밥이 나왔다. 호텔로 가는 길에 만난 이탈리아의 첫인상은 회색빛으로 우중충했다. 사람들도 무뚝뚝해 보..

사진속일상 2018.03.17

성지(5) - 신석복 묘, 박대식 묘

7. 신석복 마르코(1828~1866) 순교자 묘 신석복 마르코는 밀양시 하남읍 명례리에서 살았다. 명례리는 피난 교우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농사를 지으며 누룩과 소금 행상을 하던 마르코는 병인박해가 일어나던 1866년에 대구에서 내려온 포졸들에게 붙잡혔다. 포졸들은 창원에서 장사를 하고 돌아오던 마르코를 며칠 동안 마을에서 숨어 기다리다가 체포했다. 마르코는 대구로 압송되어 배교를 강요당했지만, "저를 놓아주신다 해도 다시 천주교를 봉행할 것입니다." 하며 자신의 신앙을 고백했다. 마르코는 열흘간 감옥에 갇혀 있다가 1866년 음력 2월 15일 교수형을 받아 순교했다. 가족들이 시신을 거두어 고향에 안장하려 했으나 지방 유지들의 반대로 낙동강 건너 노루목(김해군 한림면 장방리)에 묻었다. 그 후 19..

사진속일상 2018.02.28

김해

친지의 결혼식 참석차 김해에 간 길에 아내와 함께 봉하마을에 들렀다. 두 번째였는데 이번에는 부엉이바위로 해서 사자바위 전망대까지 다녀왔다. 휴일이었다 해도 방문한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주차 공간을 찾기 어려웠다. 노무현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았다. 사자바위에 올라보니 봉하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 보였다. 포근하고 넉넉해 보이는 마을이었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부엉이바위로는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었다. 꼭 그래야만 했나요? 그때의 MB는 지금 검찰 출석을 앞두고 있다. 계속 반복되는 역사의 쳇바퀴가 답답하다. 김해 시내에 있는 수로왕릉에도 들렀다. 김해 김씨의 시조인 탓인지 결혼식을 마친 한 무리의 가족이 신랑 ..

사진속일상 2018.02.27

철원 두루미

두루미를 보러 철원에 갔다. 전에는 DMZ 안으로 들어갔으나 이번에는 양지리에 있는 두루미 관찰소를 찾았다. 한탄강 둑에 만든 건물에 들어가면 두루미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관찰할 수 있다. 먹이를 주기 때문인지 강에는 두루미와 고니가 많았다. 두루미는 세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가운데 재두루미 개체수가 제일 많았다. 약 50마리 정도가 한데 모여 열심히 모이를 먹고 있었다. 그리고 좌우에 두루미 가족으로 보이는 무리가 있었다. 거리가 멀었지만 두루미의 고고한 자태를 직접 감상한 것으로 만족했다. 대포 렌즈가 있었으면 하면 아쉬움은 남았다. 두루미는 한반도에서 5개월 정도 머물다 3월이면 시베리아로 돌아간다. 전 세계 두루미의 30% 정도가 월동하기 위해 철원평야를 찾는다고 한다. 다행인 것은 이번에 ..

사진속일상 2018.02.01

사람이 아니야

다른 사람에 비해서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다. 사오십 대 때 제일 뜨거웠는데 그 시절에는 한 해에 백 권 정도는 읽었다. 직장에서 벗어난 지금은 자유 시간이 더 많이 나지만 독서량은 줄어들었다. 줄어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육칠십 권은 될 것이다. 책을 가까이하는 것이 나에게는 평생의 습관이 되었다. 여행을 갈 때도 보든 안 보든 책 한 권은 가방에 넣는다. 일행에서 벗어나 몇 장이라도 들춰봐야 마음이 편안해진다. 안중근 의사의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힌다[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이런 별스러운 나를 어떤 사람은 못마땅한 눈초리로 쳐다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젠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는다. 나를 어느 정도 아는 친구들은 안부를 물을 때 "요즘도 ..

길위의단상 2017.12.20

성지(4) - 양근성지

6. 양근성지 양평에 있는 양근(楊根)성지는 이 지역 신앙 공동체의 시발점이 된 곳이다. '양근'이란 지명은 고구려 시대까지 올라갈 정도로 오래된 것으로, 1908년에 양근군과 지평군이 합쳐지면서 양평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양근성지는 한국 천주교의 창립 주역인 권철신 암브로시오와 권일신 하비에르 순교자가 태어난 곳이다. 이승훈 베드로가 양근으로 내려와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등에게 세례를 베풀면서 충청도와 전라도의 신앙 공동체도 양근성지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곳의 초기 신자들은 조과, 망과, 성로신경 등을 바치며 신앙을 실천했고, 신부가 없는 상태에서 모방 성직제가 행해진 곳이기도 하다. 1837년에는 샤스탕 신부님이 조선에 입국한 후 양근에 머물면서 조선말을 공부하고 신자들과 함께 생활했다. 또..

