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봄이 오는 뒷산

샌. 2014. 3. 6. 17:39

 

창밖으로 보이는 소나무가 아침부터 브레이크 댄스를 추고 있어서 센 바람을 맞고 싶어 뒷산에 올랐다. 때가 되면 변해가는 계절은 속일 수 없음인가, 산 능선에서 바람 앞에 섰으나 이미 찬 기운은 힘이 많이 빠져 있었다. 명색이 북풍인데 신세가 말이 아니었다. 한껏 잠바를 열어젖히고 가슴이 뻥 뚫리도록 바람을 맞았다. 겨울 동안은 전혀 출입을 하지 않았으니 석 달 만에 찾은 뒷산이었다.

 

봄이 가까워지면 숲에서는 새들이 먼저 분주해진다. 이 나무 저 나무로 옮겨다니며 바쁘기만 한 박새가 제일 많이 눈에 띄었다. 찌찌 쯔르르르, 새소리가 없다면 숲은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것 같다.

 

 

 

산기슭에는 괭이눈 초록 잎이 돋아났고, 버들강아지도 고운 물을 들이고 있었다. 이제 곧 총천연색의 향연이 펼쳐질 것이다. 행복이 멀리 있는 게 아니다. 두 발로 걸어나가 봄을 맞을 수 있고, 두 눈으로 봄의 기적을 볼 수 있음이 행복이 아니겠는가. 다른 무엇을 더 욕심내겠는가. 며칠 전 박노해 사진전에서 보았던 문장 하나가 잊히지 않는다. "'어찌할 수 없음'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어찌 할 수 있음'은 최선을 다해가면서, 우리 삶은 '이만하면 넉넉하다'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구원의 빛을 본다." 

 

 

오늘 '아침마당'에 최영미 시인이 출연해서 자신의 인생과 시에 대해 들려 주었다. 시인의 말과 표정에서 꾸밈 없는 솔직담백함이 느껴져 좋았다. 시인과 처음 만났던 <서른, 잔치는 끝났다>를 펴 보았다.

 

물론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운동보다는 운동가를

술보다도 술 마시는 분위기를 더 좋아했다는 걸

그리고 외로울 땐 동지여!로 시작하는 투쟁가가 아니라

낮은 목소리로 사랑노래를 즐겼다는 걸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잔치는 끝났다

술 떨어지고, 사람들은 하나 둘 지갑을 챙기고 마침내 그도 갔지만

마지막 셈을 마치고 제각기 신발을 찾아 신고 떠났지만

어렴풋이 나는 알고 있다

여기 홀로 누군가 마지막까지 남아

주인 대신 상을 치우고

그 모든 걸 기억해내며 뜨거운 눈물 흘리리란 걸

 

그가 부르다만 노래를 마저 고쳐 부르리란 걸

어쩌면 나는 알고 있다

누군가 그 대신 상을 차리고, 새벽이 오기 전에

다시 사람들을 불러 모르리란 걸

환하게 불 밝히고 무대를 다시 꾸미리라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 서른, 잔치는 끝났다 / 최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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