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가 엿새째 미세먼지에 갇혔다. 여기에 스모그까지 더해져 서울의 공기는 최악이었다. 그래도 미세먼지가 보통 수준으로 떨어진다길래 배낭을 멨는데 별로 잘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나마 산에서는 덜 했는데 도심으로 내려오니 목이 칼칼하고 눈이 따끔거리는 게 도저히 사람이 숨 쉴 공기가 아니었다. 참말로 어리석은 인간이 아닌가. 생명의 기본인 물과 공기를 더럽혀 놓고는 행복과 웰빙을 찾느라 난리니 말이다. 공기 청정기를 틀어놓아야 안심이 되는 게 현실이 되었다. 물을 사 마시듯이 공기마저 사서 들고 다니며 호흡해야 할 시대가 닥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착잡한 심정으로 아내와 독립문에서 출발하여 인왕산을 넘어 창의문까지 걸었다. 서울을 뜬지 처음으로 다시 찾은 인왕산이었다. 인왕산은 338m지만 독립문 쪽에서 오르는 길은 만만하지 않았다. 두 달 만에 오르는 산이어서인지도 몰랐다. 되도록 숨이 가쁘지 않게 천천히 올랐다. 아래로 보이는 서울 시내는 백내장에 걸린 듯 희뿌옇기만 했다. 견딜 수 없다면 우선은 피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베트남에 가족과 함께 파견 교사로 갔던 친구가 한 말이 떠올랐다. 외국에 나가서 가족 사이의 정이 훨씬 더 좋아졌다는 것이었다. 국내에 있을 때는 아들과 서먹한 관계였는데 베트남에서는 대화도 많이 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했다. 외국에 나가면 믿고 의지할 게 가족밖에 없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어려운 일을 당하면 가족은 하나로 뭉친다. 그중에도 혈연적 관계를 천륜이라고 했다. 그래서 맹목적이 될 위험이 있지만 위기에서 최후의 버팀목 역시 가족일 수밖에 없다. 세상살이에 지친 마음이 쉬어갈 곳도 역시 이곳이다. 우리가 함께 손잡으면 못 넘을 산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