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영역 / 신현정

샌. 2009. 3. 6. 09:17

산기슭 집을 샀더니 산이 딸려 왔다

산에 오소리 발자국 나있고

쪽제비가 헤집고 다닌 흔적이 역력하다

제비꽃 붓꽃 산나리 피고

멀리 천국에 사는 아기들이 소풍 와서는 똥을 싸고 갔는지

여기 저기 애기똥풀꽃 피고

떡갈나무는 까치부부가 독채를 들었다

풀섶에선 사마귀들이 덜컥덜컥 턱을 부딪히며 싸우는데

허 나도 질세라

집 있는 데서 오십 보 백 보는 더 걸어나가서

오줌이라도 누고 오고 그러는 것이다

 

- 영역 / 신현정

 

영역 다툼은 동물에게만 있는 게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의 의식이나 행동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그 배경에는 동물적 특징이 잠재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을 털 없는 원숭이라고 한 재미있는 표현도 있다.

 

새로 직장을 옮기면서 그런 영역의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자격지심인지 모르지만 새로운 영역권에 들어가면서 왠지 주눅이 드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맹수처럼 결투를 신청할 수는 없고 그저 조신할 수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내 영역을 조금씩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은밀하고 예의 바르게 다른 사람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이기도 하다.

 

고참의 텃세를 가장 심각하게 느꼈던 적은 여주 생활에서였다. 농촌 마을에 외지인이 들어가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를 절실히 체험했다. 몇 년을 살아도 융화되기가 힘들었다. 결국은 나올 수밖에 없었지만 농촌 촌락에서는 아직도 자신들만의 영역이란 게 중요하게 작용한다. 비록 배타적이라는 단점도 있지만 그런 게 마을 사람을 하나로 묶는 결속력이기도 할 것이다.

 

안정에 대한 욕구는 동물적인 영역 다툼과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 이사를 가거나 직장을 옮기기가 두려운 것은 남의 영역에 들어가서 새로이 자신의 영역을 개척해야 하는 피곤함 때문일 수도 있다. 일단은 꼬리를 내리고 눈치를 살피며 먼저 자리를 잡은 사람의 비위를 맞춰야 한다. 그러므로 누구나 자신의 영역을 유지하며 큰소리 치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심리다. 변화보다는 안정을 바라는 인간 심리의 저변에는 그런 영역 다툼의 문제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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