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빗속의 강원도 여행

샌. 2009. 5. 18. 15:11

방태산 트레킹을 하기 위해 지난 토요일에 8 명의 일행이 강원도로 떠났다. 홍천군 내면 월둔리에서 트레킹을 시작해서 아침가리골로 내려올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틀 내내 비가 오는 통에 계획은 수정되었고 차로 방태산 주위를 한 바퀴 돌면서 이곳저곳을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아쉬움도 있었지만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곳을 가게된 즐거움도 컸다.

강원도로 가는 첫날에는 남양주 수석리에 들러서 조말생(曺末生) 선생 묘와 석실서원(石室書院)이 있던 자리를 찾아보았다. 그리고서종면에 있는 몽양(夢陽) 여운형(呂運亨) 선생의 생가터도 찾아갔다. 지금은빈 터지만 곧 생가 복원 작업이 시작된다고 한다. 또 양평과 홍천을 지나 공작산에 있는 수타사(壽陀寺)에도 들렀다. 봄비 내리는절집 분위기가 고즈넉하고 좋았다.

저녁 7시가 되어서야 내면 광원리에 있는 동생집에 도착했다. 동생이 황토집을 짓고 민박집을 연지 어느덧 5 년이 넘어가는데 동료들과 함께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집의 아기자기한 분위기에 동료들은모두 만족을 했다. 인근 식당에서 오리로 저녁을 먹고 다시 돌아와 밤 늦게까지 대화를 나누었다.일행은 술도 많이 마시지 않고 대화 주제도 문화와 역사에 관한 것으로 격이 다르다. 그러나 나 같이 그런 데에 별 흥미가 없는 사람은 좀 따분할 때도 있다.



잠을 설쳤다. 밤새 들리던 빗소리가 아침이 되어도 그칠 줄을 모른다. 계곡이 포함된 트레킹 계획을 수정할 수밖에 없었다. 긴 트레킹 대신에 방태산 자연휴양림을 중심으로 해서차로 이동하며 여러 군데를 둘러보기로 했다. C는 아침에 와서 합류했다.

아침 식사는 동생네가 정성들여 차려주었다. 눈으로 입으로 모두들맛나게 먹었다.





비가 내려서 내린천은 황토색이었다. 그래도 눈 가는 곳마다 비경이었다. B의 말대로 어지간한 외국의 유명한 관광지보다 우리 강산이 훨씬 더 아름답다.



살둔산장을 보러 간 길에 폐교된 작은 학교를 만났다.옛 원당국민학교 생둔분교다. 나도 이런 학교에서 초등 6년을 다녔다. 절로 감회에 젖게 된다. 교사 벽에는 '반공' '방첩'이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남아 있다. 새로 페인트 칠까지 한 걸 보니 주민들이옛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방태산 자연휴양림길을 두 시간 가까이 산책했다. 우산을 써도 좋고 안 써도 괜찮을 정도의 비가 계속 내렸다.













비에 젖은 산길이 예뻤다.산에는 흰색의 졸방제비꽃이 특히 많았다. 그러나 꽃만 예쁜 게 아니다.어떤 때는 꽃보다 풀잎이 더 예쁘게 보인다.





지나던 길에 만난 등꾳과 억새밭이다. 세찬 바람에 춤추는 억새의 군무가 일품이었다. 이곳 지명이 '쇠나드리'인데소가 날아갈 정도로 바람이 세다는 뜻이란다. 그러나 억새밭 가운데로 도로가 생겨서 예전의 넓었던 억새밭이 다 파괴되었다고 C는 안타까워했다.

점봉산 곰배령 올라가는 입구 마을에 있는 '풀꽃세상'이라는 민박집에 들렀다. 언젠가 방영된 TV 프로그램에 나왔던 집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유별나게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랑 집이멋있게 보였다. 이곳에서 모닥불을 피워 놓고 준비해 간김밥에 라면을 끓여 먹었다.



'풀꽃세상' 앞에 세워진 이 글귀, 심심산골에서 마주 하니 그 의미가 더 새로웠다.

'靑山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蒼空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탐욕도 벗어놓고 성냄도 벗어놓고 물 같이 바람 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문제 많은 양양 양수 발전소에도 올랐다.비바람이 심해서 가만 서 있기도 힘들었다.





선림원지(禪林院址)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채워져 있는 것보다는 이렇게 비어 있는 것이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한다. 그리고 터 자체도 산으로 둘러싸여서 포근했다. 신라시대 때 이 깊은 산골에 수도원을 세웠다니, 더구나 얼마나 규모가 컸는지 쌀 씻은 물로 앞 계곡물은 늘희뿌연 색깔이었다고 한다.그래서 계곡 이름이 미천(米川)계곡이다.

교통이 불편하다고 강원도를 별로 찾지 않았는데 의외로 멋진 풍광을 가진 비경이 많다. 옛날에 비해 많은 도로가 생겨서 쉽게 접근하고 구경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환경을 파괴하는 부작용 또한 심각함을 느낀다. 관광자원으로의 활용, 주민들의 민원을 고려해야겠지만 지나침은 역시 독이다.우리 후손을 위해서 가능하면 손 대지 않는 게 가장 좋은 선택이 아닐까.





돌아오는 길에 길매식당에서 막국수로 저녁을 먹었다.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S형과 마을을 산책했다. 어느 집 장독대에 핀 수련이 고왔고, 마을 끝에 서 있는 한 그루나무가불두화를 환하게 피웠다.

지도를 찾아보니 우리는 방태산을 중심으로 시계방향으로 446, 31, 418, 56번 도로를 따라 한 바퀴 돌았다. 이것저것 돌아보느라 거의 8 시간이 걸렸다. 비가 오는 통에 예정에 없던 여정이 된 것이다. 다행히 귀경길은 궂은 날씨로 사람들이 나오지 않은탓이었는지 막히지 않았다. 밤 10시에 집에 도착했다.

말이 많고 큰소리를 친다는 것은 속이 그만큼 공허하다는 뜻이다. 공허하니까 말이 많아지고,빈 말은 본인을 더욱 공허하고 쓸쓸하게 한다. 내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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