사진속일상 2017.11.17

반계리 은행나무(3)

이 나무와는 13년 전에 처음 대면했다. 노란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강렬함에 넋을 뺏긴 기억이 난다. 10여 년이 흘렀어도 마찬가지다.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은행나무 중 제일 선연한 노란 색깔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균형 잡힌 몸매도 아름답다. 800년 된 나무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그때에 비해 주변은 잘 정리되었다. 마을 가운데 있지만 공터가 넓어서 여유가 있다. 혼자였다면 더 오래 머물렀을 것이다. 지는 석양을 받을 은행잎은 더욱 환상적일 것이라고 상상을 해 본다. 가을이 되면 꼭 찾아보고 싶은 나무 중 하나다.

천년의나무 2017.11.10

용문사 은행나무(4)

이번에는 때가 늦었다. 노란 은행잎이 많이 떨어지고 허전했다. 10월 말에 찾았던 재작년에는 초록 잎새가 남아 있을 정도로 빨랐고, 이번에는 지각을 했다. 절정의 순간을 맞추기가 그만큼 힘들다. 떨어진 은행잎을 쓸어내었는지 나무 아래도 휑해서 아쉬웠다. 이번 길에는 처제와 동서가 동행했다. 입시를 코앞에 둔 자식이 있어서 마음이 안절부절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천 년 고목을 보면서 좀 더 넓게 세상을 보았으면 한다. 그때는 사소한 일에 왜 그렇게 노심초사했을까, 지나고 봐야 깨닫는다. 인생의 일이란 대부분 그렇다. 지금 나도 마찬가지다.

천년의나무 2017.11.10

울릉도(2)

아침 9시에 강릉에서 출발한 배는 12시에 울릉도 저동항에 도착했다. 꼭 세 시간이 걸렸다. 양로원에서 단체로 온 노인들이 얼마나 배멀미를 하는지 세 시간이 고역이었다. 덩달아 아내도 막바지에는 여러 차례 토했다. 2박 3일의 울릉도 여행은 힘겹게 시작되었다. 지금은 쾌속선이기 망정이지 예전에는 10시간이 넘게 걸리기도 했다는데, 울릉도 가기가 외국 나가기보다 더 힘들었을 게 짐작이 된다. 울릉도를 오가는 배 표만 예매를 했지 다른 것은 모두 현지에서 부딪치기로 했다. 먼저 숙소를 정하는 게 우선이었다. 터미널 안내소에서 조용하게 묵을 숙소에 대해 문의하니 '독도 호텔'을 추천해 주었다. 신축 건물에 시설도 만족스러웠다. 다만 일박에 8만 원으로 다른 데 비하면 비싼 편이었다. 하지만 편안한 잠자리가 우..

사진속일상 2017.11.05

울릉도(1) - 성인봉

울릉도 둘째 날, 천부로 가는 6시 45분 버스를 탔다. 나리분지에서 성인봉을 올라 저동으로 내려갈 계획이었다. 일주도로를 시계 방향으로 달린 버스는 8시에 천부에 도착했다. 저동에서부터 1시간 10분이 걸렸다. 천부에서 대기하고 있는 버스를 갈아타니 20분 만에 나리분지에 닿았다. 나리분지에 있는 식당에서 산채비빔밥으로 아침을 먹었다. 남은 밥은 비닐에 싸서 배낭에 챙겼다. 간단한 점심 요기로 유용했다. 9시부터 성인봉 등반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평탄하고 너른 길이 30분 정도 이어졌다. 나리분지는 그만큼 넓다. 화산 폭발 후 함몰된 칼데라 지형인데 만약 물이 찼다면 천지 같은 큰 호수가 만들어졌을 것이다. 울릉도에서는 보기 어려운 평지다. 숲에는 너도밤나무가 많다. 천천히 걷고 싶은 아름다운 길이다...

