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석모도 해명산길을 걷다

샌. 2009. 5. 24. 08:27



외포리에 도착할 때까지 비가 오락가락했다. 일기예보로는 아침에 비가 그친다 했다. 차안에서 김밥으로 아침을 대신하며 일찍 출발한 길이었다. 토요일이라 늦으면 사람들로 복잡할 것 같아서였다.

 

석모도 산능선길은 예전부터 걷고 싶었던 길이었는데 이번에 드디어 걸어보게 되었다. 아내와 동행했다. 차는 외포리에주차시켜놓고 배로 건너가서 다시 버스를 타고 전득이고개에서 내렸다. 해명산 등산로 입구다. 벌써 관광버스 두 대가 와서 등산객을 내려놓고 있었다. 비는 그쳤으나 산안개가 자욱했다.

 

해명산, 석가산, 상봉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는 석모도의 척추를 이룬다. 모두 3백 m급의 야트막한 산이다. 해명산에만 올라서면 포근하고 아름다운 산길이 10 km 가까이 계속된다. 길은 적당하게 오르내리면서 북쪽으로 향하는데 산길로는 최고였다.

 

능선은 구름으로 덮여 있어 산 아래 풍경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맑은 날이었다면 왼쪽으로 펼쳐진 서해 바다의 풍경이 또한 멋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날은 이런 날대로 또 분위기가 있다. 우리는 천천히 음미하면서 산길을 아까운 듯 걸어나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구름은 차차 걷히기 시작했고 산 아래 모습도 흐릿하게 드러났다.

 





희뿌연 안개구름에잠긴산길은 몽환적일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러나 이 길 어디쯤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자살 소식을 들었다. 처음에는 등산객에게서 들었으나 잠시 뒤에 집의 아이에게서 전화가 왔다. 정신이 아득해지면서 어찌 이런 지경까지 갈 수 있는지 답답하고 안타까웠다. 그리고 그 무언가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그에게 가해지는 압박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결단을 해야 했을까.만신창이가 된 한 인간의 내적 고뇌가가슴 아팠다. 생명의 가치야 대통령이나 보통 사람이나 마찬가지겠으나 노 대통령 경우는 우리 사회 주류에 맞선 도전의 좌절이었기에 더욱 안타깝다. 열렬한 지지자도 있었지만 엉뚱하고 신랄한 욕도 많이 들은 사람이었다. 저승에서는 편안히 쉬시기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등산길 내내 머릿속은 어지럽고 착잡했다. 노 대통령은 유언에서 이것도 운명이라고 했지만 정말 한 치 앞 자신의 길도 모르는 것이 사람이다. 저길 너머에는 또 어떤 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

 



구름이 걷히며 보문사가 발 아래 내려다 보였다. 그제야 가는 방향이 명확해졌다. 한때는 전혀 시야가 트이지 않아 방향을 분간할 수 없었다. 작은 산이 이러할진대 큰 산이라면 어떠할까.그것은 우리 인생길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안개속에서 끝없이 방황하며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낯선 산길에서 만나는 이정표는 반갑다. 나는 내인생의 이정표를 가지고 있는가?

 



산은 전체적으로 흙산이지만 석가산은 거대한 화강암 암반으로 되어 있다. 저 바위덩어리 아래쪽에 마애석불이 모셔진 눈썹바위가 있다.

 



갈림길에서 잠시 휴식할 때 아내는 쑥을 뜯었다.

 

최근에 아내와 갈등 관계가 깊었다. 살면서 부침이 없을 수 없지만 골짜기에서의 시간은 서로에게 힘들고 괴롭다. 우리 사회가 소통 부족으로 체증에 걸려있듯이 사람 사이의 불화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앞으로 대화를 자주 하고 최소 한 달에 한 번은함께 산행을 하기로 했다. 오늘은 그 실천의 첫걸음이었다.

 





기묘하게 자라고 있는 소나무를 만났다. 줄기에서 여러 갈래로 가지들이 갈라져서 기이한 형상을 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사연을 품고 있길래 이 소나무는 이런 이단아적인 모양을 하고 있을까?

 

상봉산에 오른 뒤 대부분의 사람들은 왔던 길로 다시돌아서서 보문사로 내려갔다. 그러나 우리는 그냥 앞으로 계속 나아갔다. 사람 하나 없는 한적한 길이 계속되었다. 보문사로부터는 자꾸 멀어졌지만 작은 섬에서 어디로 나가든 상관 없을 것 같았다. 40 분 정도 걸었을까,'한가리지'라는 지명이 적힌고개에서 도로와 만났다. 우리는 석모도 산줄기의 남쪽에서 북쪽까지 온전히 종주를 한 셈이었다. 총 4 시간이 걸렸다.

 



아스팔트 길을 따라 보문사까지 걸어가는데 다시 30여 분이 걸렸다.보문사 입구에서버스를 타고 선착장에서 외포리행 배를 탔다. 외포리에서 꽃게탕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그러나 꽃게탕은 잘못된 선택이었다. 새로 만든 해안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를 했다. 줄포항에서는 꽃게 축제가 성황이었다.

 

적석사에서 석양을 보려고 했으나 날씨가 도와주지 않았다. 대신 초지진에 있는 강화해수랜드에서 해수탕과 한증막을 즐겼다. 거기서 노 대통령 서거에 따른 TV 뉴스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땀을 흘리는 장소라 눈물을 애써 감출 필요가 없었다. 한 사람이 검찰을 '개'라며 욕했다. 주인의 지시에 따라 눈치를 보며 짖는 개라는 것이다. 아내와 나는 찜질방에서 오래 있었다. 이 방 저 방 들리며, 누워 빈둥거리며, 찜질방에서 4 시간이나 여유를 부린 것은 처음이었다. 아내는 내 성질이 많이 변했다고 좋아했다. 집에 돌아오니 밤 11 시가 넘었다.

 

'사진속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강의 아침  (0) 2009.05.26
성당 체육대회  (0) 2009.05.24
새 컴퓨터로 바뀌다  (0) 2009.05.21
남한산성을 한 바퀴 돌다  (0) 2009.05.19
빗속의 강원도 여행  (0) 2009.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