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군무 / 도종환

샌. 2009. 3. 1. 08:31

우포늪에서 무리지어 내려앉는 새떼를 본 적이 있다

분홍빛 발갈퀴를 앞으로 뻗으며 물 위에 내리는

그들의 경쾌한 착지를 물방울들이 박수를 튀기며

환호하는 소리가 들렸다

노을 물든 하늘 한쪽에 점묘를 찍으며 고니떼가

함께 날아오르자 늪 위를 지나가던 바람과

낮은 하늘도 따라 올라가 몇 개의

커다란 곡선을 그리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먹고 사는 일이 멀리서 보는 것과 달라서

그리 녹녹한 일은 아니지만

그들의 눈은 맹금류처럼 핏발 서 있지 않았다

솔개나 올빼미가 뜰 때는 주변의 공기도 팽팽하게

긴장을 하고 하늘도 일순 호흡을 멈추며

피 묻은 부리와 살 깊숙이 파고들어간

날카로운 발톱을 주시하는데

물가의 새들은 맹금이 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말만이 자연의 법칙이라고 믿지 않았다

그들은 어떻게 해야 살아남고 어떻게 함께 날개를 움직여야

대륙과 큰 바다 너머 새로운 물가를 찾아갈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매같이 되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믿는 조류들도 있지만 모든 새가 그들의 독무를

따라하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다

서넛이 팔을 끼고 손에 지갑을 들고 사무실을 나서거나

일곱 씩 열 씩 모여 떠들며 한 끼의 식사를 위해 몰려가는

점심시간의 마포나 강 건너 여의도 또는 구로동 골목에서

물새들을 본다

간혹 물가 빈터에 세운 운동장에서

축구경기를 보며 함께 소리 지르고

함께 날개를 세우는 군무를 볼 때도 있고

몇 해에 한 번은 어두운 하늘에 촛불을 밝히고

몇 십만 마리씩 무리지어 나는 새떼들의 흐르는 춤을

볼 때도 있다 새들이 추는 춤은

군무가 제일 아름답다

독수리가 되어야만 살아남는 건 아니다

가창오리나 쇠기러기들도 아름답게 살아간다

그들도 자연의 적자가 되어 얼마든지 씩씩하게 살아간다

 

- 군무 / 도종환

 

하늘의 새만이 아니라 바다의 물고기나 땅의 약한 짐승들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무리를 이루며 산다. 혼자는 연약하고 미미하지만 무리를 이루면 감히 함부로 넘볼 수 없는 큰 힘이 된다. 영양이나 사슴의 무리에는 사자도 감히 덤비지 못한다. 그것은 자연이 준 지혜이다. 그래서 날카로운 이빨과 핏발 선 눈을 가지지 못한 그들이 추는 군무는 슬프고도 아름답다.

 

화려해 보이는 군무가 그들에겐 생존의 날개짓일 뿐 춤인 줄은 모를 것이다. 그것은 인간 세상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살아있는 모든 존재들은 다 아름답다. 만약 모두가 사자나 독수리가 되려 한다면 어떻게 될까? 독수리를 상징으로 삼은 나라도 있지만, 그래서 꼭 다른 나라를 밟고서야만 일류가 되는 건 아니다. 푸른 하늘이나 저녁 노을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하는 것은 독수리가 아니라 약하고 여린 새들의 무리이다. 독수리가 되어야만 살아남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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