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394

보신탕 한 그릇

염제(炎帝)의 위력이 대단하다. 매일 에어컨 신세를 지는 게 어느덧 두 주째다. 무더위 속에서 무리할 일은 없지만 활동량이 적으니 몸의 기력이 떨어지는 게 확연하다. 에너지 보충을 위해 아내와 보신탕 집을 찾았다. 근년에는 보신탕 먹을 기회가 한 해에 한두 번밖에 안 된다. 전에 비해 확 줄었다. 대신 추어탕을 주로 한다. 그래도 한여름이 되면 가끔 보신탕에 구미가 당긴다. 아내가 뇌 수술을 받은 뒤에 조리를 하면서 보신탕을 참 많이 먹었다. 의사도 기력 회복과 상처가 빨리 아무는 데 도움이 된다고 권했다. 거의 한 달은 상식을 했을 것이다. 나는 퇴근하면서 보신탕을 사 가지고 가는 게 일과였다. 아내가 회복하는 데 보신탕의 도움이 컸다고 확신한다. 어느 신부님이 하는 말을 들었다. 오래전 신학교에 다닐..

사진속일상 2021.07.30

저녁 산책

35도를 오르내리는 더위가 열흘째 이어지고 있다. 더위 때문에 바깥출입도 뜸해졌다. 코로나 시대의 피서는 돌아다니기보다 집에 가만히 있기다. 덜 움직이고 뒹굴거리다 보면 더위도 잊는다. 며칠 전에 도쿄 올림픽이 개막해서 집안에서도 볼거리가 풍성하다. 따가운 햇살이 힘을 잃을 저녁 무렵에 아내와 동네 산책을 나선다. 먼저 텃밭에 들린다. 텃밭에는 손주가 심은 수박이 있다. 하필 수박이 제일 비실거리며 줄기가 뻗질 못한다. 이러다간 수박 달리는 걸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손주가 실망할까 봐 아내는 걱정이다. 둘이 페트병에 물을 가득 담아가서 수박에 듬뿍 준다. 올해는 텃밭에서 나오는 야채 덕을 톡톡히 본다. 고추, 가지, 상추, 깻잎, 방울토마토 등 식탁에는 텃밭에서 나오는 싱싱한 야채가 매일 오른다. 아..

사진속일상 2021.07.26

물빛공원으로 쫓겨나다

아침부터 30도에 육박하는 더위다. 장마 뒤끝이라 습도가 높아 체감 기온은 훨씬 더 높게 느껴진다. 오죽하면 베트남 사람조차 한국의 더위를 견디기 힘들다 하겠는가. 설상가상으로 우리 동의 한 집이 이 여름에 수리를 시작했다. 얼마 전에 동의서를 받아갔는데 간간이 들리던 공사 소음이 어제부터 심해졌다. 오늘은 일찍부터 벽을 울리는 드릴 소리 때문에 집에 있지를 못하겠다. 코로나 때문에 학생들은 재가학습을 할 텐데 다른 집은 어떻게 견디는지 모르겠다. 할 수 없이 가까운 물빛공원으로 아내와 피난을 갔다. 여름 하늘은 눈부시게 파랗다. 그러나 햇살이 따가우니 공원 둘레길에서는 사람을 보기 어렵다. 신경이 쓰이지 않으니 좋은 점도 있다. 물빛공원의 상징물은 이 꽃돌고래다. 저수지와 돌고래가 어울리지는 않지만 하..

사진속일상 2021.07.16

시도(矢島) 걷기

인천 영종도 서쪽에 신도(信島), 시도(矢島), 모도(茅島)라는 세 개의 작은 섬이 있다. 삼목항에서 배를 타고 10분 쯤 가면 신도선착장에 닿을 수 있는 가까운 거리다. 세 섬 사이는 다리로 연결되어 있다. 사람들은 셋을 합쳐 '신시모'라 부르기도 한다. 이곳을 걸어보기 위해서 신시모에 갔다. '삼형제섬 길'인데 세 섬을 지나는 길이가 14km 쯤 된다. 대한민국 해안누리길 53번 노선에 해당한다. 처제 부부와 함께 했다. 처제 부부는 걷기에 자신이 없다면서 차를 가지고 들어갔다. 그래서 우리도 신도 걷기는 포기하고 시도만 함께 걷기로 했다. 신시도 연도교에서 시도를 반시계방향으로 돌아 노루메기까지 걸었다. 이것만 두 시간 반이 걸렸다. 시도를 한 바퀴 돌고 모도로 건너가 늦은 점심을 먹었다. 소라와 ..