사진속일상 2017.11.04

천불동과 선재길 단풍

가을 단풍을 보기 위해 아내와 함께 동쪽으로 떠났다. 1박2일로 잡았고, 설악산 천불동 계곡 외에 다른 곳은 미정이었다. 둘째 날 영동 지방은 비 예보가 있어 날씨에 따라 갈 장소가 변할 수 있었다. 첫째 날은 천불동으로 가기 위해 아침 여섯 시에 집에서 출발했다. 새로 생긴 서울-양양 고속도로를 따라 가다가 내린천 휴게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바로 설악동으로 들어갔다. 세 시간이 걸렸다. 새 길의 덕을 톡톡히 봤다. 이른 시간인데도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데 20여 분 대기해야 했다. 주차료 5천 원에 신흥사 입장료 7천 원(2인)이었다. 길은 복잡했지만 주차 안내는 친절하고 정확해서 혼잡은 없었다. 신흥사에서 천불동 계곡으로 가는 초입은 넓은 길이 한동안 계속 되었다. 숲의 아침 공기가 상쾌했다. 신흥사..

사진속일상 2017.10.19

아내와 백마산에 오르다

집 가까이 있는 산이지만 아내와 함께 한 건 처음이다. 이만큼이나마 걸을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하다. 나도 여름에는 거의 산에 들지 못했다. 다리는 무겁고, 숨은 차고 헉헉댔다. 몸은 예민하다. 산에 적응되어 있자면 꾸준한 산행이 필요하다는 걸 실감한다. 경안교에서 산 능선을 타고 마름산을 거쳐 백마산을 찍은 뒤, 초월역으로 내려왔다. 휴일인데도 백마산은 호젓할 뿐이다. 서울에서 떨어져 사는 이점이 이런 데 있다. 가을 드는 산길을 자분자분 잘 걸었다. 산에서 내려다보이는 광주시 교외 지역이 많이 변했다. 이곳으로 이사 온 지 어느덧 7년째다. 삭막해서 어찌 살까 싶었는데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다. 어느 곳이나 나름의 장점이 있다. 원래 생각은 5년 정도 살고 더 시골로 내려갈까 했는데, 지금은 떠날 이유..

사진속일상 2017.10.15

동해는 비

고향에서 추석 차례를 지내고 올라와서는 손주와 동해로 여행을 떠났다. 올해 추석 연휴는 열흘이나 되어 전국이 사람 몸살을 앓았다. 11시에 출발했는데 저녁 7시에야 숙소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삼양목장에 들를 계획도 하염없는 거북이 도로 위에서 사라졌다. 다행히 아이는 차 안에서도 즐거워하며 잘 놀았다. 제 엄마와 같이 있는 게 마냥 좋을 뿐이었다. 어디 어디 좋은 데 돌아다닐 구상은 어른들 머릿속일 뿐 지금의 순간을 만끽하고 있는 아이를 보며 부끄러웠다. 정체보다는 앞으로의 비 예보에 우울해 있던 참이었다. 둘째 날, 비 때문에 바깥나들이는 포기하고 삼척의 솔비치 리조트에 있는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항상 낮잠을 자는 아이는 차 안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식당 의자에서까지 한참을 이어지고서야 깼다...

사진속일상 2017.10.08

2017 추석

동생이 귀향하고 난 뒤 첫 추석이다. 전에는 내 집이었는데, 이제는 동생네 집에 차례를 지내러 간다. 주인에서 객으로 위치가 바뀐 것이다. 어머니 걱정을 덜었으니 더없이 고마우면서, 동시에 뭔가 쓸쓸한 기분도 든다. 그러나 그것은 열에 하나 정도일 뿐이다. 이번처럼 가벼운 귀성은 없었다. 특히 명절을 지내고 돌아올 때, 어머니 홀로 남겨두고 떠날 때면 너무 울적하고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이제는 옛날이야기가 되었다. 동생에게 감사하기 그지없다. 조카들이 와서 차례 준비를 한 덕에 시간 여유가 많았다. 아내와 동네 앞 하천의 산책로를 걷기도 했다. 너무 좋은 일만 바라지만 말자고, 일가정 일걱정이라고 우리를 달랬다. 저녁에는 동생과 바둑도 두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막내가 늦게 왔다. 어머니가 군불을 ..

