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거짓말 / 공광규

샌. 2009. 3. 10. 09:24

대나무는 세월이 갈수록 속을 더 크게 비워가고

오래된 느티나무는 나이를 먹을수록

몸을 썩히며 텅텅 비워간다

혼자 남은 시골 흙집도 텅 비어 있다가

머지않아 쓰러질 것이다

 

도심에 사는 나는 나이를 먹으면서도

머리에 글자를 구겨 박으려고 애쓴다

살림집 평수를 늘리려고 안간힘을 쓰고

친구를 얻으려고 술집을 전전하고

거시기를 한 번 더 해보려고 정력식품을 찾는다

 

대나무를 느티나무를 시골집을 사랑한다는 내가

늘 생각하거나 하는 짓이 이렇다

사는 것이 거짓말이다

거짓말인 줄 내가 다 알면서도 이렇게 살고 있다

나를 얼른 패 죽여야 한다

 

- 거짓말 / 공광규

 

사람들이 마음속에 숨겨둔 생각들을 모두 다 드러낸다면 어떻게 될까를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남 몰래 짝사랑한 마음, 부끄러운 비밀들, 웃음 뒤에 감추어진 비수들이 모두 공개된다면 어떻게 될까? 진실이 밝혀진다고 세상이 아름다워질까? 아니면, 차가운 진실을 사람들은 감당하지 못하게 될까?

 

사는 것이 거짓말이라는 시인의 말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면에서 그 말은 인간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거짓말은 세상을 원활하게 돌아가는 윤활유 역할을 하기도 한다. 내가 나를 속이기도 하고, 또 뻔한 거짓말이란 걸 알면서도 우리는 위로를 받는다. '나를 얼른 패 죽여야 한다' - 시의 마지막 줄에서는 한 바탕 웃음을 터뜨려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거짓말이고, 시인 역시 거짓말을 사랑한다는 걸 자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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