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풍경(31)

샌. 2014. 3. 24. 17:23

 

흰 그림자....

 

흑백필름을 현상하면 음영이 거꾸로 되어 나타난다. 거기에 빛을 비추어야 우리가 정상이라고 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림자가 꼭 검어야 할 당위는 없다. 뒤집힌 세계 역시 하나의 세계다.

 

필름의 기억이 떠올라 재미삼아 음영을 바꾸어 보았다.

 

 

황혼이 짙어지는 길모금에서

하루 종일 시들은 귀를 가만히 기울이면

땅거미 옮겨지는 발자취 소리

 

발자취 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나는 총명했던가요

 

이제 어리석게도 모든 것을 깨달은 다음

오래 마음 깊은 속에

괴로워하던 수많은 나를

하나, 둘 제고장으로 돌려보내면

거리 모퉁이 어둠 속으로

소리 없이 사라지는 흰 그림자

 

흰 그림자들

연연히 사랑하던 흰 그림자들

내 모든 것을 돌려보낸 뒤

허전히 뒷골목으로 돌아

황혼처럼 물드는 내 방으로 돌아오면

 

신념이 깊은 의젓한 양처럼

하루 종일 시름없이 풀포기나 뜯자

 

- 흰 그림자 /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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