사진속일상 2017.10.04

성지(3) - 단내성지, 어농성지

오후 약속 때문에 집에서 가까운 성지를 택했다. 단내성지와 어농성지는 한 시간 거리라 11시 미사에 맞추기 위해 9시 30분에 출발했다.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하나 한낮은 여름볕처럼 따가운 날씨였다. 4. 단내성지 이천시 호법면에 있는 단내성지에는 다섯 분의 순교 성인이 모셔져 있다. 그중에 정은 바오로 성인은 1866년 병인박해 때 체포되어 남한산성으로 압송되었다. 이때 재종손인 정 베드로가 할아버지를 옥중에서 보살피기 위해 자수해서 함께 고초를 겪었다. 두 분은 그해 말에 백지사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버려진 정은의 시신을 가족이 찾아내 이곳에 모셨다. 여기 모셔진 성인들은 가족 사랑의 모범이 되셨기에 이곳이 성가정성지로 지정된 것 같다. 순교비와 성가정성지 표지석. 이곳은 역사가 오랜 교우촌 중의 하나..

사진속일상 2017.09.26

성지(2) - 북수동성당

3. 북수동성당 하늘은 잔뜩 흐리고 보슬비가 내렸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약속한 날이 되니 비가 뿌렸다. 성지를 찾아가는 길이니 어찌할 수 없음도 넉넉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었다. 정조가 죽고 천주교 탄압이 시작되었는데 경기도와 충청도 일대에서 체포된 천주교인은 수원 화성으로 압송되어 처형 되었다. 순교터는 화성 곳곳에 산재해 있다. 북수동성당은 수원 화성 안의 옛 토포청 자리에 있다. 아마 이곳에 수많은 천주교인이 갇혀 있었을 것이다. 북수동성당은 수원에서 가장 역사가 오랜 본당으로 천주교 수원 순교성지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에서 공식적으로 밝혀진 순교자는 78위이다. 1933년에 폴리(Polly) 신부가 건축한 고딕식 성당이 있었으나 6.25 때 전화로 손상되었고 뒤에 철거되었다. 건물을 재건하기 위..

사진속일상 2017.09.08

한적한 대공원 산림욕로

평일이지만 사람이 많으리라 예상했지만 의외로 한적했다. 전에는 휴일은 말할 것도 없고 평일에도 걷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다. 서울대공원 산림욕로의 인기가 시들해진 모양이다. 세 시간 넘게 걷는 동안 마주친 사람이 열 손가락 안에 들 정도였다. 도시락을 싸가지고 간 소풍 겸해서 산길을 걸었다. 길이 좋아 아내는 등산화를 벗고 맨발로 걸었다. 지압이 되면서 땅의 기운을 받을 수 있어 좋다는 것이다. 건강만 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기세다. 그런 적극적인 노력이 그나마 지금의 상태를 만들었는지 모른다. 집에 돌아와서 보니 온 몸이 벌레에 물려서 엉망이 되었다. 이놈들이 옷 속으로 기어들어온 모양이다. 쉼터에서 점심 먹을 때 모기 등의 날벌레들이 달려들어서 애먹었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이유가..

사진속일상 2017.09.01

아내와 남한산성 일주

휴일에는 바깥나들이를 거의 안 하는데 오늘은 달랐다. 축복의 날씨라고 해야 할까, 일 년에 몇 번 나타나지 않을 맑고 투명한 날이 열렸다. 대기는 상큼하고, 하늘은 티 없이 푸르렀다. 배낭을 꾸려 아내와 남한산성으로 나갔다. 오늘 같은 날은 남한산성 일주를 욕심내도 될 법했다. 늘 평일 산길만 걷다가 휴일에 나오니 남한산성 마을은 장날 같은 분위기였다. 그것은 내가 얼마나 혜택을 누리며 사는지를 말해주는 것이었다. 주변이 소란해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걷자고 다짐했다. 산성의 동문과 북문 사이는 성벽 보수 공사로 통제되고 있었다. 일주 거리인 9km를 걷는 데 약 4시간 30분이 걸렸다. 세 번이나 넉넉하게 쉬었다. 그래도 둘이서 같이 이만큼 걸을 수 있음이 다행이다. 아내는 무릎 이상으로 병원 치료를 받은..

사진속일상 2017.08.26

성지(1) - 용소막성당, 후리사공소

우리나라에 있는 천주교 성지를 모두 순례해 보자고 아내와 다짐한지 어느덧 7년이 지났다. 퇴직할 무렵이었다. 이제 그 약속을 지키려 한다. 아내는 열심인 신자이지만, 나는 그동안 냉담으로 변했다. 이번 순례에는 종교적 의미 외에 부부가 국내를 함께 여행한다는 데에도 방점이 있다. 전국을 돌면서 큰 나무를 보고, 지역 명소를 찾아보고, 맛있는 음식도 맛보려 한다. 천주교 성지와 사적지는 400여 곳이 된다. 가까운 곳은 당일로 다녀오지만, 먼 곳은 1박이나 2박의 여정이 될 것이다. 3년 정도면 일주를 하지 않을까 싶다. 무겁지 않게 경쾌한 마음으로 첫발을 내디딘다. 1. 용소막 성당 1904년에 세워진 교회로 강원도에서는 풍수원, 원주에 이어 세 번째로 역사가 오래다. 이곳은 1866년 병인박해 이후 피..

