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마누라 음식 간보기 / 임보

샌. 2009. 3. 18. 11:09

아내는 새로운 음식을 만들때마다

내 앞에 가져와 한 숟갈 내밀며 간을 보라 한다.

 

그러면

"음, 마침맞구먼, 맛있네!"

이것이 요즘 내가 터득한 정답이다.

 

물론, 때로는

좀 간간하기도 하고

좀 싱겁기도 할 때가 없지 않지만-

 

만일

"좀 간간한 것 같은데" 하면

아내가 한 입 자셔 보고 나서

"뭣이 간간허요? 밥에다 자시면 딱 쓰것구만!"

하신다.

 

만일

"좀 삼삼헌디" 하면

또 아내가 한 입 자셔 보고 나서

"짜면 건강에 해롭다요. 싱겁게 드시시오."

하시니 할말이 없다

 

내가 얼마나 멍청한고?

아내 음식 간 맞추는 데 평생이 걸렸으니

 

정답은

"참 맛있네!"인데

그 쉬운 것도 모르고....

 

-마누라 음식 간보기 / 임보

 

마눌님 눈치 보는 일이 잦아졌다. 나이가 들면서 고개 숙인 남자가 되는 건 자연의 필연 법칙인가 보다. 그래도 여전히 호기를 부리는 천연기념물 같은 존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어떤 때는 그런 허풍이 도리어 더 슬퍼보일 뿐이다.

 

오호 통재라, 가정에서 늙은 마눌님의 생각이나 말은 곧 법이다. 인생살이에서 공짜는 없다는 사실을 여기서도 실감한다. 젊었을 때는 큰 소리를 한껏 쳤는데 이젠 내가 잔소리나 지청구를 들어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어디 음식 간보기 만이겠는가. 마눌님의 의견에는 무조건 "당신 말이 맞소!" 해야 집안이 평안하고 내가 행복하다. 정답은 쉬운 데 있었는데, 그런데 사실은 쉬운 정답 깨치기가 더 힘드니 어찌 된 노릇인가. 철이 들자면 아직도 멀었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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