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양근성지
양평에 있는 양근(楊根)성지는 이 지역 신앙 공동체의 시발점이 된 곳이다. '양근'이란 지명은 고구려 시대까지 올라갈 정도로 오래된 것으로, 1908년에 양근군과 지평군이 합쳐지면서 양평이라는 이름이 생겼다.
양근성지는 한국 천주교의 창립 주역인 권철신 암브로시오와 권일신 하비에르 순교자가 태어난 곳이다. 이승훈 베드로가 양근으로 내려와 유항검 아우구스티노 등에게 세례를 베풀면서 충청도와 전라도의 신앙 공동체도 양근성지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곳의 초기 신자들은 조과, 망과, 성로신경 등을 바치며 신앙을 실천했고, 신부가 없는 상태에서 모방 성직제가 행해진 곳이기도 하다. 1837년에는 샤스탕 신부님이 조선에 입국한 후 양근에 머물면서 조선말을 공부하고 신자들과 함께 생활했다.
또한 성지 부근은 순교지이기도 하다. 양근천과 남한강이 만나는 오밋다리 부근, 양근리 관문골에서는 여러 사람이 순교했다. 대표적인 순교자는 주문모 신부님을 모셔오기 위해 두 번이나 북경에 밀사로 다녀온 윤유일 바오로의 동생 윤유오 야고보가 있다.
양근성지는 양평 시내에서 살짝 벗어난 남한강변에 있다. 건물은 순교자 기념성당 하나만 있지만, 아담하고 깔끔한 인상의 성지다. 주변을 둘러보고 있다니까 사무실에 계신 분이 안으로 불러 커피 한 잔을 주셨다. 그리고 성지에 대한 이런저런 설명을 들었다. 사람을 두지 않고 신부님이 직접 궂은 일을 하며 애쓰시는 것 같았다.
천주교 신자들의 성지 순례가 유행이다. 워낙 많이 참여하다 보니 성지 순례의 본래 의미를 망각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문을 안 열어 준다고 화를 내고, 도장 받는 게 목적인 사람도 있다고 한다.
오늘의 배움은 이것이다. 성지 순례는 '빨리빨리'가 아니라 '느릿느릿'이다. 성지 순례에 목표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