사진속일상 2017.08.23

남한산성 반 바퀴

아내와 남한산성을 반 바퀴 돌았다. 중앙주차장에서 보건소 옆을 지나 성곽을 따라 반시계방향으로 걸어 개원사로 내려왔다. 함께 한 오랜만의 걸음이었다. 무더위가 한풀 꺾였다. 아침 저녁으로는 선선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래도 한낮의 햇볕은 따갑다. 어제 비가 내리고 오늘은 전형적인 여름 날씨다. 대기는 미세먼지 걱정 없이 깨끗하고, 시야도 확 트였다. 서문 전망대에서는 서울 시내가 한 눈에 잡힌다. 아마 혼자 왔더라면 더 난이도가 있는 코스를 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둘이서는 이 정도의 걸음이 적당하다. 좀 더 훈련이 되면 이번 가을에는 도봉산에 도전해 볼 예정이다. 아내의 무릎이 염려되어 강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 걸은 시간: 2시간 50분(휴식 40분) * 걸은 거리: 6.5km * 평균 속도: 2..

사진속일상 2017.08.11

손주와 여름 휴가

손주 따라 여름 휴가를 다녀왔다. 나는 기사 역할을 맡았다. 장마의 막바지여서 여행 내내 햇빛을 보지 못했다. 가끔 소나기가 지나갔다. 부여 롯데리조트에서 2박을 했다. 부여 롯데리조트는 조형미가 아름다운 건물이다. 전통과 현대미의 조화에 신경을 쓴 것 같다. 현재를 살지만 우리도 과거의 씨줄과 얽히며 삶의 무늬를 그린다. 어떤 사람에게는 끊임없이 발목을 잡는 과거의 사연이 있다. 놀러 온 사람이 있고, 그걸 시중 드는 사람이 있다. 부모를 잘 만나 땀 흘리지 않고 호의호식 하는 사람이 있고, 평생 근면하게 노동을 해도 근근히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옆을 지나가는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손주에게 부여를 설명하자면 아직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 지금은 오직 물놀이가 좋은 나이다. 가족이 아..

사진속일상 2017.07.25

제주도(2) - 민속촌, 외돌개

장모님과 함께 하는 제주도 여행 사흘째, 민속촌과 외돌개, 허브동산을 둘러보았다. 노인 취향의 장소를 선택하는 일이 만만치 않았다. 덕분에 민속촌과 허브동산을 우리도 처음으로 가 볼 수 있었다. 제주도는 지금 중국인 관광객이 없으니 조용해서 좋았다. 그 많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사라졌다는 게 신기했다. 나흘간 있으면서 딱 한 번 중국말을 들을 수 있었다. 그것도 개인적으로 온 젊은이 셋이였다. 조심해 보이는 기색이 완연했다. 사드가 준 선물이었다. 이번 기회에 제주도에 가자, 라고 하는 주변 사람들이 많다. 민속촌은 제주도의 옛날 주택을 잘 재현해 놓았다. 설명을 들으면서 관람을 해야 제주도에 대한 공부가 될 것 같다. 바닷가 산책로로 외돌개 해변을 찾았다. 이곳은 남녀노소 누구나 걷기에 무난한 길이다. ..

사진속일상 2017.05.20

제주도(1) - 우도, 비자림

효도관광으로 장모님을 모시고 제주도에 다녀왔다. 이번에는 걷기는 피하고 동선이 짧도록 일정을 짰다. 다행히 장모님은 지팡이를 짚으시기는 하지만 평지길을 걷는데는 무난하시다. 아직 제주도 여행 정도는 무리가 없다. 3박을 한 곳은 '샤론의 집' 펜션이었다. 독채에 우리만 머물러서 다른 숙박객의 방해를 받지 않았다. 다들 수면에 예민해서 한밤중의 소음이 제일 걱정이었는데, 가장 조용하고 편안한 여행이 되었다. 둘째날은 우도(牛島)에 갔다. 작년에는 아내와 섬을 한 바퀴 걸어서 돌았는데, 이번에는 장모님 때문에 렌트카를 가지고 들어갔다. 작은 섬이지만 차가 있으니 편리하긴 했다. 섬을 반시계방향으로 일주했다. 우도봉에서 바라본 풍경. 검멀레해수욕장의 후해석벽(後海石壁). 마침 썰물이어서 비양도 등대까지 걸어 ..

