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광교산과 백운산을 종주하다

샌. 2009. 6. 13. 19:22



수원에 있는 광교산(光橋山)과 의왕에 있는 백운산(白雲山)은 오래전부터 오르고 싶었던 산이었다. 마침 오늘 아내와 함께 그 두 산을 함께 종주할 기회가 생겼다. 아내의 체력이 약해져서 무리를 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아침에 일어나니 좋은 날씨가 충동질을 하는 바람에 배낭을 꾸리게 되었다.


사당에서 7000번 버스를 타고 수원에 있는 경기대 후문에서 내렸다. 약 30분 정도가 걸렸다. 거기서 캠퍼스를 가로질러 정문으로 가니 광교산 등산로 입구가 나왔다. 토요일이라 등산객들이 무척 많았다. 형제봉까지 오르는 길은 사람의 행렬 속에 갇혀야 했다. 약 2시간 정도 걸려서 광교산의 최고봉인 시루봉(582m)에 이르렀다.


광교산은 소나무가 많은 산이다. 바람을 따라 솔향기가 코를 간질여서 기분이 좋았다. 길 또한 완만한 흙길로 걷기에 편안했다. 일부 급경사 구간에는 긴 계단이 설치되었는데 거기서만 오르기에 힘이 들었다. 시루봉에서 억새밭과 통신탑을 지나니 이내 백운산이 다가왔다.


백운산 정상임을 알리는 표지석 앞에서 기념사진 한 장을 찍었다. 렌즈 앞에만 서면 얼굴이 굳어지는 증상이 있어 사진 찍히는 걸 꺼리지만 여기서는 자청해서 아내에게 한 커트를 부탁했다. 이번에도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산속 소나무 아래서 먹는 도시락은 언제나 맛있다. 집에서는 젓가락이 가지 않는 반찬을 가지고 왔다는데 희한하게 산에만 오면 꿀맛으로 변해버린다.




 

백운산에서부터 능선을 따라 바라산과 하오고개로 이어지는 산길은 부드럽고 아름다웠다. 완만한 오르내림의 굴곡에 소나무 그늘 아래로 난 흙길은 지난번의 석모도 산길을 연상시켰다. 더구나 백운산부터는 사람들이 거의 찾지 않아 산길은 고요하고 호젓했다. 이런 길에서는 걸음이 느려질 수밖에 없다. 평생을 살면서 우리나라에서만도 가보지 못한 산길이 얼마나 많겠는가. 밟아보지 못한 멋진 산길이 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만약 내가 지금 이 세상을 뜬다면 그게 가장 아쉬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광교산과 의왕산 아래로 수없이 다녔지만 실제 산에 오른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바라산을 지나서 하오고개 방향으로 최대한 가다가 백운호수로 내려갔다. 좋은 길은 끝까지 실망을 시키지 않았다. 내려오던 산길에서 나리와 원추리를 만났다. 산속에서 자라는 꽃은 더욱 맑고 고왔다.





산길을 걸으며 사람의 마음을 생각한다. 사람의 마음만큼 변덕스러운 것도 없다. 작은 바람에도 이리 흔들 저리 흔들,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게 마음이다. 사람의 마음은 그만큼 불안하고 불안정하다.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른다. 그러다가 또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원래 자리로 돌아와 있다. 마음은 지키려고 해서 지켜지는 것도 아니다. 갈대는 바람이 불면 누웠다가 다시 저절로 일어난다.

사람의 마음에 대해 다산 정약용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체로 천하의 물건은 모두 지킬 만한 것이 없지만, 오직 마음만은 지켜야 한다. 나의 밭을 지고 도망갈 자가 있겠는가? 밭은 지킬만한 것이 못 된다. 내 집을 이고 도망갈 자가 있겠는가? 집은 지킬 만한 것이 못 된다. 나의 원림(園林)에 있는 꽃나무·과실나무 등 여러 나무들을 뽑아갈 수 있겠는가? 그 뿌리는 땅에 깊이 박혀 있다. 나의 책을 훔쳐다가 없앨 수 있겠는가? 성경(聖經)과 현전(賢傳)이 세상에 널리 퍼져 물과 불처럼 흔한데, 누가 그것을 없앨 수 있단 말인가? 나의 의복과 나의 식량을 도둑질해가 나를 군색하게 할 수 있겠는가? 지금 천하의 곡식이 전부 나의 식량인데, 도둑이 비록 훔쳐간다 하더라도 그 한둘에 불과할 것이니 천하의 모든 옷감과 곡식을 바닥낼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모든 천하의 물건들은 지킬 만한 것이 못 된다. 유독 마음이라는 것은 그 성품이 달아나기를 잘하여 드나듦이 일정하지가 않다. 비록 친밀하게 붙어 있어서 서로 배반하지 못할 것 같으나, 잠깐이라도 살피지 않으면 어느 곳이든 가지 않는 데가 없다. 이익과 작록이 유혹하면 그리로 가고, 위엄과 재화가 위협하면 그리로 간다. 질탕한 상조(商調)나 경쾌한 우조(羽調)의 흥겹고 고운 소리를 들으면 그리로 가고, 새까만 눈썹에 흰 이를 가진 아름다운 미인을 보면 그리로 간다. 그리로 한번 가면 되돌아올 줄을 몰라 붙잡아도 만류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천하에서 잃어버리기 쉬운 것으로는 마음 같은 것이 없다. 그러니 끈으로 잡아매고 빗장과 자물쇠로 잠가 굳게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백운호수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인덕원까지 간 다음 전철로 집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종내 집에 오르는 언덕길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마을버스를 탔다. 그래도 산길을 걷는 피로는 피로가 아니다. 산의 기운을 듬뿍 받은 하루였다.


* 산행경로; 경기대 정문 - 형제봉 - 광교산(582m) - 백운산(567m) - 바라산 - 400고지 - 백운호수

* 산행거리; 17 km

* 산행시간; 6 시간(09:00 -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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