사진속일상 2021.07.01

텃밭 네 이랑

한 이랑으로 시작한 텃밭이 야금야금 넓어지더니 네 이랑으로 늘어났다. 작물을 가꾸다 보니 아내는 자꾸 욕심이 생기나 보다. 작은 텃밭이지만 자라는 채소가 12종이나 된다. 어제는 새로 만든 이랑에 거름을 넣고 비닐을 덮는 작업을 했다. 힘이 들어가는 일은 내가 도와주지만 대부분의 텃밭 관리는 아내의 몫이다. 억지로가 아니라 본인이 원해서 하는 일이다. 텃밭에 나가 흙을 만지면 잡념이 사라져서 좋다고 한다. 처음 시작할 때 남자의 도움이 필요한 일 외에는 나는 관여하지 않기로 다짐을 받았다. 다행히 올해는 비가 자주 내려서 물 주는 수고도 할 필요가 없었다. 덕분에 우리 식탁에는 상추, 겨자, 고추, 깻잎 등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점심은 거의 쌈이다. 바로 따온 싱싱한 채소는 훨씬 더 맛이 있다...

사진속일상 2021.06.29

초여름 삼패공원

낮 기온이 30도 가까이 올랐다. 남양주에 있는 삼패공원에 나가보니 여름이 가까워진 걸 알겠다. 따가운 햇볕에 30분 정도 걸으니 금방 지쳐버린다. 이젠 걷기도 한낮 시간은 피해야 할 것 같다. 지금 삼패공원에는 수레국화 꽃밭이 펼쳐져 있다. 사이사이에 꽃양귀비가 섞여 있어 보라색만의 단조로움을 지워준다.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꽃 감상을 제대로 못해 아쉬웠다. 새소리가 요란스러워 따라가니 찌르레기가 떼로 몰려서 공원을 휘젓고 다닌다. 삼패공원이 찌르레기의 단체 서식지 같다. 얼마나 텃세가 심한지 드센 까치조차 여기서는 얌전하다. 한참 동안 찌르레기들이 노는 모양을 구경했다.

사진속일상 2021.06.08

물빛공원 장미

물빛공원에는 장미 터널이 있다. 때가 지나기는 했지만 장미 구경 겸 산책을 하기 위해 물빛공원에 나갔다. 꽃잎이 많이 떨어지기는 했으나 아직은 장미가 볼 만했다. 장미가 진다는 것은 봄이 우리 곁을 떠나가고 있다는 신호다. 이제야 긴 터널에서 빠져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올봄에 느닷없이 닥친 일들을 통해 나는 더 단단해졌으면 좋겠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다 공부지요!"라고 생각하면 조금은 여유를 찾을 것도 같다. 그동안 '봄장마'라 할 정도로 흐리고 비 오는 날이 잦았다. 오늘은 모처럼 맑게 갠 화창한 날이다.

꽃들의향기 2021.06.04

넓어지는 텃밭

처음에는 한 이랑만 만들었다. 재미 삼아 고추와 상추만 심는다고 했다. 그런데 흙을 만지다 보니 자꾸 욕심이 생기나 보다. 옆으로 넓혀나가더니 어느새 세 이랑이 되었다. 고추, 상추 외에 가지, 고구마, 파, 호박이 추가되었다. 텃밭은 아내의 일로 정했으니 나는 지켜보기만 한다. 시내에 나가 퇴비를 사 오거나 무거운 것을 들 때 힘을 보탤 뿐이다. 어쨌든 아내는 텃밭 만드는 즐거움에 푹 빠져 있다. 나는 일은 안 해도 가끔 들러서 지켜보는 재미도 괜찮다. 앞으로 아내의 경작 욕구가 얼마나 더 뻗어나갈지 살짝 궁금해진다.