사진속일상 2017.05.19

5월에

5월을 맞아 양가의 어머니와 장모님을 찾아뵙다. 작은 선물을 드리고 밖에 나가 외식을 하다. 특히 올해는 어머니 곁으로 동생이 들어와서 한 시름을 덜게 되다. 두 분 모두 큰 병 없이 건강하신 편이라 자식으로서 고맙기만 하다. 부모가 장수하면 자식과 같이 늙어간다는 말이 맞다. 두 분을 바라보는 내 마음에도 미묘한 변화가 생기고 있다. 전과 달리 이제는 동지 의식 같은 게 느껴진다. 공감의 영역도 점점 넓어지고 있다. 법적으로는 나도 이제 노인 반열에 들어가게 된다. 좀 씁쓸하기도 하다. 시대가 변했으니 기준을 70세로 올려도 괜찮을 것 같은데 말이다. 장모님은 바닷가에서 자라셔서 해산물을 무척 좋아하신다. 차로 한 시간 거리인 서천 특화시장에서 바다 내음을 맡으며 쇼핑을 하다. 클릭 몇 번으로 물건이 ..

사진속일상 2017.05.05

얼떨결에 축령산에 오르다

아내와 축령산 계곡으로 꽃 보러 갔다가 얼떨결에 축령산 등산을 하게 되었다. 이정표가 축령산 정상까지 1.8km로 되어 있어 만만하게 봤다. 둘 다 근래에 등산을 하지 못했고 몸 상태도 온전하지 않았다. 시간이 넉넉하니 느릿느릿 걸으면 되겠지 했다. 정상까지는 그럭저럭 올라갔는데 내려가는 길에서 고생을 했다. 축령산이 886m나 되는 줄 미처 몰랐다. 게다가 바위도 많았다. 등산 준비도 하지 않아 먹을 것도 부족했다. 아내는 나무 막대를 지팡이 삼았다. 3km의 하산길이 너무 길었다. 다행히 산길에 꽃이 많아 눈요기로 피로가 일부 감해졌다. 정산 부근에는 노랑제비꽃 천지였다. 축령산이 야생화의 보고란 걸 이번에 다시 확인했다. 힘들었고 다리에 경련이 일어났지만 뿌듯했다. 아내는 관절 치료 뒤 1년 만의 ..

사진속일상 2017.04.25

천진암의 가을

아침 기온이 영하로 떨어졌다. 계절 변화가 무척 빠르다. 가을옷을 꺼낸 지 얼마 안 됐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겨울옷을 챙겨야 하게 생겼다. 가까운 천진암에 아내와 떠나는 가을을 보러 나갔다. 낙엽으로 덮인 순교자 묘역 가는 길이 예뻤다. 천진암의 조형물이나 시설은 미적 감각과는 거리가 있지만, 그대로 가만히 둔 자연은 아름답다. 손이 미치지 않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계절 탓인지, 시국 탓인지, 요사이 심사가 착잡하다. 아름다운 풍경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몸과 마음이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 같다.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간에게 희망이 있는가, 라는 물음이 이 가을을 더욱 쓸쓸하게 한다.

사진속일상 2016.11.02

적상전망대 단풍

전주에 가는 길에 적상전망대에 들렀다. 무주에 있는 적상산(赤裳山, 1,029m)은 정상 부근까지 자동차로 올라갈 수 있는데, 위에는 무주양수발전소의 상부 댐과 전망대가 있다. '적상'이라는 이름이 말하듯 가을 단풍이 유명한 산이다. 시간 여유가 없어서 안국사 산길은 걸어보지 못하고 전망대와 댐 주변 길을 잠깐 산책했다. 댐에 물이 완전히 빠져 있어 단풍 풍경이 살아나지 못했다. 때가 안 맞았는지 단풍도 그리 화려하지는 않았다. 너무 손쉽게 가을 단풍 맛을 보려 한 것 같다. 적상전망대. 적상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풍경. 댐 주변 산책로에서 본 단풍. 적상산에는 고려 때 축조된 적상산성과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적상산사고지(赤裳山史庫地)가 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찬찬히 둘러보고 싶다.

사진속일상 2016.1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