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서 추석 차례를 지내고 올라와서는 손주와 동해로 여행을 떠났다. 올해 추석 연휴는 열흘이나 되어 전국이 사람 몸살을 앓았다. 11시에 출발했는데 저녁 7시에야 숙소에 도착했다. 가는 길에 삼양목장에 들를 계획도 하염없는 거북이 도로 위에서 사라졌다.
다행히 아이는 차 안에서도 즐거워하며 잘 놀았다. 제 엄마와 같이 있는 게 마냥 좋을 뿐이었다. 어디 어디 좋은 데 돌아다닐 구상은 어른들 머릿속일 뿐 지금의 순간을 만끽하고 있는 아이를 보며 부끄러웠다. 정체보다는 앞으로의 비 예보에 우울해 있던 참이었다.
둘째 날, 비 때문에 바깥나들이는 포기하고 삼척의 솔비치 리조트에 있는 식당에 점심을 먹으러 갔다. 항상 낮잠을 자는 아이는 차 안에서 잠이 들어버렸다. 식당 의자에서까지 한참을 이어지고서야 깼다. 이리저리 돌아다니지 않고 한 곳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도 괜찮은 일이었다.
셋째 날도 비는 이어졌다. 우산을 쓰지 않아도 되는 환선굴로 방향을 돌렸다. 걱정되었던 건 동굴에 들어가서 아이가 잠이 들면 어쩌나,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동굴에 호랑이가 사는데 잠자는 아이를 잡아간다고 거짓말을 했다. 아이는 동굴에 들어가서부터 나올 때까지 줄곧 노래만 불렀다. 잠들지 않기 위한 나름의 노력이었다.
주차장에서 환선굴 입구까지는 모노레일을 이용했다. 나중에는 줄이 길어지니 그냥 걸어 올라가는 사람이 많았다. 모노레일 지붕에 수직으로 세워놓은 에어컨 팬이 특이했다. 회사 광고를 위한 것일까?
환선굴은 규모가 컸지만 아기자기한 맛은 덜했다. 아이는 너무 계단이 많아 중간에 되돌아 나갔다. 우리도 바삐 걸음 하느라 제대로 구경할 틈이 없었다. 조용할 때 찬찬히 구경할 곳이다.
돌아오는 길에 다시 솔비치에 들렀다. 비는 순해져서 보슬비로 변했다. 솔비치 옥상 정원은 흰색과 푸른색을 주조로 한 지중해풍의 이국적인 분위기였다. 아이는 오로지 분수에 꽂혔다.
원래는 이틀 밤을 자고 돌아올 예정이었으나 귀경길 정체 때문에 하루를 더 묵고 넷째 날 새벽에 출발했다. 쉬지 않고 달려오니 두시간 반이 걸렸다. 평일에 여행을 다닐 수 있는 축복 받은 내 처지를 감사해야겠다.
바닷가에 갔으면서 바다를 가까이하지 못했다. 일출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하필 내내 비가 오다니, 한탄한들 아무 소득이 없다.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은 받아들이는 지혜가 필요하다. 아이한테서 배울 일이다. 그래도 아이와 즐겁게 보낼 수 있어서 좋았다. 세상일은 내 뜻대로 되지 않지만, 행복을 누리는 건 각자의 몫이다. 밖은 비가 내려도, 마음은 햇빛 뽀송뽀송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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