사진속일상 2021.05.03

텃밭 한 이랑

아파트 이웃의 밭을 빌려 텃밭 한 이랑을 만들었다. 그동안 고추나 야채를 얻어먹기만 했는데 조금이라도 자급자족을 해야겠다 싶어서였다. 욕심을 부리면 몇 이랑이고 더 만들 수 있지만, 우선 우리 수준에 맞는 소꿉장난을 해 보기로 했다. 흙에 거름을 섞어주고 이랑과 고랑을 대충 만들었다. 한때는 300평 농사를 지은 적이 있었는데, 삽으로 두둑을 만들 때는 그때 생각이 나서 먼 하늘을 바라봤다. 아련하고 아득했다. 여기에는 고추와 상추를 심을 예정이다. 난 흙장난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지만, 다른 무엇보다 아내의 작은 소망 하나를 도와줄 수 있어 기쁘다.

사진속일상 2021.04.15

처녀치마를 찾아간 천마산

처녀치마를 보러 아내와 천마산 팔현계곡을 찾아갔다. 10년쯤 전에 팔현계곡에서 처녀치마를 본 기억을 더듬으며 올라갔다. 차는 다래산장에 주차했는데 내려와서 비빔밥을 먹기로 한 조건이었다. 너무 시간이 흘러선지 그때 처녀치마 있던 곳을 찾지 못했다. 거의 포기하고 내려오는데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모여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처녀치마가 있는 곳이었다. 사진을 찍자면 줄을 서서 대기해야 했다. 순서가 왔지만 뒷사람 눈치가 보여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잠깐동안 사진 석 장만 찍고 자리를 떴다. 맘껏 바라볼 순 없었지만 처녀치마를 만날 수 있었던 건 다행이었다. 그때보다 개체수가 늘어나서 감사했다. 처녀치마 외에 팔현계곡에서 만난 봄꽃이다. 큰괭이밥, 꿩의바람꽃, 들바람꽃, 얼레지, 산자고, 미치광이풀, 족두리..

꽃들의향기 2021.04.01

눈뜬장님 / 오탁번

연애할 때는 예쁜 것만 보였다 결혼한 뒤에는 예쁜 것 미운 것 반반씩 보였다 10년 20년 되니 예쁜 것은 잘 안 보였다 30년 40년 지나니 미운 것만 보였다 그래서 나는 눈뜬장님이 됐다 아내는 해가 갈수록 눈이 점점 밝아지나 보다 지난날이 빤히 보이는지 그 옛날 내 구린 짓 죄다 까발리며 옴짝달짝 못하게 한다 눈뜬장님 노약자한테 그러면 못써! - 눈뜬장님 / 오탁번 여자의 기억법은 특이하다. 과거의 서운했던 일은 기막히게 기억해 낸다. 둘 사이에 냉기류가 흐를 때면 어두운 창고 문이 저절로 열리나 보다. 아내의 넋두리를 들어보면 나는 무지 나쁜 사람이었던 것 같다. 한때는 정면 대응을 했지만 이젠 흘려 넘길 수밖에 없다. 창고를 채울 자물쇠가 없다는 걸 늦게서야 알았기 때문이다. 바라건대 아내도 눈뜬..

시읽는기쁨 2021.03.09

성지(30) - 수리산 성지

성지 45. 수리산 성지 경기도 안양에 있는 수리산 성지는 최경환(崔京煥, 1804~1839) 프란치스코 성인이 살면서 신앙 생활을 하던 곳이다. 최경환 성인은 한국의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의 아버지다. 1836년에 큰 아들을 모방 신부에 맡겨 마카오로 유학 보냈다. 성인은 천주교를 믿어 온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신앙 생활을 했지만 탄압을 피해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마지막으로 수리산 밑에 정착해 살았다. 그러나 1839년 7월 기해박해 때 교우와 함께 체포되어 9월에 심한 매질을 견디지 못하고 포천옥에서 순교하였다. 최경환 프란치스코는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을 위해 방한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사진속일상 2021.03.05

성지(29) - 묘재

성지 44. 묘재 충북 제천시 봉양읍 학산리에 있으며 남종삼(南鐘三, 1817~1866) 요한 성인이 살았던 집이다. 이곳은 요한 성인의 부친인 남상교 아우구스티노가 관직에서 물러나 신앙생활에 전념하기 위해 이사한 곳으로, 부친과 장자인 남명희, 처 이조이도 순교했다. 남종삼 요한은 남인계 학자로 22세 때 문과에 급제하여 철종 때 승지에 올랐고, 고종 초에는 학덕을 인정 받아 왕실 교육을 담당했다. 그의 학문과 신앙은 아버지의 영향이 컸고, 남하하는 러시아 세력을 막기 위해 서양 선교사를 이용한 이이제이(以夷制夷) 방책을 대원군에게 건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병인박해가 시작되며 1866년에 체포되어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이때 다른 가족들도 함께 체포되어 다음 해에 부친은 공주에서 옥사하고, 남명희는 전..

사진속일상 2021.02.25

성지(28) - 양양성당

성지 43. 양양성당 양양성당은 6.25 전쟁 때 순교한 이광재(李光在, 1909~1950) 디모테오 신부의 사랑과 헌신이 깃든 장소다. 이 신부는 1936년에 사제 서품을 받고 3년 뒤에 양양 본당의 주임신부로 부임했다. 일제의 탄압 시기를 지낸 뒤 해방이 되고 분단이 되면서 양양성당은 38선 북쪽에 위치하게 되었다. 양양성당에도 소련군이 주둔하게 되어 성당을 빼앗기고 가정집에서 미사를 드려야 했다. 이 신부는 남쪽으로 피난하는 수도자들과 신자들을 도우며 끝까지 성당을 지켰다. 이 신부는 다른 지역의 신자들을 돌보기 위해 평강으로 갔다가 체포되었고, 6.25 전쟁이 터지고 유엔군이 북진하자 인민군은 포로들을 방공호에 몰아넣고 총살시켰다. 이때 이 신부도 사망했는데 몇 생존자의 증언에 따르면 아수라장 속..

사진속일상 2021.02.18

일 년 만의 일박 여행

누구나가 그러하겠지만 코로나는 많은 사람의 여행길을 막았다. 당일치기 나들이는 가끔 했어도 일박 이상의 여행을 다녀온 지가 일 년이 한참 넘었다. 해외는 엄두도 못 내고 국내 여행도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다. 동해안으로 놀러 간 둘째가 합류하라고 연락이 왔다. 마침 정부에서도 가족끼리는 5인 이상 모임 금지를 해제한 터였다. 날씨가 나쁘다는 예보가 있었지만 무시하고 떠났다. 먼저 양양성당에 들러서 성지 참배를 하고 낙산사를 찾았다. 워낙 오랜만에 와서인지 들머리부터 낯설었다. 보타전을 중심으로 해서 경내를 한 바퀴 돌았다. 해수관음상 마당에서 보이는 바다 풍경이 시원했다. 오른쪽에 보이는 낙산해수욕장은 젊었을 때 단골 장소였다. 낙산사 경내의 양지바른 언덕에서 올해 첫 매화를 보았다. 지나는 사람들 ..

사진속일상 2021.02.17

겨울 설봉공원과 고달사지

지인을 만나러 이천에 내려가서 함께 설봉공원을 찾았다. 설봉호 둘레를 따라 잘 만들어진 산책로를 두 바퀴 돌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밤에 내린 눈이 은세계를 만들었지만 걷는 길은 눈이 잘 치워져 있었다. "어느 멋진 날, 눈부시게 빛나는", 겨울날이었다. 밤골 앞을 지나가며 잠시 차를 세웠다. 이제서야 이렇게라도 바라볼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고달사지에 들렀다. 눈 위에 우리가 첫 발자국을 남겼다. 고달사는 신라 경덕왕 23년(764년)에 지어진 절이다. 쨍한 겨울 햇살을 맞으며 고달사지를 한 바퀴 돌았다. 400년 된 고달사지 입구의 느티나무는 마치 죽은 듯 앙상했다. 그러나 곧 봄이 오고 있음을 나무는 온 몸으로 느끼고 있을 것이다. 맑은 겨울 속의 짧은 나들이길이었다.

사진속일상 2021.02.06

강릉 바닷바람을 쐬다

바닷바람을 쐬러 아내와 강릉에 다녀왔다. 올해 들어서는 첫나들이였다. 아직 거리두기 2.5단계가 실시되고 있지만, 다행히 코로나 기세는 한풀 꺾인 듯하다.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달리는 기분이 상쾌했다. 오늘 행선지는 안목해변, 솔향수목원, 굴산사지, 경포호로 잡았다. 일박을 하며 여유 있는 일정도 생각했으나 왠지 아직은 아닌 듯 싶었다. 밖에서 잠자고 식사하는 일이 꺼림칙한 게 사실이다. 역시 동해에 와야 바다다운 바다를 마주할 수 있다. 기운차게 포효하며 밀려오는 파도 앞에 둘이 섰다. 안목해변을 따라 바우길 5코스가 지나간다. 길이 지나는 솔숲이 좋다. 갈 때는 모래사장을 따라, 올 때는 솔숲길을 따라 1시간 정도 걸었다. 사랑, 얼마나 오래 잠그고 싶은 걸까? 강릉시 구정면에 있는 솔향수목원은 23곳..

사진속일상 2021.01.21

선녀바위의 저녁

한 해가 저물어가서 그런지 해 지는 풍경에 자꾸 끌린다. 이번에는 서해 영종도로 나갔다. 을왕리에서 일주일 만에 다시 처제 부부와 만났다. 서쪽 바다 끝에 짙은 구름이 끼어 있어 해는 연붉은 색깔을 잠시 보여주다가 구름 뒤로 숨어버렸다. 선녀바위 뒤에서 ND 필터를 끼고 30초 노출로 찍어본 것으로 만족해야겠다. 노을을 보기 전에 선녀바위와 을왕리해수욕장을 연결하는 산책로를 걸었다. 바닷길과 산길이 적당히 어울려 있는데 새로 만든 길이라 산뜻했다. 새로 설치한 출렁다리인데 코로나 때문인지 출입은 막고 있다. 산책로에서는 멀리 을왕리해수욕장이 보인다. 25년 전에 천문반 아이들을 데리고 별 보러 이곳까지 왔던 기억이 새록새록 하다. 캠핑 장비에 무거운 망원경 두 개를 들고, 버스-전철-버스-배-버스를 타고..

사진속일상 2020.12.29

성탄 구유와 무수리 선착장

코로나 때문에 올해는 아내도 성탄 미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소수 인원으로 제한하느라 차례가 돌아오지 않았다. 더 나이 드신 분에게 양보했다는 게 맞는 말이리라. 대신에 성탄절이 지난 뒤 구유 앞에서 묵상 시간을 가졌다. 성당 안 제단 앞의 아기 예수 구유. 크리스마스 전에 다녀간 첫째 손주가 둘째에게 이런 쪽지를 써 놓고 갔다. 첫째는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산타가 없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반면에 지금 일곱 살인 둘째 손주는 산타를 철석같이 믿는다. 이 쪽지를 보고도 누나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우긴다. 성당에서 나와 무수리 선착장에 들렀다. 무수리 선착장에서는 건너편 정지리를 연결하는 줄배가 다닌다. 경안천은 꽁꽁 얼어 있고, 배도 얼음에 갇혀 있다. 무수리 선착장은 동쪽을 면하고 있으므로 일출..

사진속일상 2020.12.27

탄도항의 저녁

안산에 들린 길에 처제 부부와 대부도 탄도항에 찾아갔다. 코로나로 답답한 마음을 바닷바람이 씻어주길 바라서였다. 탄도항 앞에는 누에섬이 있는데 바닷물에 잠겼다 열렸다 하는 시멘트 길로 연결되어 있다. 마침 썰물이라 바닷물이 빠지고 길 주변은 넓디넓은 갯벌이 펼쳐져 있었다. 비록 물이 빠졌지만 오랜만에 바다를 보니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서해로 넘어가는 일몰까지 구경하는 것은 덤이었다. 때 맞추어 날씨가 포근했다. 탄도항에 도착한 건 오후 세 시경이었는데 바닷길을 따라 산책하다 보니 한 시간 반이 훌쩍 지나갔다. 누에섬에서 보니 제부도가 바로 코 앞이었다. 옆에 전곡항도 있다. 전곡항과 제부도를 연결하는 다리 공사는 교각을 세우는 작업이 한창이다. 바깥나들이가 두렵지만 가족끼리의 가벼운 나들이는 괜..

사진속일상 2020.12.23

필요한 하나

조선 중종 때 문신인 김정국(金正國, 1485~1541)의 호는 팔여거사(八餘居士)다. 황해도 관찰사로 있을 때 기묘사화에 휩쓸려 삭탈관직 되자 고양 명봉산 자락에 들어가 은거하며 사신 분이다. 그가 말한 '팔여(八餘)', 즉 '여덟 가지 넉넉한 것'은 이렇다. 1. 토란국과 보리밥을 넉넉히 먹고 2. 등 따뜻하게 넉넉히 잠자고 3. 맑은 샘물을 넉넉히 마시고 4. 서가에 가득한 책을 넉넉히 읽고 5. 봄꽃과 가을 달빛을 넉넉히 감상하고 6. 새와 솔바람 소리를 넉넉히 듣고 7. 눈 속에 핀 매화와 서리 맞은 국화 향기를 넉넉히 맡는다. 8. 그리고 이 일곱 가지를 넉넉히 즐기니, 이것이 팔여(八餘)다. 팔여거사의 넉넉함은 자족(自足)에서 나온다. 사람은 욕심을 부리면 끝이 없지만, 분수를 알고 만족하면..

참살이의꿈 2020.12.14

코로나 미사

망부(亡父)의 41주기를 맞아 성당에서 연미사를 드리다. 그날도 이렇게 추웠을까. 사고를 당하시고 한밤이 지난 후 열 시간이 넘어서야 가족에게 비보가 전해졌다. 수업을 마치고 나왔다가 무심코 받은 수화기 너머의 떨리는 목소리는 청천벽력이었다. 서둘러 고향에 내려갔을 때까지도 아버지는 그 자리에 누워 계셨다. 그 뒤로 40년이 넘는 세월은 많은 아픔의 흔적을 지웠다. 이제는 짧은 시간의 종교 형식 속에서 아버지를 추억할 뿐이다. 가끔 꿈에 어지러운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괴로웠는데, 언젠가 환히 웃는 모습을 보여주신 뒤로는 꿈에서도 뵐 수 없다. 아버지, 그 나라에서는 편히 쉬십시요~ 코로나 때문에 미사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드문드문 앉도록 지정 자리가 있고, 마스크는 당연히 필수다. 성가도 부르지 않는다...

사진속일상 2020.12.04

곤지암도자공원 단풍

화담숲 단풍을 보러 갔다가 예약을 안 했다고 퇴짜를 맞았다. 단풍철에는 평일에도 예약제로 운영한단다. 한참 줄을 서서 체온 측정까지 했는데 헛걸음이 되어 버렸다. 꿩 대신 닭이라고, 집으로 돌아오며 곤지암도자공원에 들렀다. 외곽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단풍을 구경했다. 화담숲에는 비할 바가 못 되어도 낙엽 깔린 호젓한 산길이 좋았다. 사람이 북적이는 곳보다는 오히려 이런 데가 가을 정취에 어울리지 않나, 라고 생각하며 고마워한다. 화담숲에 못 들어간 자기 합리화면 어떤가. 가을은 차별 없이 온 강산을 물들이고 있다.

사진속일상 2020.11.04

화암사와 대둔산

전주에 다녀오는 길에 완주를 지나다가 우연히 화암사(花巖寺)로 들어가는 안내 간판을 보았다. 안도현 시인이 찬탄한 바로 그 '잘 늙은 절, 화암사'라는 생각이 떠올라 핸들을 돌려 화살표를 따라 찾아갔다. 억지로 애쓰지 않아도 이런 기회가 마중 오기도 하는구나. 시인의 글을 다시 찾아 읽어본다. 잘 늙은 절, 화암사 / 안도현 절을 두고 잘 늙었다고 함부로 입을 놀려도 혼나지 않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나라의 절 치고 사실 잘 늙지 않은 절이 없으니 무슨 수로 절을 형용하겠는가. 심지어 잘 늙지 않으면 절이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심사도 무의식 한쪽에 풍경처럼 매달려 있는 까닭에 어쩔 수가 없다. 잘 늘었다는 것은 비바람 속에서도 비뚤어지지 않고 꼿꼿하다는 뜻이며, 그 스스로 역사이거나 문화의 일부로서 지..

사진속일상 2020.10.21

성지(27) - 홍유한 유적지

성지 42. 홍유한 유적지 한국 천주교회가 창립된 것이 1784년인데, 이보다 30여 년 전에 이미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분이 있었다. 경북 영주군 단산면 구구리에 살던 홍유한(洪儒漢) 선생이시다. 선생은 어릴 때 성호 이익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에 힘쓰던 중, 천주교 서적을 접하고 자신이 깨달은 신앙의 진리를 실천했다. 천주교의 수계 생활을 위해 1775년에 이곳으로 이주해서 1785년 선종할 때까지 신앙적 삶을 살았다고 한다. 스스로 7일 중 하루를 주일로 정해 세속의 일을 전폐하고, 기도와 묵상에 전념했으며 30세 이후부터는 정절의 덕을 실천했다. 이로써 한국 천주교회의 최초 수덕자(修德者)라는 칭호가 붙었다. 한국 천주교는 이렇듯 서학의 하나로 들어와 자발적으로 탐구, 실천해 나간 점이 특이하다...

사진속일상 2020.10.12

고향에 다녀오다

2박 3일로 고향에 다녀왔다. 늦은 추석 성묘와 퇴원 뒤 회복 중이신 어머니 문안을 겸해서였다. 동생네는 남도에 내려가 있었다. 그동안은 코로나 때문에 고향 찾기를 자제했다. 가려고 하면 어머니가 극구 만류하셨다. 너무 지나치지 않았나 싶기도 하지만 세상이 그러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동네에 폐가 될까 봐 어머니 생신도 집이 아니라 밖에서 모였다. 올해는 추석도 건너뛰고 이렇게 열흘 늦게 조용히 내려왔다. 어디서나 참 좋은 가을날이었다. 이번에는 짬이 나는 대로 마을과 주변을 자주 산책했다. 이웃집 친구들 넷과도 오랜만에 대면했다. 어느새 다들 일흔을 넘었거나 코앞에 두고 있다. 허허, 빈 웃음이 자꾸 나왔다. 서천 산책로와 마을 전경. 산소 가는 길. 서천 산책로에는 코스모스가 환했다. 다행히 어..

사진속일상 2020.10.11

포천 나들이

가을 하늘이 좋은 날, 아내와 포천에 나들이를 다녀왔다. 먼저 들린 곳은 신북면에 있는 아트밸리였다. 버려져 있던 폐채석장을 미적으로 새롭게 재창조한 공간으로 알려진 곳이다. 포천화강암은 재질이 단단하고 무늬가 아름다워 건축 자재로 많이 쓰였다고 한다. 흉물스러웠을 장소가 예쁘게 변신한 모습이 보기 좋다. 주 진입로보다 산길 산책로를 걸어 들어가면 더 좋다. 다음으로 산정호수를 찾았다. 산정호수는 예전부터 관광지로 유명해서 여러 추억이 서린 곳이다. 학생들 데리고 극기훈련을 와서 며칠 머무르기도 했다. 이번에는 산정호수 둘레길을 걸었다. 산정호수 둘레길은 호수를 따라 걷는 3.2km 길이로 주로 나무데크로 되어 있다. 느긋하게 걸어도 한 시간이면 넉넉하다. 유원지의 소음만 없다면 호젓하게 산책할 수 있는..

사진속일상 2020.09.30

태풍 지난 하늘

9호 태풍 마이삭이 지나가고 파란 하늘이 열렸다. 하늘 좋고 바람 서늘해 경안천에 나갔다. 해는 숨바꼭질하듯 구름 뒤로 들락날락하는 걷기 좋은 날이었다. 이런 날은 하늘 구경만으로도 본전을 뽑는다. 코로나19로 거리두기 2.5단계가 실시중이어선지 밖에 나온 사람은 생각보다 적었다. 구름만 보면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 같다. 올여름은 8월 중순까지도 장마 속에 갇혀 있었으니 더위를 제대로 느끼지도 못하고 지나갔다. 유별난 2020년인데 올가을은 어떤 걸 선물할지 기대 반 두려움 반이다. 요즘 같으면 나라나 개인이나 그저 별 탈 없기를 바랄 뿐이다. 경안천에서는 아내, 손주와 차례로 합류했다. 손주가 유치원에 못 가게 되니 다시 야외에서 손주 얼굴을 보게 된다. 봄보다 마음의 키가 훌쩍 큰 것 같다. 아이들..

사진속일상 2020.09.04